-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SF에서 타임리프가 가지는 소재적 크기나 넓이는 로맨스 소설에서 재벌집 아들 정도와 비교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타임리프는 단순히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간단한 수준이 아닌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여러 작품 속에서 발현되어 왔다.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나 미래로 간다,까지는 좋지만 과연 그 뒤에는 어떨 것인가. 이는 여러 작가와 독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곁가지들이 뻗어나가 왔다. 우선은 그 과거나 미래는 충분히 가변적이다와 불가변적이다는 이론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현재를 바꾸어 보려해도 결국 그것이 그렇게 되어가는 필연성(섬머 타임머신 블루스)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란 작품이 있는가하면, 아예 미래에서 과거를 바꾸려 타임리프 한다던가(터미네이터), 자신이 과거에서 한 짓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효화 되는 경우(백 투더 퓨처)도 있다. 그리고 과거는 바꿀 수 있지만 바꿔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경우(개는 말할 것도 없고)도 있으며 죽은 연인을 다시 살리는 내 맘대로 타임리프(슈퍼맨)도 있다.
그렇다면 츠츠이 야스타카라는 SF작가에게 있어 타임리프는 어떤 식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는가. 사실 소설은 애니메이션(아, 이렇게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이야길 꺼내고 싶어 서론을 길게 썼다. 대뜸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길 하는 건 너무 뜨악하지 않나)만큼 타임리프에 대해-혹은 타임리프 이상의, 삶에 대해-고찰하진 않는다. 타임리프는 고작해야 전체 이야기의 분위기를 조율하기 위한 깜짝 이벤트에 지나지 않고, 전체 이야기 또한 그리 깊은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좋을 소프트 SF를 일본 소녀만화 보듯 다뤘을 뿐이다.(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난 분명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작품엔 나름의 가치-상대적-가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단순한 플롯의 뼈대만을 써놓은 듯한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가치는 소설보다 푸르다. 주인공은 분명히 우리와 같이 처음엔 가벼히 자신이 얻은 타임리프란 기능을 고작해야 푸딩을 먹는 정도로 이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지닌 힘이 그리 단순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힘의 무게를 실감하고, 고민한다. 고민 끝에 얻을 것들을 각자의 것이니 각자 마음껏 소설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던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소설을 읽어라.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짊어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가볍고 즐거운 소설과 조금은 덜 가벼운 애니메이션을 생각보다 무겁게 보게 되리라.
사족.뒤의 두 단편도 본격 SF라기보다는 가벼운 SF플롯/소재 입문 꽁트 정도지만 SF문외한들에겐 노크의 작품으론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각각 트라우마와 평행 우주에 대해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