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소설에 대한 감상문에 이러쿵 저러쿵 서론을 쓰는 것은 아주 무의미한 일로 느껴져 쓰지 않는다. 물론 바나나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 약간 읽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런 소개글은 전부 사족에 불과하다. 바나나의 작품이 갖는 장점은 네러티브의 담백함이다. 하나의 사건만을 아주 집약적이고 집중적으로 서술해 그 이야기를 극대화 한다. 이 작품을 보자면1야요이와 데츠오/2야요이와 유키노/3마사히코와 유키노 단 셋가지의 이야기(앞의 두 개가 주이고 마지막 하나의 이야기가 부이다)만을 한다. 그리고 그 셋은 교차되어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양 진행되는데 진행의 면에서도 1의 이야기는 서로의 망므을 확인하는 순간만을, 2의 경우 야요이가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만을 서술함으로써 불필요한 수많은 말들을 곁가지를 잘라내고 바나나 특유의 감수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네러티브만을 영리하게 골라내어 쓴다. 그리고 그 속에 인장처럼 찍혀있는 바나나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와 유니크한 문체는 이 책의 바나나도-얼마나 바나나스러운가를 나타내는 단위-를 가중시킨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재미와 감동/교훈을 주는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은 소위 세계 명작류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르네상스인적 제너럴리스트들의 작품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바나나같은 스페셜리스트들이 채워준다. 비록 그 유일성 탓에 보편적인 지지를 얻긴 힘들지만 그것은 일장 일단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거래인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바나나에 대한 선입견-초기에 가깝고 장편일수록 더 좋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