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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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다. 곧 치욕의 역사는 부끄러워할 것이 못된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주린 말(言)들의 기아 속에서 삼전도에서 청의 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살기 위한 치욕은 밥 먹고 잠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사이사이에 주전론과 주화론 사이의 말들은 너무도 쉽게 창궐해댔다.

다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치욕을 견디는 것과 달리, 살기 위한 치욕에 대한 말들의 창궐은 추악했다. 인조는 그저 살려 했으나 그 수많은 말(言)들은 죽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고 사는 문제로 바꿨고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역사는 치욕의 탈을 뒤집어썼다. 김훈은 그 '다만 사는 것'과 치욕을 탈을 뒤집어쓰는 순간을 기록하려 이 소설을 썼다.

소설은 앞서 말한대로 청의 군대가 쳐들어와(병자호란) 왕이 남한산성에서 수설을 하다 삼전도에 나가 항복하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문장은 특정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한 건조한 시각으로 담담히 역사서를 쓰듯 서술한다. 이것은 곧 등장인물들의 말들이 아닌 김훈의 말 속에서 병자호란은 더 이상 치욕의 역사가 아니란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서날쇠는 봄농사를 준비하였고 나루가 자라면 쌍둥이 중 어느 아들과 결혼시킬지 고민하며 웃는다. 서날쇠 혹은 김훈은 주전론과 주화론 어느 편도 아니고 '다만 고통받는 자의 편'이라 말한다.

현의 노래, 칼의 노래와 역사 소설이란 점에서는 흡사했지만 두 소설에 비해 창작동기를 너무도 명백히 밝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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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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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는 또 한번의 기이한 상황을 부여한다. 전원생활을 즐기고파서 인적이 드문 곳에 이상적인 집을 사고 이사를 간 한 노부부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가까운 곳에 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의사인 남편이 있는 부부였다. 주인공(에밀과 쥘리에트)부부는 그것을 상당히 기막힌 우연이라 생각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이웃 의사 남편(베르나르댕)의 방문은 그 긍정적 생각을 없애게 한다. 베르나르댕은 의사표현이란 예, 아니오 두가지 뿐이었고 표정은 항상불만에 가득 차 있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매일 오후 네 시에서 여섯 시까지 정확히 두 시간 동안 에밀 부부의 집에 들러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저 예, 아니오만 되풀이한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불친절하게 주엊니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에밀과 쥘리에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작가의 필력만큼이나 쉽고 매끄러운 일이지만, 결말에 대한 개연성과 필연성은 설득력이 없다. 얼마 전에 읽은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을 보면 모든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수렴되고 있기에 우리는 결말을 읽으며 그 필연성에 대해 절망하기까지 하는 것이다.(꼭 이래야만 했다니!)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 에밀과 베르나르댕의 종결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정도로 개연성과 필연성이 없다. 분명 재밌게 펼쳐진 상황 덕에 흥미가 가는 소설이긴 했으나 너무 벌여 놓고 억지로 마무리 한 듯한 용두사미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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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간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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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신나는 자식자랑이 타인에겐 그닥 큰 흥미가 되지 못하는 건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란 도무지 본인에겐 어떠한 식의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화제를 상당히 지루해하곤 하는데 작가의 before와 같이 고양이(를 넘어 애완동물에까지)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는 작가의 그 재미난 필력을 조금 다른 곳에 활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말곤 지루하단 생각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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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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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혹은 대중 소설은(혹은 베스트셀러이며 대중소설)왠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왜! 베스트셀러인지 궁금한 건 둘째고, 우선적 이유는 역시 까고 싶어서가 아닐까. 베스트셀러는 왠지 그 타이틀만으로도 욕하고 싶어지는 뭔가가 있는데 나는 아직도 이 질낮은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무튼 이 소설을 읽으며 최근 유행하는 대중소설을 생각했다. 이 작품 또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설에 소재로 쓰는 소위 말하는 '팩션'인데 몇 년 전 아주 크게 유행한 다빈치 코드 또한 그런 종류의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거기에 더하여 추리소설의 기법적 장치 또한 병행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궁합이 잘 맞는다. 소설은 프로이트와 융이라는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을 소설에 등장시킴으로써 살인이라는 추리소설적 소재에 정신분석학을 섞어 '살인을 해석'하려 든다. 사실 추리소설적 장치는 다빈치 코드의 그것처럼 조금 헐거운 편인데, 하지만 그 헐거운 장치가 다빈치 코드처럼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은 등장인물들을 상당히 훌륭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비록 정신분석학이란 틀에 좀 끼워 맞춘듯한 인위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영거와 노라) 대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이어서 큰 위화감은 없었다. 무엇보다 영거와 리틀모어라는 두 캐릭터에 의해 진행되는 두 개의 이야기는, 영거의 경우는 작가의 분신이기때문에 1인칭으로, 리틀모어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리하게 3인칭으로 교차서술된다. 영거를 통해 정신분석학의 일각을 만나고 리틀모어를 따라 사건의 뒤를 좇다보면 결코 얇지 않은 이 책을 쉬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즐거운 책이긴 했으나 미쿡문학의 양분화라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작품 자체를 넘어 생각할 거리가 생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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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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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미난 역사책은 정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야담같다. 역사의 가장 빛나던(혹은 주목할만한) 순간들의 정수를 꼽아 박진감있는 필체를 통해 진술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통해 여러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세계사에 의하면 역사의 지나온 모든 과거로서의 역사와,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순간들만 기록한 기록으로서의 역사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책은 사실로서의 역사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되는 순가, 그러니까 의미없던 사건이 의미를 가지는 찬란한 순간을 기록한것이다. 그것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던 날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와 같은 정말 세계적인 일들을 기록했는가하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받기 직전에 그것이 취소되거나 레닌이 러시아로 들어가는 등 역사적인 사건의 직전, 그러니까 그 시발점이 되는 순간(적어도 그 순간엔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니 아주 위대한 순간이었던)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읽으며 생각해보면 역시 역사란건 과거인 것이다. 현재의 사건은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나야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 고흐는 생전에 자신의 그 어떠한 유화 한 점도 팔지 못했지만 현재의 그의 해바라기 그림은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던대로 그 모든 역사적인 인물들도 아주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당신들과 같은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그것을 내 식으로 치환하자면 역사에 남지 않는 삶을 살더라도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기억되는 저 잘난 인간들보다 살아서 행복한 게 더 낫다. 인간이 역사를 되새김하는 건 선행한 실수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보자면 그 어떤 위대한 순간도 결국은 당시에는 그게 위대한지 그저 그런지 알 수 없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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