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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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둘인것은 '앨리스'시리즈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이라는 긴 시를 모티프로 하여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동명의 소설을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나크 사냥이라는 소설 한 권과 얄팍한 스나크 사냥이라는 시 한 권이(부록으로) 이 책의 구성품이며 특별히 따로 적을 의미를 못 느껴 함께 적는다.

우선 에피타이저 쪽인 루이스 캐럴의 시부터 말해보자면, 이 작가는 결코 쉬운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데, 거의 동화에 가까운 형태로 만나기 쉬운 '앨리스'시리즈의 여러 이형본들의 모작품인 '앨리스'원작의 경우 결코 동화나 옛날 이야기처럼 낭만적이며 재밌는 작품은 아니다. 암시와 은유로 가득 차 있는 그의 그 소설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스나크 사냥이라는 시는 아홉 명의 b로 시작되는 등장인물들이 스나크라는 괴물을 찾아 항해하는 내용을 다뤘는데 스나크는 만나서 잡는 순간 잡은 자신 스스로가 사라져 버리는 일이 생긴하고 한다. 이 시의 대부분은 그런 스나크 사냥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각자의 두려움 혹은 망상 따위를 그리고 있는데 종국엔 결국 스나크를 사냥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패에 등장인물들은 안도한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괴물을 잡아야하는 순간 스스로가 사라져버리는(물리적이 아닌, 정신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 하여 소설을 써 내려간다.

단 하룻밤 사이의 일을 순차적으로 여러 사람의 입과 눈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을 교차서술하는데 약간의 추리소설적 장치가 전/중반부까지 깔려 있어서 이야기 진행에 대한 궁금증과 미약한 공포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는 '슈지'라는 인물에 완전히 감정 이입되어 '오리구치'를 좇을 수밖에 없어진다. 등장 인물들은 이 촘촘한 네러티브의 틈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위에서 춤을 추며 미야베 미유키는 그 들 줄 몇명에게 각자의 스나크를 사냥해야 하는 상황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개연성이 있어 독자가 받아들이는 그 비극의 크기는 더 커진다.

하지만 나는 이 재미난 책을 읽으며 나는 왠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너무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흠잡을 데 없고 복선이나 반전, 장르적 장치도 뛰어나다. 인간성에 대한 탐구도 있으며 메시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찝찝함의 원인은 오히려 이 웰메이드에 있는 듯하다. 이렇다할 단점이 없는 건 곧 이렇다할 특징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분명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고 쉽게 남에게 추천하지도 못하겠다. 쉽게 읽는 것과 쉽게 잊는 것의 경계는 그 운율만큼이나 모호하다. 분명 현대의 독서는 어느 순간부터 엔터테인먼트적 속성과 섞여지고 있다. 쓸데없이 근엄한 척 하며 대중성을 기피하는 태로는 분명 예술이 아닌 아집이나 오만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진지함은 예술이, 문학이 가져야 할 필요충분 조건이다. 다만 그 양쪽 어디 즈음에 있어야 할지 재는 것은 이 소설의 역량에 대해 말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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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걸어온 길 - 학고재신서 36
임영방 지음 / 학고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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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란 타이틀이 붙은 책을 읽으며 고등학교 수업 중 미술이 아닌 세계사 시간 생각이 난 것은 '미술'을 제외한 나머지 제목-걸어온 길-과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걸어온 길은 곧 역사를 뜻한 것일테니. 물론 나는 수업시간에 배웠고 시험도 봐야 했기에 중세 시대에 바로크 양식 다음에 로코코 양식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왔고 그것들이 왜 그런 이름들이 붙게 됐는지 등은 전혀 몰랐었다.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일종의 해답서이며 해설서다. 그리스(혹은 그 이전,인류의 탄생즈음)시대부터 시작된 미술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짚으며 진행과정을 서술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서술이다. 다만 그 앞엔 '서양'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고 조금은 학문적이어서 딱딱해 읽기 쉽지 않았지만 미술에(서양화에)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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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해석 -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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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해석이라니. 우습다. 얼마 전에 읽은 살인의 해석과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섞은 듯한 제목이다. 하지만 더 우스운 것은 책은 프로이트(원제는 the death of the sigmund freud)에 대해 다뤘을 뿐아니라 프로이트의 주변 인물로 스테판 츠바이크가 등장하기도 한다.(살인의 해석엔 프로이트가 나오는 것은 물론 그의 중요한 주장들을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저자가 스테판 츠바이크다)이런 재밌는 우연덕에 책 초반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됐다. 작품은 원제 그대로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을 다루고 있다. 단순한 2년간의 전기뿐 아니라 그의 학설과 주장을 통해 당시(1938-9)역사상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히틀러와 나치, 곧 전체주의(파시즘)를 해석하려 든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 초반부에 1909년의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같이 존재하던 히틀러와 프로이트를 대조시킴으로써(젊고-늙고, 가난하고-부유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실패하고-성공하고 등등) 흥미를 배가시키는데, 그 두 인물은 1938년에 각각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는 나치스와 유대인으로 다시 조우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작품은 역사라기보다는 프로이트가 최후 2년간 관심을 가지며 연구하던 학문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름을 들어 본 정도 이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은 썩 읽기 쉽지도, 이해하기 쉽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얻은 부분으로 보건데 광기의 해석이라는 나치스와 히틀러, 파시즘을 겨냥한 이 책의 제목은 실로 일부분의 제목일 뿐이다. 프로이트의 마지막 2년은 실제로 나치스에 의해 현실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영향을 받긴 했지만(런던으로 망명해야 했으며 주변 인물들을 잃기도 했다) 책을 읽다보면 그 전체주의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프로이트의 속에서 우선권이 그리 높지 않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격렬한 역사의 변화는 한 인간의 삶에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영향을 주기에 그런 제목도 용납 못할 수준은 아니다.

프로이트와 그의 사상 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는 상당히 공감하며 읽기 힘든 책이다. 다만 히틀러와 프로이트가 대립되는 순간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상당한 재미를 주었다. 그건 바로 프로이트의 학문이라는 딱딱함 속에서 이야기(네러티브)라는 부분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러모로 쉽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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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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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100권 읽기 목표의 3/4였던 75권을 돌파했다. 비록 군생활을 75%한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그와 관계 없이 넉넉하다.

가벼운 근황은 뒤로 하고 이 책은 영국 대중 문학의 스타 닉 혼비가 쓴 축구 에세이이다. 약간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글이긴 하지만 일종의 자서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데 나는 축구 에세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품은 닉 혼비가 아스날을 처음 만난 십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그와 아스날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시험당하고 서로 지겨워졌다가 다시 찾게되고 종국엔 일종의 평행성을 그으며 동반자가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축구에세이라 한 것은 그가 인생의 굴곡의 순간들을 그때 있었던 아스날의 경기와 함께 기억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했다. 일테면 나는 그때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아스날은 FA컵 결승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4:1의 배배를 당했는데 거기서 골을 넣은 선수는 블라블라 이런 식이다. (닉 혼비에 따르면)자료조사가 아닌 기억에만 의존해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인데, 그것 자체로 그의 강박증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렇기에 매력적이다. 즐겁게 책을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결국 하나의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왜 하필 축구이며 아스날이고,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인가. 분명 닉 혼비의 강박은 상식을 넘는 수준이고 우리는 이에 쉬이 공감하기도, 그 질문에 해답을 얻기도 쉽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혼비의 가족관계나 인성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어떠한 결핌이 아스날에 대한 관심으로 굴곡된 게 아닐까 추측해보는데 과연 이 내 추측이 어디까지 맞는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것은 모두가 꼭 닮았고 그 상처는 아스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던, 필요 이상의 사교성이던, 쓸데없는 독후감상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던 어떤 식으로든 발산되기 마련이니까.

혼비도 결국 '자신의 아스날'을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혹은 말하는 과정을 겪음으로써)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낸다.(그에 따르면 단지 결정적인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이긴 것으로 극복한다지만) 말이 된다는 것은 그게 더 이상 감추어야 하는 미숙한 말과 생채기가 아닌, 과거가 된다는 것이니까. 자신의 상처를 묵묵히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혼비처럼 용기를 가지고, 각자의 아스날을 말하길 바란다. 이것이 혼비가 이 책을 쓴 이유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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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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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체로 하루키에게만은 너그러운 편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힘빠진 단편집도 즐겁게 읽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일 년에 적어도 한 권 이상의 하루키를 읽어온 듯하다. 세어보면 벌써 7년(!)째이다.

작품은 다섯 개의 기담으로 이뤄져있다. 하루키의 단편은 이렇다할 특정한 소재 하나를 뼈대로 특유의 문장을 살로 붙여 쓴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모를 시커면 구멍 하날 뚫어 놓고 독자와의 장난처럼 그걸 채 설명하지 않으며 이야길 마무리 짓는다. 이 단편집을 예로 보면 '시나가와 원숭이'의 경우 '유코'가 있겠고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라면 '나'가 찾고 있는 '그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수수께끼가 상당히 적은 편인데 전짜기 하루키는 그런 요소를 공공연하게 주 내러티브 속에 포함시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채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하나레이 만'이나 '시나가와 원숭이'를 보면 그런 것 없이 상당히 매끄럽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담백히 마무리된다. 그런 추가요소는 오로지 곁가지 속에만 있는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 최근 작품들(해변의 카프카-어둠의 저편)을 보면 상당히 내러티브적으로 너그러워진것을 알 수 있는데 이번 작품도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장선상의 작품인 듯 하다. 곧 여러모로 이 작품은 하나의 소품 정도로 보이는데 '어디에서든...'과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를 보면 장편소설로의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보이는 점을 보자면(실제로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 또한 단편에서 출발했다) 하루키 문학에 장기적으로 어떠한 발판이나 동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소품이라고 그저 무시하긴 힘들어 보인다.

담백하여서 역시 읽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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