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군생활 100권 읽기 목표의 3/4였던 75권을 돌파했다. 비록 군생활을 75%한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그와 관계 없이 넉넉하다.

가벼운 근황은 뒤로 하고 이 책은 영국 대중 문학의 스타 닉 혼비가 쓴 축구 에세이이다. 약간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글이긴 하지만 일종의 자서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데 나는 축구 에세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품은 닉 혼비가 아스날을 처음 만난 십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그와 아스날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시험당하고 서로 지겨워졌다가 다시 찾게되고 종국엔 일종의 평행성을 그으며 동반자가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축구에세이라 한 것은 그가 인생의 굴곡의 순간들을 그때 있었던 아스날의 경기와 함께 기억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했다. 일테면 나는 그때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아스날은 FA컵 결승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4:1의 배배를 당했는데 거기서 골을 넣은 선수는 블라블라 이런 식이다. (닉 혼비에 따르면)자료조사가 아닌 기억에만 의존해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인데, 그것 자체로 그의 강박증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렇기에 매력적이다. 즐겁게 책을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결국 하나의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왜 하필 축구이며 아스날이고,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인가. 분명 닉 혼비의 강박은 상식을 넘는 수준이고 우리는 이에 쉬이 공감하기도, 그 질문에 해답을 얻기도 쉽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혼비의 가족관계나 인성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어떠한 결핌이 아스날에 대한 관심으로 굴곡된 게 아닐까 추측해보는데 과연 이 내 추측이 어디까지 맞는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것은 모두가 꼭 닮았고 그 상처는 아스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던, 필요 이상의 사교성이던, 쓸데없는 독후감상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던 어떤 식으로든 발산되기 마련이니까.

혼비도 결국 '자신의 아스날'을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혹은 말하는 과정을 겪음으로써)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낸다.(그에 따르면 단지 결정적인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이긴 것으로 극복한다지만) 말이 된다는 것은 그게 더 이상 감추어야 하는 미숙한 말과 생채기가 아닌, 과거가 된다는 것이니까. 자신의 상처를 묵묵히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혼비처럼 용기를 가지고, 각자의 아스날을 말하길 바란다. 이것이 혼비가 이 책을 쓴 이유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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