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4월

현대문학사 수업을 듣는다. 문학사는 곧 문학의 역사이다. 문학의 역사에서 역사를 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기에 강사는 한국 현대사를 정리해오라는 과제를 냈다. 수업도 강사도 엿 같지만 과제만큼은 아주 좋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한국 근 현대사를 선태과목으로 선택하긴 했다만 무슨 무슨 단체 이름 외우다 포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현대사가 뒤죽박죽이었다. 이번에 과제를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현대사가 대충 정리되었는데, 그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되다니 놀라울 뿐이었는데, 그것은 나의 무식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책은 다소 좌파적인 시야에서 본 한국현대사인데, 물론 역사라는 것은 중도의 입장에서 바라 본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지만 한국 현대사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좌파적 성향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역사는 민족주의적 정신도 없는 이상한 극우에 의해 이상하게 굴러온(굴러 오고 있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익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도 ‘다소’ 잘못은 있으나 대체로 ‘좋았던 시절’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제를 위해 다른 책 한 권도 빌려 훑어보았는데, 그것은 우익의 성향에서 써진 것이었다. 그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니 길게 말하지 않겠지만 정말 마음이 답답해졌다는 이야기만은 해두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난 광주에서 군 생활을 했었는데, 5월 18일이 휴일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 부대에선 외출, 박을 금지했었는데 당시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너무도 잘 이해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주의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심정만큼은 이해가 됐다. 뭐 여기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 한국의 현대사를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으니 생각하도록 하는데,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현대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관련 서적을 반드시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또한 이렇게 잘 모르고 25년을 살아왔고 이제야 이런 책을 읽었지만 그간 무지했던 시절이 너무도 부끄러울 뿐이었다. 지난 일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동의하지만, 현재도 결국은 과거가 쌓여서 생긴 것이 아닌가. 지금 더 올바르게 살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2010.9.1 신들의 전쟁(상)-닐 게이먼

신들의 전쟁 (상) ㅣ 환상문학전집 25
닐 게이먼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갖은 상을 휩쓴 닐 게이먼의 대표작. 무엇보다 팬터지 작가 특유의 완성도 있고 개성 넘치는 문체덕분에 읽는 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 (하)권을 읽는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자세한 감상은 하권을 읽는 그날이 될 것이겠지.


이것은 마치 이말년의 인생의 무게 처럼 하권에 대한 감상은 영원히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2010.8.26 침묵하는 소수-시오노 나나미

침묵하는 소수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9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0월

‘로마인 이야기’로 워낙 잘 알려진 작가이기에 이름은 익히 듣고 있었으나 그녀의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능하면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읽으려 했지만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었기에(검색은 됐다만) 차선으로 이 책을 빌렸다. 책은 작가의 다양한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인데, 그녀 자신이 무언가 그 글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것을 침묵하는 소수silent minority라 이름 붙여 놓았다. 그 말의 뜻은 역자 후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내가 그것을 이곳에 똑같이 옮기는 시간 낭비를 하는 것 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각자 찾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생략해둔다.

작품 내의 수필들은 크게 역사적인 인물(혹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유학생활 중 만났던 사람들(과 관련된 일) 이야기, 그리고 일상 체험이 아닌 관념적인 개념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역시 가장 재미있었는데, 다음으로는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어 보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스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는 듯 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관련 서적 중 하나가 아닌가. 우선 빌려놓은 책들을 읽은 후에 빌려 볼 생각이다.

고작 책 한 권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해 떠벌리는 것도 웃기지만, 개인적인 글에 그런 눈치를 볼 게 뭐 있을까. 어쨌든 느낀 대로 쓰고, 기록해 두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이니 상관 말고 써두겠다. 일본의 힘은 바로 이런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은 후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은 정말로 스페셜리스트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완전히 즐기기 때문에 가능한 듯하다. 현재 한국은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토익+학점+스펙) 모든 사람이 분투하고 있는데 그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일본처럼 이러한 인물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국에서 쓴 자국의 역사서가 역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는(로마인 이야기) 기이한 힘은 그녀 자신이 그것에 완전히 빠졌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것은 분명히 박수를 받을 일이 된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결코 그것에 질리거나 지치지 않는다. 다시금 얼른 그녀의 다른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0.8.19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J.D.샐린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6월

미국 현대 소설을 읽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문화적 사치를 누리는 듯 한 감정을 들게 한다. 바꿔 말하자면 가장 좋아하는 밴드 이름에 킹 크림슨이나 핑크 플로이드 따위를 적는 기분을 들게 하는데, 이것은 생각할수록 상당히 흡사하다. 자랑하고 싶은 감정과 조금 부끄러운(왠지 지적인 가식을 떠는 듯한)감정이 복잡하게 드는 것에서 우선 그런데, 그것 외에도 읽기(듣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면에서는 조금 더 흡사한 느낌이다.

작품은 표제작과 동일한 중편 하나와 ‘시모어, 서문’이라는 작품의 b-side 격인 작품 하나가 더 수록되어 있다. 후자의 중편은 일테면 본편에 대한 사족이나 변명, 설명서와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예상 외의 큰 성공 이후 은둔하였던 이 작가의 몇 안되는 중, 단편들은 죄다 복잡하고 어렵기 짝이 없는데 이번 작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읽는 데 오래 걸렸고 거의 마지막 20페이지 정도는 읽지 못하고 그냥 반납해버렸다. 시모어, 서문의 경우가 훨씬 어려웠는데 문장의 밀도가 너무 높아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내는 것이 고역이었으므로 반납해버린 선택에 후회는 없다.

쓰면서 간단히 검색해보니 샐린저는 지난 1월 27일에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한다. 긴 은둔으로 이제 그의 사진은 아주 젊을 적 찍은 것밖에 없고, 사람들은 샐린저 하면 그 사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이 기이했던 작가가 1965년 이후 발표한 작품은 없지만, 그의 사망 이후 가족들에 의해 발표될 유작들이 있을지 조금은 기대를 해본다.

모쪼록, rest in place.

2010.8.4 그레이브야드 북-닐 게이먼

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장르문학, 그 중에서도 팬터지와 sf야 워낙 순문학이랑은 담 쌓은 독자적인 장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상이하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며 위대한 커리어를 쌓았고, 쌓아가고 있는 지금의 작가는 바로 이 닐 게이먼이 아닐까. 일찍이 샌드맨으로 그래픽 노블계(만화)에서도 크게 인정 받았고 각종 팬터지/sf소설들로 전 세계의 상을 휩쓴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왠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제 여러 장르 문학 작가들이 수준 높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그것들이 또 인정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제 더 이상 팬터지와 sf소설들도 결코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하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사실 과거의 윌리엄 깁슨이나 현재의 테드 창과 같은 작가의 작품은 솔직히 그 작품의 완성도에 걸맞게 장르문학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 읽기 힘든 면이 있을 정도로 작품이 수준 높고 어려운 반면,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나 국내의 공장양산형 팬터지는 너무도 가볍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의 성장에 중심에는 그 재미와 깊이라는 양쪽 모두의 면에서 성공적인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몇몇 작가들의 공로가 크다.

반복하여 말했듯 닐 게이먼이 그 최전방에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의 소설은 우선 너무 재미있다. 루디야드 키플링의 정글북을 적절히 변주한 이 작품은 우연히 무덤으로 도망치게 된 한 갓난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구조나 이야기 진행은 어떠한 걸림돌도 없이 매끄럽고 훌륭하다. 특히 이것은 소년, 소녀들이 읽기에 너무 좋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림책이나 동화가 있고 성인들에겐 이루 말 할 수 없이 좋은 많이 책들이 있으나 그 사이에 낀 소년, 소녀, 청소년들에게는 사실 꼭 맞는 책은 없는 것 같은데 이와 같은 소설들은 그러한 연령대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아주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