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상투성을 깬 작가 - 레이먼드 브릭스 (제1부)
불만에 찬 두꺼비가 토해내는 환상의 세계
“대체로 나는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부루퉁해 있다. 모든일이 성가시게 느껴진다. 언제나 세상 살기 괴롭다고 느껴왔고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느껴진다. 언제나 뚱해 왔고 지금은 더 불만투성이다. 난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이 불만에 찬 고백을 읽기 전에는 난 별로 그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꼼꼼한 묘사, 숨쉴 틈 없이 빡빡한 그림. 그리고 파격이나 통쾌함 보다는 성실한 세부묘사와 그 뒤에 숨어 있을 법한 - 읽다보면 꼭 찾아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만드는 교훈, 그런 것들이 숨막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의 책은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지만 그래서 매력도 없는 모범생의 일기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신문기사에 난 의외의 고백을 읽고 그의 자서전 - 이라기 보다는 그의 부모의 전기 - 에 가까운 [에델과 에른스트 Ethel & Ernest]를 사서 본 뒤에 약간 다른 시각으로 그의 책들을 들여다 볼수 있게 되었다. 난 언제나 작품에 담긴 철학세계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이나 숨은 뒷이야기 따위에 지나친 흥미를 느끼는 저질독자이므로 먼저 [에델과 에른스트]를 통해 그의 출신성분을 추적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어느 집의 하녀였고 그의 아버지는 우유배달부였다. 어느날 창문 밖으로 먼지를 털다가 지나가는 우유배달부와 눈이 마주치게 되고 눈이 마주친 김에 헬로우 인사를 하다 보니 둘은 어느새 극장구경을 같이 가게 된다. 이 가난한 연인이 결혼을 해서 힘겹게 얻은 (그의 어머니가 레이먼드를 낳은 뒤 의사가 아버지에게 충고하기를 “더 자식을 바라다간 아내를 잃게 될거요” 라고 한다) 아들이 바로 레이먼드 브릭스이다.
아직도 귀족이 건재하고 여왕이 품위를 지키는 대영제국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아주 밑바닥 출신인 셈이다.
또하나의 불운은 그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제에 도에 넘치게 똑똑한 바람에 그래머 스쿨에 가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머 스쿨은 2차 대전 뒤 영국에서 가난한 수재들에게도 고급교육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일종의 영재교육 학교다. 그뒤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이 그래머 스쿨이 계급간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의견에 따라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그래머 스쿨에서 레이먼드는 아마 자기처럼 ‘가난한 똑똑한 아이‘뿐만 아니라 ’똑똑한 귀족아이‘도 만났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라에도 숱하게 있을 법한 가난한 집안의 똑똑한 아이.
그를 환대하는 착한 부모님 - 이것이 레이먼드 브릭스의 출신성분이다.
[에델과 에른스트]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골수 노동당 지지자이고 어머니는 과격한 노동당 보다는 보수당을 은근히 믿고 따르는 온건주부였다.정치적 견해 차이가 가끔 부부 사이에 말다툼을 일으키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사이좋은 두 부부 사이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레이먼드가 이 착한 부모님을 가장 크게 실망시킨 일은 의사나 선생님이 되는 길보다는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벌거벗은 여자나 그리는 미술대학에 진학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부모님들이 머리를 싸매고 눕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약간 슬퍼했을 뿐.
과연 이런 출신성분이나 성장과정이 그의 책들과 무슨 연관이 있기나 한 걸까?
이런 그이 개인사를 알기 전에는 지나치게 꼼꼼한 일산생활 묘사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려대는 가구며 찾잔, 주전자. 물건의 상표들, 옷차림 따위가 모두 그가 일부러 지독하게 고수하는 보통사람들 (귀족도 중산층도 아닌 노동자 계급)의 생활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책에는 그 흔한 영국신사의 옷차림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이 쓰는 찻잔이나 가구들을 보면 영국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귀족적인 세련됨이나 골동취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 흔한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시키는 일도 없다. 산타할아버지는 노동자 계급의 전형처럼 그려진다. 뚱뚱한 몸 하나면 가득 차는 좁은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역시 상자곽처럼 답답한 거실에서 겨우 발을 펴고 휴식을 취한다.
특별한 정치적 신념을 지녔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의 불만스런 고백을 들어보면 그는 무슨 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비관적인 듯 하다) 다만 많은 그림책들이 대충 담아내는 거짓된 일상들을 그는 정신 바짝 차리고 쳐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독한 태도가 어쩌면 영국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 계급 수재가 느꼈을 법한 좌절감과 부당함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두 번째로 흥미있은 개인사는 그가 독신남이라는 점.(이건 아마 나에게만 해당하는 흥미로운 점이겠지만)
거의 모든 어린이책 작가들의 소개글을 보면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두 마리의 개를 기르며 평화로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게 전형적인 끝맺음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레이먼드 브릭스는 독신. 게다가 (방년 64세의) 남자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의 책들을 보니 그 어디에도 작가에 대한 소개글이 없다.
물론 그가 결혼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다. 미술대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 진과 결혼을 했지만 결혼할 때부터 이비 여자친구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2년 뒤 진은 백혈병으로 죽게 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레이먼드 브릭스에게는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 TV를 보는 여자친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비극적인 결혼생활이다. 특히나 사십여년을 해로한 뒤 몇 달 사이로 함께 이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의 결혼생활에 비하자면.
어쨌든 이런 개인사의 색안경을 쓰고 그의 책을 들여다보면 새삼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계속.....)
- 꿀밤나무 제2호에 올리신 조은수님의 글입니다.
다소 긴 내용인지라 일단 앞부분 레이먼드 브릭스의 출신과 관련된 부분까지 먼저 올립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죽 이어집니다. 축약을 할까 했는데 제가 또 축약하고 그러는 걸 워낙 못하기도 하고 조은수님의 글이 물흐르듯 재미있으셔서 한부분이라도 놓치기가 아까와 중간에 [사람 The Man]과 [곰팡이 귀신 Fungus thr Bogeyman]에 대한 코멘트만 빼고 전문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