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통제되는 몸: 낙태 금지법의 진짜 욕망 




" "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데 참여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을 기소하는 신선한 전략(그러나 그 고발에는 확고한 법적 근거가 있다)은 지금껏 우리가 이 논쟁을 부각해온 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남성이 평생 어린애로 사는 것과 달리 임신한 여성은 책임감 있게 행동해왔다. 우리는 여성들의 성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동일한 통제를 남성에게 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남성과 임신중단을 함께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둘을 엮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여성이 남성 없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 오버먼&볼 (162 인용구) 


"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을 통제하고, 여성이 지정된 남성에게 아이를 "제공"해줄 거라는 이미 만연해 있는 기대를 여성에게 더욱더 강요하려는 것이 낙태 반대 운동가들의 진짜 욕망이다. " (163) 


" 그러므로 우리는 낙태 반대 운동을 여성혐오적인 수많은 강제 메커니즘의 한 가지 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매커니즘은 여성에게 돌봄노동을 강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64) 


" 또한 한 번 엄마가 되면 영원히 엄마여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로 혹사당하는 차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감정적, 물질적, 도덕적 필요를 책임지는 존재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은 [아이 외에] 다른 이들에게까지 엄마가 되어 원조와 위로, 양육과 사랑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 앞 장에서 살폈듯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그런 도덕적 재화를 요청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리고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여성이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질 경우 남성은 육아 의무를 공동으로, 평등하게 져야 한다는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 (165~166) 


" 임신한 신체를 통제하는 것은 여성들의 신체를 규제하고, 감시하고, 점차 기각해버리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와 유사한 흥미로운(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사례는 트랜스젠더 반대 운동으로, 그 운동이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트랜스여성의 신체를 감시하는 데 집착한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169) 


" 그렇다면 왜 우리는 트랜스여성의 (혹은 다시 말하지만, 트랜스여성을 가장하려는 시스젠더 남성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는 걸까? 그리고 왜 시스젠더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걸까? 트랜스포비아transphobia, 특히 여성혐오와 트랜스포비아가 위험천만하고 유해하게 교차하는 장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이 될 것이다. " (171) 


" "트랜스여성의 신체는 본질적으로 남성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트랜스여성의 질은 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질이 트랜스여성 신체의 도덕적 구조를 완성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트랜스여성은 자신의 신체 구조는 물론 자신이 권리를 갖는 그 성기(신체 구조를 도덕적으로 완성시켜주는 것) 또한 '잘못 재현'한 것이 된다." 

 배처가 지적한 이러한 역학은 필연적으로 특권의식이라는 중요한 귀결에 도달한다. 누군가 성별이 여성으로 인식될 때 그 사람의 성기 형태를 (심지어 옷을 다 갖춰 입고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한눈에 틀림없이 알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이런 논리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한눈에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특권의식으로 확장되며, 시스젠더 남성에게 이성애 규범에 기초한 섹스와 생물학적 아동을 제공할 수 없는 트랜스여성일 경우 스스로를 여성으로 제시해선 안 된다는 의무를 함축한다.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트랜스여성에게는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야 할 의무가 결코 없다. " (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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