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 두 사람의 케미라고 할까, 서문 초반부터 느껴지는 연대의 향기. 함께 책을 쓴다는 건 어떤 일일까 상상해본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끈끈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뢰가 느껴진다. 서문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느낌만으로 좋았다. 무엇보다 개정판 서문 마지막 부분의 자신감!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저자들. '페미니스트 비평의 선구자, 기원의 순간.' 훌륭하다.

서문에서부터 수많은 작가와 학자들 이름이 나온다. 너무 모르는 나는 그저 가끔 아는 이름 나오면 반가울 뿐이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작가들의 작품도 거의 읽은 것이 없다.ㅠㅠ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 가지를 뻗는 다른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쓰는 동안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책이 나온 후의 반응들, 거기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을 풀어놓는데 개정판 서문이라 가능했겠지만 신선했다. 이를테면, "그러한 연구의 섬세함을 찬양하는 주장과 그러한 연구가 보여 주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반대하는 주장이 우리를 "대학에서의 미친 여자"로 만들었다고 외치는 수밖에, 우리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49) 같은 구절들.ㅋㅋㅋ 그리고 평소 생각지 못했던 학계의 문제들. "그것은 "고급" 이론(이 형용사를 주목하라!)을 향한 문학비평의 이동은 전국적이거나 지역적인 학문의 영역에서 인문주의자가 과학자들과 연구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 경쟁에서 승자는 항상 "부드러운" 인문주의자보다는 "강한" 과학자이고, 앞으로도 의심할 바 없이 항상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51) 그 세계도 장난 아닌 세계군 생각했다.ㅠㅠ 짧은 설명이었지만 이해가 간다. 그러할 듯.

올해 함께 읽은 <소설의 정치사>가 떠올랐다. 어려워서 이건 글자 이건 여백 이렇게 읽었는데 ㅎㅎ 그래도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 느낌?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내용을 아직 모르지만 읽으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중에 나중에 19세기 문학작품을 두루두루 찾아 읽고 나면 <소설의 정치사>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책들이 다시 읽히겠지? 그것도 잘? (과연?ㅎ)

"예를 들면 중요한 노예 내러티브의 저자인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가 <폭풍의 언덕>의 저자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서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가 메리 셸리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리고 왜 (평가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면) 더 활기를 주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20세기 초 참정권 투쟁의 시대는 더 열등한 예술적인 목소리(시인들 중에서는 크리스티나 로세티 대신에 앨리스 메이넬, 소설가 중에는 조지 엘리엇 대신 메이 싱클레어)에 의해서 특징 지워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 질문이 시사하고 있듯이 페미니스트 비평을 위해서 19세기 연구는 여전히 탐색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 (38~39)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해리엇 제이콥스와 서저너 트루스가 나왔었는데 여기서도 만나서 검색.

*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189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로 태어난 해리엇 제이콥스는 여주인을 통해 글을 배웠다. 제이콥스는 여주인이 죽자마자 다른 백인 남성 주인에게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그녀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고 다른 백인 남성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고, 두 아이는 그녀의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강제에 복종하는 것보다 자신을 줘버리는 편이 자존심에 상처를 덜 받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녀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 자신이 북쪽으로 갔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붙잡혀 다시 노예가 되어 처벌받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주인이 살고 있는 같은 읍내의 할머니 집에 숨어 캄캄한 다락방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그녀는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을 훔쳐보면서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북부로 도피해, 뉴욕 주 로체스터에 정착하게 되었다. 로체스터는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노예 제도 반대 신문 《노스 스타(North Star)》를 발행한 곳이며 가까운 곳에 있는 세니카폴스는 여권신장대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로체스터에서 제이콥스는 퀘이커 교도이며 페미니스트이자 노예 제도 폐지론자인 에이미 포스트와 친구가 되었다. 포스트는 제이콥스에게 자서전을 쓰도록 권고했다. 《노예 소녀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은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되었으며 편집은 리디아 차일드가 담당했다. 이 책은 흑인 여성 노예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있다. 제이콥스의 책은 더글러스의 책처럼 식민시대의 올라우다 에퀴아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예설화(slave narrative) 장르에 속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년~1896년)

* 서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

1797년 미국 뉴욕 주 얼스터 카운티의 네덜란드 지주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이자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으며 어린 시절 여러 차례 노예로 팔려 다녔다. 1810년대에 다른 노예와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았다. 1826년 갓난아기인 딸을 데리고 탈출하여 그녀를 받아준 밴 왜그너(Van Wagener) 집안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를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때부터 이름을 이자벨라 밴 왜그너(Isabella Van Wagener)라고 했다. 1829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시로 이사했다.

1843년 이름을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로 바꾸고 본격적인 설교와 노예제폐지, 여성인권과 관련된 연설을 시작했다. 1851년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열린 오하이오 여성 인권회의에서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Ain't I a Woman?)〉라는 유명한 즉흥연설을 했으며, 이후 10년 간 크고 작은 청중 앞에서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고 글도 몰랐지만 누구보다 설득력 있고 열정적인 연사로 유명했고, 이를 통해 소저너 트루스는 미국의 노예제폐지, 여성참정권 운동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다. 1857년 9월 미시건 주 배틀 크릭(Battle Creek)에 집을 사서 이사했으며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북군의 신병 모집과 군수품 지원을 거들고, 1864년 10월에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났다. 이후의 재건 시대에는 연방정부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해방노예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나눠주도록 하자는 운동을 전개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1870년에는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을 만났다. 1883년 11월 26일 배틀 크릭의 집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장례식장에는 3,000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배틀 크릭 오크 힐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소저너 트루스가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의 권유로 친구 올리브 길버트(Olive Gilbert)에게 구술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소저너 트루스 이야기 : 어느 북부 노예(Th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 A Northern Slave)』가 1950년에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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