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의 성격(혹은 성향)을 한두 마디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는다. 나는 첫만남에 무척 긴장을 하고 낯을 가리지만 일단 친해지고 나면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말이 흘러나와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그럴 땐 꼭 실수를 해서 밤마다 이불킥을 한다. 이런 실수를 쿨!하게 넘겨야 하는데 그걸 여적 못해서 끌어안고 산다. 때로는 엄청 소극적이면서도 또 어떤 때엔 적극적으로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내 성격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격, 그 중 공부에 대해 아니 독서에 대한 나의 성격을 생각한다. 

그동안 책을 헛읽었다,는 생각은 작년부터 들었다. 학교를 다닐 때나 어학원을 다닐 때처럼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던 때를 제외하면 어려운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드문드문이라도 무언가를 쓰기는 썼다. 읽었고 썼지만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다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평가한다. 글자들을 뛰어넘고 속독을 하는 버릇도 이제야 얼추 고쳤다. (페미니즘 책들이 나에게 준 또다른 선물!) 조금씩 어려운 책을 접하게 되고, 읽고 난 후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써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 만큼 책 읽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커지고(잘 읽어야 잘 쓸 수 있으니까), 뭔가 치열하게(이런 모호함이라니)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블로그 이웃의 글에서 이 책을 보고 도움이 될 것 같아 바로 구입했다. (공부하기는 싫어하면서 열공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왜 생기는 것인지. 그러니까 내 독서 성향도 역시 한가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다른 탐구 대상이다. 모순이야 모순.) 


세미나,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내가 해본 적은 없어도 들어본 적은 많다. 주로 학자들과 넓은 강당이 떠오르는 것은 드라마 때문이겠지만. 세미나가 뭐하자는 것인지도 이제야 알게 된 걸 보면 내 삶은 정말 세미나란 녀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런 웅장하고 엄숙한 대규모 세미나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세미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제야 안다. 실제로 이름을 붙이지 않아 그렇지 생활 속에서 세미나 비슷한 걸 해본 경험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말이 길었다. 그러니까 나도 세미나 할 수 있다, 이 말이다. 독서모임에서도 가능하다, 이 말이다. <세미나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책을 제대로, 깊이 읽고 싶다고? 그럼 일단 '잘'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해. 그럴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야. 라고 쓰니 식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구체적인 방법을 여기 다 쓸 수도 없고 그러면 스포일러 되니까 안 하겠다. 이런 말 나도 하겠네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다 책을 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ㅎㅎ (간혹 정말정말로 이런 책은 #@!#$#!&#^&***((^$#$%%  싶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그런 책들 다들 보신 적 있죠?) 


내가 궁금했던 혹은 잘하고 싶었던 것은 '발제문' 쓰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질문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 질문이 늘 1차원적이라 조바심이 났다. 물론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는 1차원적 질문밖에 할 수 없다. 그러니 결국 늘 결론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읽어라. 많이 읽어라. 깊이있게 읽어라.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힌트를 얻는다. 독서와 글쓰기 책들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혼자 책을 읽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거나 느리다는 것. 예전에는 혼자 읽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이젠 발전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마침 다정한 이웃님이 강독(형식의) 모임을 권유하셔서, 하고 있는 다른 독서모임들도 있는데, 덥석 손을 잡았다. 앞에서 성격 이야기를 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컴퓨터 카메라를 켜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다. 음독으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 역시 나에게 없는 경험이다. 강독 형식의 세미나가 읽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책에 나온다. 다양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탐구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되는 행복은 당연히 함께 온다.) 


발제문으로 시작해서 모임 이야기로 끝날 뻔 했다. 그러니까 발제문. 며칠 전에 학술 회의를 줌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책> 을 실전 영상으로 보는 것 같았다! 논문을 쓴 교수님들이 내용 발표를 하고 그 논문을 미리 읽은 또다른 교수님들이 발제문을 준비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정된 시간 탓에 빠듯하게 진행이 되긴 했지만 발제문은 저렇게 쓰는 것이구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당장 읽은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는 발제문을 쓰게 되려면 엄청나게 연습을 해야 겠구나,도 싶었다. 그러나 좌절하지는 않으련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질문하라고. 원래 세미나는 내가 깨지려고 하는 거라고. 그걸 통해 배울 수 있는 거라고. 맞는 말씀. 창피해하면 배울 수 없다. 


"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라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모르겠다는 말을 붙여 가면 되니까요. 더 나아가서 이해가 안 가는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모르겠다'는 진술 자체가 세미나에서는 아주 중요한 발언이 됩니다. 세미나 팀원 전체가 달라붙을 만한 '문제'를 던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입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입을 열 수 없다면 '할 말'을 찾지 마시고, '모르겠다' 싶은 문제를 찾으시면 됩니다. 전체를 다 모르겠다 싶으면 그중에서 특히 더 모르겠는 걸 찾아야 합니다. 어떤 걸 모르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겠다 싶은 걸 찾아야 합니다. 거기가 출발점입니다." (171) 


(위 구절을 치다 보니 문득,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가 있을 때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정적이 흐를 때의 난감함,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일 때의 조급함, 그럴 때 있지 않나 왜. 실전에 응용해 봐야 하겠다.) 


세미나를 잘 하는 법, 질문하는 법, 준비하고 진행하는 법, 유의점 등등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도 하는 이 책은(가만 책이 말을 하는 것인가?) 그래서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다만 "공부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전 응용. 모르겠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인생 공부를 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게 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않나?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릴 시간이 내게는 있다. 누군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수 있다. 그리고 간혹 비문은 아닌데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있(는 듯하)다. 딱히 잘못된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별 하나를 뺀다. -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 


읽고 있는 어려운 책 중 하나인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오늘 아침에 펼쳤다. 와 어렵다.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다. 아무래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글자만 읽을까 까지도 생각하다가 모르는 것 질문하기, 질문에 질문을 덧붙여 나가기, <세미나책>의 이런 말들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다시 글자들을 읽었다. (책에서 권하는 '목차 쓰기'도 제까닥 해보았다.)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 분명 나는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야 최면을 걸며, 지금 안 되면 다음에, 다음에 안 되면 또 그 다음에. 


*사족 : 제까닥,이라고 쓰면서 맞춤법 맞나 검색했더니 '제꺼덕'의 북한어,라고 나온다. '제꺼덕'이라고 써야 하나 보다. 몰랐다.^^;; (+ '제꺼덕'과 '재까닥' 둘 다 표준어라고 한다.) 


"읽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입으로 말할 때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마 ‘말‘로 하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도 자기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걸 깨달을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의 말로 읽은 것을 다시 전달하면서 알지 못했던 것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불균형은 바로 이어지는 다른 사람과의 토론 속에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어디서 막혔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바로 그게 공부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 P66

"세미나를 한다는 건 그동안 읽어 왔던 ‘책‘을 ‘텍스트‘로 바꾸는 것이고, ‘독자‘였던 자신을 ‘해석자‘로 바꾸는 겁니다. 능동적 읽기인 셈이죠." - P98

" ‘세미나‘는 결국 ‘질문‘에 ‘질문‘을 덧붙여 나가는 공부 형식입니다." - P176

"사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떤 텍스트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렇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부‘가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 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말하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느는 것도 분명히 있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훨씬 정교해진다는 점입니다. 당연합니다. 세미나를 통해서 내 말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실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말이 닿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점점 더 잘 알게 됩니다. 그걸 보면 모든 인문학 공부는 결국 자신에 대한 공부로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더 자주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자신의 무지가 매우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 P178

"그렇게 보면 누가 나보다 더 잘 알고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시점에서 그의 ‘해석‘이 좀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뿐이니까요. 공부는 보다 넓고 긴 지평에서 보면 그와 나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요.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모두 ‘공부‘ 앞에 평등합니다. 저마다 조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에는 우리 모두, 역사상의 유명한 사상가, 철학자들까지 포함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이 세계와 이 세계 안에서의 삶을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P20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10-27 0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난티님!! 나도 난티님하고 같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 되었지만,, 흑흑
근데요, 사람의 성격을 몇 마디로 말하기 힘든 건 사실인데, 지금까지 양파처럼 하나하나 보게 되는 난티님의 성격(?)은 제게 아주 가깝게 느껴져요. 좋아요. 하핫(저처럼 말 못하고 일차원적 적인 사람 또 못 보셨죠???😅😅😅)

난티나무 2021-10-27 03:59   좋아요 2 | URL
멋진 라로님이 멋지다고 말씀해주시니 저도 끝갈 데 없이 좋은 이 마음~ 샬랄랑~~~~~ㅎㅎㅎㅎ
양파 같다고 하시니 (양파 좋아요!) 다 까고 아무것도 안 남지 않도록 발 밑에 흙을 잘 깔아두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헤헷~

다락방 2021-10-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창시절 공부를 되게 안하고 못했거든요. 공부 잘하는 사람 너무 멋져! 하고 동경하였지만 제가 공부를 하진 않았어요. 저는 왜그렇게 공부를 안한건지.. 그시절 어른들이 공부도 때가 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라고 말할 때 귓등으로도 안들었는데, 아아,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 페미니즘 책 파고들고 강연 찾아 들으러 다닐지는요. 그렇게 열심히 읽고 듣고 다니면서 와, 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내 학력이 바뀌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수천번 했어요. 더불어, 공부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인생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총량이 있는데 제 경우엔 10대 20대에 그걸 안해가지고 30대부터 미친듯이 쏟아붓게 된거죠. 어쨌든 제 삶에서 공부의 양은 주어져 있으니까요.

저는 난티나무 님의 어린시절도 학창시절도 알지 못하고, 사실 이렇게 알라딘에서 뵙는게 전부라 아는 게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제가 이렇게 보는 난티나무 님은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공부하실 것 같아요. 제 경우가 공부총량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라면 난티나무 님의 경우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것 같달까요.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재미를 붙이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계속 읽고 쓰고 다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난티나무 님을 이자리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난티나무 2021-10-27 18:20   좋아요 0 | URL
우왓 페이퍼급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공부를 잘 하고 싶었지만 잘 하지 못했습니다. 켁. 방법을 몰랐어요. 지금도 모르긴 하지만. 필요성은 완전 느끼는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공부란 걸 하기 싫어한다는...ㅠㅠ 책은 계속 읽을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가지의 철학이나 정치학이나 역사나 기타등등 알아야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공부를 하게 될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락방님 댓글을 읽으면서 진짜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건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보부아르님도 ‘해방‘ 부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싶어 찔리기도 했고요. 좀더 탐구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하하.
지금이 공부할 때다, 라는 말을 저도 제 아이들에게 하는데... 하아... 그걸 모르는 게 10~20대인 걸까요? 느무 안 하는 거죠.ㅠㅠ 어쩌면 그 나이는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린 게 아닐까요? 30대 들어서야 뭔가 공부라는 걸 느끼면서 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막 드네요.ㅎㅎㅎ 뭐 지금의 나도 하기 싫은 공부가 아이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

수이 2021-10-2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찰싹 언니 곁에 달라붙어서 놀래요.

난티나무 2021-10-27 18:22   좋아요 0 | URL
같이 ‘놀자‘! ㅋㅋㅋ 놀면서 공부하는 방법 좀 연구해 봅시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