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하신 분 계시고 페이퍼도 올라오는데 오늘 벌써 21일이고. 뭐라도 끄적여야 하겠다는 압박감에 뭐라도 끄적인다.
<제인 에어>는 언제 읽었는지 생각 안 날 정도로 오래전에, 아마도 중고등학교시절? 내 인생 암흑기에 읽은 책들이라 그런지 날아간 기억 속에 들어있나 보다. <오만과 편견> 역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에 없던 와중에 몇 년 전 다시 읽었고 심지어 작년인가에 또 읽었는데 말이다. 그 밖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소설들은 못 읽었다. <파멜라>는 다른 책에서 봐서 제목 익숙. <폭풍의 언덕>도 마찬가지. 언급된 소설들을 모두 다 읽었더라면 내용이 더 흥미진진했을 것인가 생각했다.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안 읽었다는 부담 없이 책을 접하고 있다. 접하고 있다는 표현이 매우 적절해보이는 것은 모두 다 아시는 것처럼 글자들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었다는 부담은 없지만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부담감은 또 엄청나서. 안 그래도 요즘 소설 너는 무엇, 아리송까리송해서 읽기가 힘든데 <소설의 정치사> 때문에 완전 더 아리송까리송해질 것 같아. 막연히 소설 쓰고 싶다는 '로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젠 소설 못 쓸 것 같아. 너무 어려워. 정말 소설가로 태어나는 것인가? 싶을 정도.
그래도 나름 플래그스티커 붙여가며 330페이지를 돌파하고 있다. 오늘은 뜬금없는 구절들만 몇 개 가져와보기로.
"근대적 개인의 창조는 다른 무엇보다 특정 형태의 정치적 무의식을 요구했다." (p.75)
가끔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있다. 여기서는 "정치적 무의식".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올 구절이 아닌가. 한없이 많은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들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ㅠㅠ
"여자 가정교사가 젠더 개념이 개대고 있는 구분을 흐렸던 것은 바로 돈을 벌기 위해 가정여성의 의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여자 가정교사는 가정적 의무와 돈벌이용 노동을 나누는 절대적으로 엄격한 구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구분은 대중의 마음에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여성을 묘사할 때면 그가 누구이든 매춘부의 형상이 자유롭게 환기될 지경이었다." (p.161)
"가정적 의무와 돈벌이용 노동". 싸움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결론이 나지 않는, 아직 이길 수 없는, 골머리 아픈 주제. 나를 납득시킬 만한 논리가 세워지지 않은 건지? "감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여성". "매춘부의 형상". 열 받고. "감히" 논리는 여전히 활발한 유통을 보이는 것인지라. '순결한 처자'와 '매춘부' 논리 역시. 화가 난다아. (저기요, 락방님, 성착취 도서는 언제 읽나요?)
말이 필요없지. 화가 나지.
"이 아둔한 남자가 쓴 시에서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권력에서 분리되지 못했으며..." (p.295)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권력에서 분리되지 못했"다.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나? 사랑이 되어야 하나? 성적 욕망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나? 왜 사랑에 '빠지면' 손 잡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막 더 나가고 싶고 그런 걸까? 사랑하면 섹스하는 게 '정상'인가? 정말 그게 그런 걸까? 당연한 걸까? 그래야 한다고 세뇌된 건 아닌가? 뭐 이런 지껄임.
아마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집에 있는 <오만과 편견>부터 다시 읽어보겠지. 다시 읽어도 이전의 읽음과 크게 달라지는 느낌이 없다면, 별 생각이 없다면, 나는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상품 넣기 하려고 책 제목을 쳤더니 이런 책이 함께 뜬다.
제목도 "정치적 무의식"이야!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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