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차를 훔치고, 마약을 하고, 주유소나 식당 종업원 같은 밑바닥 일자리를 전전했다. 우리는 고귀하지 않았고, 세상에 감사하거나 희망을 품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멸시하는 걸 알고 있었다." (p.78, 도로시 앨리슨, [계급의 문제])
사람들이 멸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건 맞다. 그 일들은 그러나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아,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일단 접어두고.) 흔히 '밑바닥' 일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다. 누가 어떻게 '밑바닥' 일자리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
글의 요지는 알겠으나 굳이 밑바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까 질문해 본다. 답은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집세 낼 돈이 없을 때 카운터 너머로 딱한 미소를 짓거나 애처로운 웃음을 보낸다고 해서 수치스러울 건 전혀 없었다. 엄마처럼 자존심을 긁기도 하고 사정하기도 하는 식으로 남자들을 구워삶아 돈을 조금 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싫었다. 그럴 정도로 가난한 게 싫었고,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수치심이 드는 게 싫었다. 그건 구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면에서는 몸 파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에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경멸해 마지않았던 일이었다. 결국 나는 돈이 필요했다." (p.89, 도로시 앨리슨, [계급의 문제])
밑줄친 문장('어떤 면에서는 몸 파는 일이나 다름없었다.')을 보는 순간 거부감이 솟아올랐는데 이건 나만 그런 건가 궁금하다. 가난 때문에 사정하고 애걸하고 구걸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몸 파는 일'이 그렇게 한 문장의 수치심으로 뭉쳐서 던져버릴 만한 일인가?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론 다음 <선구자들> 부분에서 읽은 구절도 떠올린다. 아래 부분 읽으면서는 울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위의 인용구와 아래의 인용구가, 그러니까..... 그게......
"... 여성이 자유롭지 않다면 자기 이름값을 하는 게 가능할까?
오늘날, 아니 오늘날까지, 임금노동자가 자기 육체노동을 팔지 않고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것처럼, 여성도 자기 성을 파는 것 말고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다. 여성은 평생 동안 한 남성에게 자기 성을 팔아서 그 대가로 사회에서 존중을 받고 귀부인이나 일꾼으로 새장에 갇힌 삶을 살아간다. 아니면 밤이면 밤마다 성을 파는 '자유여성'이 되어 세상의 멸시를 받다가 빈민굴에서 삶을 마감한다. 어느 경우든 간에 (여성 자신이 정말로 이 문제에 관해 생각을 한다면) 그 여성은 자존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참으로 대단한 선택권이다! -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의 운명이 이러했던가? ... " (p.58, 에드워드 카펜터, [사랑의 성년기]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