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착취를 '성노동'이라 부를 때, 우리는 피해자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들이 당한 피해에 거리를 두고 '나는 개입하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 쉽게 말해서 돈 몇만 원을 내고 여자를 자기 배 밑에 깔고 자기 멋대로 이용해 그 여자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침해해 본 남자가 직장에서 자기 여자 동료를, 가정에서 자기 아내나 누이 혹은 딸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남자의 반이 성착취 경험이 있는 우리 나라의 성폭력 문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돈을 내면 여자를 성착취할 권리를 살 수 있다는 관념과 실천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 상업화된 성착취가 거의 모든 사회에서 확장되고 정상화된 것은 19세기 이래 여자들이 투쟁해 얻어낸 권리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남자 지배 체계가 동원한 '백래시'일지 모른다. "
"수전 브라운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모든 여성은 강간의 피해자다. 실제로 강간당했든 당하지 않았든, 여성들에게는 언제 강간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강간 가능성만으로도 여성의 행동 반경은 위축된다"라고 하며 남자 지배 사회가 여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간을 사용함을 지적했다. 강간 뿐만 아니라 상업화된 성착취도 마찬가지다. 아무 남자나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창녀‘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남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재단한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도 이 여성을 아무 남자에게나 ‘딸감‘ (남자의 자위에 사용되는 도구)으로 소비될 수 있는 여자로 ‘창녀화시키는 폭력 행위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남자는 여자에게 "네가 나의 요구를 거부하면 나는 너를 ‘창녀‘로 만들 수 있다"는 권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업화된 성착취가 있는 사회에서는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라는 책 제목처럼 실제로 모든 여성은 까딱하면 저 ‘강간당해도 싼 여자‘ 집단의 하나가 될 위험이 있다. 가족의 병환으로 목돈이 갑자기 필요해서, 학생이라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는데 비싼 등록금을 단시간에 벌어야 해서, 성폭력을 당해 자신의 몸이 더러워지고 무가치해졌다고 여겨서, 탈혼하고 아이를 홀로 부양해야 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들은 자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는 성산업으로 들어가는 길 하나를 건너게된다. 성산업이 있는 한, ‘창녀 취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자란 아무도 없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남성 폭력의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여자 집단전체가 인질 심리를 느낀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발간된 「여자는 인질이다. (2019, 열다북스)라는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저자들은 "여자가 남자와 연결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여자의 남자 사랑도 전부 생존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업화된 성착취의 남성 수요를 근절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가장널리 사용하는 전략은 좋은 성착취와 나쁜 성착취를 분리하는 것이다. 성착취 근절주의자들이 상업화된 성착취는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성노동‘을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신매매는 나쁘지만 ‘자발적인 성매매는 괜찮다고 한다. 성착취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나쁘지만 ‘성매매‘ 자체는 괜찮다고 한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나쁘지만 성인의 ‘성매매‘는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성착취를 용인할 수 있는 ‘성매매‘와 그렇지 않은 ‘성매매‘로 나누는 것은, 상업화된 성착취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위함이다. 근절주의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주장은 괜찮은 성폭력과 나쁜 성폭력을 구분하자는 말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유흥주점, 룸살롱에서 여자를 접대부로 고용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옆에 앉혀 놓고 술 따르게 하고 성희롱을 하는 행위가 합법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 제정된 식품위생법 및 그 시행규칙에서 유흥종사자를 처음 명시했고, 현재 유흥종사자는 법에서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로 정의되어 있다. 법 규정 상의 순화된 언어와는 달리, 실제로는 남자들이 얌전히 접대부 옆에 앉아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거나 접대부에게 정중히 노래나 춤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유흥주점이 ‘성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알선, 연결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남자가 성착취를 하는 이유나 양태는 변하지 않았다. 50년 전에 홍등가를 드나들던 남자나 요새 유흥주점에 가서 2차를 요구하는 남자나,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의 몸을 사서 대상화와 사물화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똑같다. 성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레토릭이 변했을 뿐이다.
이런 레토릭은 포주 논리이자 성착취남의 논리다. "먹고살 길 없는 불쌍한 애들 내가 돈 벌게 해 주는 거다"라고 말하는 성착취남과 성착취 피해 여성들에게서 세금을 걷겠다고 성착취를 합법화하는 국가가 무엇이 다른가? "매춘 여성은 민간 외교관이다"라고 한 정부 관리나 "성노동자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을 행사하는 당당한 노동자다"라고 말하는 여성학자가 무엇이 다른가?"
"성착취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피해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착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과 관계를 획득해야 한다. 아직 성착취 공간에 남아 있는 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일‘로 이야기하고 "나는 피해자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행위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