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의 여성의 미! 이것은 부자연스러운 가운데에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여성의 순수한 미의 가치가 아닌 인간을 모욕하는 일종의 노예적 정신 아래에서 일개 희롱물의 값어치밖에 갖지 못하는 그런 미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희롱물로서의 미, 그것은 여성 자신에 있어서는 아무 이익 없이 쓸데없는 것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여성 자신을 더 굳은 구속의 철쇄 밑으로 얽어매는 한 개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본래의 우아한 미는 잃어버리고 부자연스러운 인습에 눌려 남성이 좋아하는, 한층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적 심리를 가지고 여성을 노예시하고 희롱하며 일종의 상품으로 보는 자본가의 남성이 즐기는 대로의 가장미를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러므로 과거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결발은 여성이 상품이요 비인간의 대우를 받던 때의 한낮 상징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발, 즉 과거의 여성미에 대한 사상을 근본으로부터 부인하고 반대합니다.-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1925 - P10

실행이라는 것은 개체일 때보다 구체화할 때 더 큰 힘과 실행이 있다. 더 큰 힘을 나타내고 더 큰 실행이 있기 위하여 구체화된 것이 곧 여성의 사회적 운동이다. 그 운동의 진행이 더디고 도중에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첫 시작에 있어서 불가피한 사실이 아닌가? 이것은 여성 사회에서만이 아니고 남성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현상이 아닌가. 몇천 년 간 앞서 왔다는 남성사회도 그러한데 하물며 시작된지 오래잖은 여성의 운동일소냐.
남성의 운동 중에 지금도 온갖 알력으로 운동의 진행이 늦고 또 소소한 것도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군은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면서도 오히려 여성에게 "실행이 있느냐?"하고 반문하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나도 다시 군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대들이 완전무결하게 다하여 놓은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 <신여성들에게>를 읽고, 1924 - P21

마지막으로 군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제부터의 여성해방운동은 예전 같은 문화운동만을 배경으로 한 피상적 운동이 아니요, 근본문제로 들어가서 경제적으로, 계급적으로 절실한 해방운동을 비롯하여 군과 같은 (전체가 아닌) 남성을 반역하는 운동에까지 이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의 운동은 이중 반역의 운동이다. 이미 그 소리를 높이 외쳤다. 나는 최후로 한 문장을 군에게 소개한다. "타인을 폄훼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라"는 성현의 훈계를. - <신여성들에게>를 읽고, 1924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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