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릿해지는 소설이다.
마음에 뭐가 걸린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을 문지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였다.
웅크리고 앉은 소녀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녀의 외로움이 청아하지만 아직은 찬.. 바람을 타고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 버스정류장에 서서 '찬바람이 불면...'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부르고 있었다.
아직은 차구나....가을은 그저 한줄기 바람만으로도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그녀에게 불어닥친 찬바람이 이 소설의 시간들로 인해 조금은 따뜻하게 데워졌으리란
생각...도 잠시 했다.
삶이 그런 거지. 끝을 알 수 없게 외롭다가도 누군가 건넨 손의 온기만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겠단 무모한 희망과 평온함을 갖게 되는...그래서 또 살아내는...
그렇게 살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녀에 대하여' ...
[ 첫인상 ]
처음 표지를 보면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웅크리고 있는 그녀는 쓸쓸해 보였지만, 이쁜 표지였고, 팬시점에 진열된 소품처럼 그렇게
이 책이 갖고팠다.그래서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아릿할 줄은...
이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간결한 문체와 그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의미있는 말들. 이런 건 일본소설의 특징같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처음이였지만 예전에 일본소설을 좀 읽은 터라 쉽게 몰입해서 읽었다.
[ 이야기 ]
이 책의 주인공은 그녀인 유미코와 그녀와 함께 하는 쇼이치. 이 둘은 이종사촌지간이다.
마녀학교에서 마법을 배운 할머니 아래에서 자란 쌍둥이 엄마들.
어느날 할머니는 마법으로 좋은 것들을 불러내는 강령회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쁜 것들이 나타났고,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집단자살을 하고 만다.
옷장 속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은 엄마들은 정신병원 같은 클리닉에 들어가서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큰 충격과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쌍둥이 엄마들은...
서로 전혀 다른 미래를 선택하게 된다.
유미코 엄마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 최대한 강해지기로,
쇼이치 엄마는 오히려 그런 능력을 숨기는 인생을 선택한다.
유미코의 집은 점점 부유해졌고, 번성했지만 불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또 한번의 강령회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정신이 이상해진 유미코의 엄마가 유미코의 아빠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이 후....
쇼이치는 엄마의 유언으로 유미코를 찾게 되고, 둘은 유미코가 잊은 과거를 찾고,
마주하기 위해 함께 한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진실이 하나 더 밝혀진다.
[ 소감 ]
아픈 과거와 마주할 자신은 누구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유미코처럼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이런 살인사건을 마주할 용기는
더더욱 없겠지. 유미코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외면하기 위해 꽁꽁 숨겨두었다가 그 시절의 기억들을
모두 잊고 마는... 사람은 때때로 살아내기 위해 망각을 선택하기도 하니까...
유미코에게 매순간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주는 쇼이치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소중하게 자란 소년이다. 물론 소년은 아니지만...
그냥 소년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소녀이듯이...
항상 쇼이치를 부러워했던 유미코.
이 소설에서는 너무도 단순해서 잊기 쉬운 행복의 조건을 알려준다.
행복의 조건은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랑이라는 거.
그 사랑은 아주 크고 위대한 모습이 아니라는 거...
그저 일상에서 함께 웃고, 서로를 향해 눈을 마주치고,
칭찬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또 그걸 알고 듬뿍 칭찬해 주고,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안에서 목욕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걸 바라보는 소소한 모든 것들이 행복의 하나하나임을...
그리고 이런 소소한 행복이 한사람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걸 말해준다.
아주 폭...빠져서 읽었다. 첫 장부터 재밌고, 궁금해서 단숨에 읽었다.
마지막 반전 앞에 가슴이 아릿해서...
책 뒷 표지에 한 줄만 읽었어도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예상치 못한 슬픔에 당황해서 책장을 덮은 후에도 잠시 멍....하게 있었다.
슬픈 엔딩은 아니지만 너무 가슴이 저릿해서 흥겨운 명절 기분이 싹 가셨다.
이 소설은 유미코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생에서 내가 아이를 갖는 일은 없었지만, 아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은 순순히
자리를 내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어. 엄마는 딸인 내게조차 그런 마음을 평생 품지 못한 가여운 사람이었던 거야."
"나란 인간 자체가 엄마와 아빠의 꿈이었으니까 별 수 없지. 그렇게 행동하도록 배워서가
아니고, 나는 살아만 있어도 누군가의 꿈 그 자체야. 그런 걸 알았으니 건전해지지 않을 수 없지."
브모의 사랑이 크다고 하지만, 또 물론 크지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그들만 바라보는 자식들도...
사춘기 시절 때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머리가 훌쩍 자라 부모와 어깨를 나란히 할 때쯤에는 부모 맘을 헤아리고,
부모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저미는 걸 느끼는 자식의 사랑 또한...크지 않을까 싶다.
때론 내 부모의 이런 점이 좋다고 소리 높이고, 또 때론 부모의 이런 점이 가엽다고 생각하며 아파하는 자식. 부모와 자식은 그런 관계인가보다.
부모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구절이 있다.
"바로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에요.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 본 경험, 귀염받고 자란 기억.
비 오고 바람 불고 맑게 갠, 그런 날들에 있었던 갖가지 좋은 추억.
부모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던 일,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받았던 칭찬,
의심의 여지없이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것,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잤던 잠,
자신이 있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사건과 부딪칠 때마다 그것들이 되살아나고, 또 그 위에 좋은 것들이 더해지고 쌓이고 하니까 곤경에 처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토대니까, 어디까지나 그 위에서 무언가를 키워가기 위해 있는 거니까."
뉴스를 보면 자꾸 무서워지는 세상. 이런 토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요즘 많은 것 같다.
이 구절이 내 마음에 박힌 건 그런 이유때문인 것 같다.
나쁜 맘을 먹고 싶을 때마다 이런 토대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그들을 붙잡아 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무서운 사건들은 다 과거 속 이야기가 되기를...
나 또한 힘이 들고 지칠 때 나의 토대를 꺼내봐야겠다.
나의 부모, 그리고 내 자신이,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준
그 토대를 기억해야지.
웅크리고 있는 소녀가 이제는 훨훨 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