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 첫인상 

 

책소개, 서평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리란 말을 많이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였음에도...대놓고 시작하는 외설적인 이야기들이 적잖이 당황했다.   
(이런 소설은 처음이야....)
낯선 이야기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았다. 번역이나 작가의 낯설음인지..아니면 다른 나라에 대한 낯설음인지....
아직도 확신할 순 없지만 너무나 낯설어서 1부를 읽는 일이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속도는 다른 책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집중력도...
처음에는 외설적인 내용들이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도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게 된다.  

책 표지를 보면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책이다. 검은 바탕에... 변기가 있고, 변기 위에 TV가 있는데 TV 화면에는 토끼가 나온다.
토끼가 나옴에도 귀엽단 느낌보다는 섬뜩하단 생각이 든다. 그냥 표지만 봐도....내용도 좀 그랬다.

♧ 이야기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 난봉꾼

2. 세일즈맨

3. 데드맨

1부는 여자와 섹스에 집착하며 술에 절어사는 버니먼로의 일상이 그려진다.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삶... 그리고 그런 그로 인해 상처받은 그의 아내 리비.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첫장면은 그와 그의 아내의 통화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의 아내는 무척 두려워하고, 남편을 믿지 못한다. 뭔가 심상찮은 말들을 계속 하는 아내이지만 버니는 그런 아내는 안중에도 없다. 대충 대답하고, 아내는 결국 흐느껴운다.
이건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이다. 결국 버니는 이 통화를 기억하며 고통을 받게 된다.

1부에서는 아내의 자살과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그를 경멸하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빛. 그는 그걸 의식하지만 모른 척한다. 아내의 죽음은 그녀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주지만 그것도 모른 척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 버니 주니어만큼은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아들을 바라보며.... 버니는 고민한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리고 화장품 외판원인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서 아들을 데리고 영업을 하러 다니기로 결심한다.

나는 이쯤에서... 이 이야기가 버니가 죽기 직전까지... 4일동안 아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부자간의 정을 쌓고, 지난 삶을 반성하고, 뭐 그런 훈훈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2부 세일즈맨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여전히 버니는 섹스 중독자의 모습으로 나오고, 아들을 데리고 다니긴 하지만 안중에도 없다. 독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눈이 퉁퉁 부어올라 아빠의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아들, 하지만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로 사랑한다는 아들... 그런 아들의 천진난만하면서도 아픔이 전해오는 말들을 들으면...정말 화가 난다.
어서 빨리 정신을 차리기를 바랬건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화장품 외판원인 버니는 고객리스트를 받아 고객을 찾아다니며 화장품을 판매한다.
그러면서 만나는 모든 여자들에게 집적대고, 그녀들의 은밀한 곳을 상상하고, 때론 현실에서도 관계를 맺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동안은 잘 먹히던 그가 자꾸 일이 꼬인다.
버니는 이유가 아내의 망령이 자신을 따라다녀서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어쩌면 그의 두려움이 빚어낸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자살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그였지만... 그는 온 몸과 머리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고객리스트에 남아있는 고객이 점점 줄어들을수록 버니는 점점 미쳐간다.

3부 데드맨

버니는 점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미치광이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환상 속에서...
그가 인생 전체에 걸쳐서 만났던 모든 이들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환상에 젖으며 눈을 감는다.  

어쩌면 그게 그의 진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을 자신조차도 제어할 수 없어, 그냥 살아가지만
실은 자신의 삶이 처절하게 싫고, 그가 함부로 대했던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 소감

버니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비틀거리며, 가끔씩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의 인생이 처음으로 꼬이기 시작했다고 느꼈던 놀이공원. 

아버지와 함께 골동품을 팔러 가던 시간.
처음 아내와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했던 순간들...

나는 이 책에서 버니라는 주인공이 왜 이토록 철저하게 망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유는 아버지인데, 이걸 단순했다고 표현한다는 것이 참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버니의 아버지는 자신이 최고로 골동품을 잘 사고 판다고 자신하고, 아들에게 자랑하고,  

여자와의 문란함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던 현재의 버니와 비슷한 아버지이다.  

지금은 폐암을 앓으며 지독하게 불행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버니는 이런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지만... 버니 주니어가 버니에게 사랑을 느끼듯이, 버니 또한 그랬나보다.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삶이 이런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알며서 괴로워하고, 증오하지만,  

그에게 아버지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런 그가 사랑하는 여자(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아이를 어찌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내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자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불안감이 그 이유가 아니였을까 싶다.

사랑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을 무력하게, 당혹스럽게 만드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 그것은 버니를 한평생 방황하게 만든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한 인간의 불행한 인생이랄까?

아내의 자살로 당황한 버니는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데... 물론 여행 내내 아들에게 신경을 잘 써주진 않지만,
미쳐가는 와중에도 아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리고 그건 그가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존재가 온전하지 못해 아들의 아픔 (엄마를 잃은 슬픔과 충격, 눈병)을 이해할 형편은 못되는 불쌍한 인간 버니...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버니를 안타깝게 생각하게 될 거라는 책 소개가 떠오른다.
나는 소설책인데도... 자꾸만 육아서스럽게 이 책이 읽혔다. 어쩔 수 없나보다. -.-;;;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의 태도나,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인생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부모란 존재....
그것에 대해서 섬뜩하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였다.

아쉬운 점은... 번역을 너무 한국스럽게 했다는 점.  

욕이나, 호칭 따위를 너무 한국스럽게 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유쾌하진 않았지만, 조금 서투른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지만...  

정신없게 빠져들어 읽었다. 낯설면서도 독특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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