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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자기 앞의 생" 이란 제목은 책을 든 사람의 마음을 어쩐지 진지하게 만든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지만
열 살 아니 열네 살 소년 모모의 입을 통해 들어서인지 너무 무거워 힘든 책은 아니였다.
다만 애잔한 느낌이랄까?
모모나 로자 아줌마는 행복하다거나, 평탄하다거나 하는 그런 삶과는 거리가 멀다.
밑바닥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 당연한 모모의 말투 때문인지, 로자 아줌마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하는 모모의 철듦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힘든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두 사람 때문인지 슬픔보다는 짠한 마음이 더 강했다.
책을 덮고 모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지난 시간이 마음 한구석 상처로 남아, 행복해도 웃지 못하는 어두운 어른이 돼버리진 않을까?
결말에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좀 놀라고 당황한 바람에,
책을 덮고 문득 모모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시 책을 뒤적이며 내가 표시한 부분들을 읽어보니...
모모는 나도 아직 하지 못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한 아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식상한지...
하지만 나는 모모는 사랑에 대해 대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인생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웠을 소녀시절,
상처로 점철되었을 창녀 시절, 그 이후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며 살았던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모모는 그녀의 삶을 아는데서 멈추지 않고, 로자 아줌마의 삶 전체를 비춰 그녀의 부족한 부분도,
그녀가 아파하는 순간도 모두 이해했다.
때론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이 없는 삶을 두려워하던 그녀를 이해했다. 물론 모모에게도 그녀가 필요했겠지만, 로자 아줌마를 이해하는 모모는 퍽 어른스러웠다.
나는 어떤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 가까운 이들을 모모처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지.
내 부모님조차도 나는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나의 부모님이였기에 내게 주는 것만이 당연하다는 듯 나는 그래왔다.
그들에게도 청춘이 있었을테고, 사랑도 해봤을테고, 꿈도 있었을텐데...
인생에서 상처와 고달픔도 있었을테고, 그래서 때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텐데...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무조건 나에 대한 이해만을 바라며 살아왔다.
생이라는 건 혼자 살 수 없고, 그렇다면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텐데.
나는 사랑이란 말을 오해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게 주는 사람만 반겨하고, 사람들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고 실망하고, 그런 부분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철없이 눈앞에 주어진 행복도 행복인지 모른 채 툴툴거리기만 했던 나였다.
이제라도 나는 어떤 생을 꾸려나갈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이 책이 자꾸만 '너는 어떻게 살래? 어떤 사랑을 하고 있니?' 내게 묻는다.
좀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게끔 내 생의 방향을 확고히 해야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 이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