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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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몇 년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깊은 슬픔’이란 책으로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알게 됐고, 이후 그녀의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다른 책들은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줄거리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제목 하나만큼은 정확히 기억했지만  

내용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책을 대충 읽는 나의 습관때문이라 여기기에도 좀 정도가 심했다.  

물론 이전까지는 이 책을 스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만 얼마 전에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읽고 그녀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듯한 그녀의 문장이 나는 좋다.  

‘깊은 슬픔’은 몇 번씩 다시 읽어봤었고, 읽을 때마다 많이 울어서  

이번에는 다른 책을 골라들었다. 그게 바로 ‘기차는 7시에 떠나네’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뒷부분이 궁금해 일을 때려치우고 책만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처음 읽는 책도 아닌데 어쩜 이리도 기억이 나질 않는지...

그런데 우습게도 이 책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큰 충격으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과거를 거슬러 오르게 된다.  

책의 중반쯤 읽었을 때 나는 문득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쩜 앞부분만 읽고 덮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아니라면 이렇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나는 그동안 이 책을 참 많이 떠올렸는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줄거리는 잊었지만  

그 안에 그녀가 하고자 한 이야기들은  내 안에 참 많이 스며있었다.

난 잊고 싶은 기억을 저 멀리에 던져두고 모른 척 살아가다 보면   

잊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잊고 싶은 기억은 될 수 있으면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모른 척하면 그 기억들도 그 시간들도 나를 모른 척하지 않을까? 그랬었나보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건 그렇게 모른 척하고 도망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바로 보라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주인공인 하진은 현재 사랑하는 남자인 진서에게 청혼을 받는다. 

 하진은 분명 진서를 사랑한다고 느끼지만 그의 청혼에는 당황한다.  

진서는 그런 그녀에게 당황하고 둘 사이는 어색해진다.  

하진은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청혼이 당황스러운 이유는  

기억할 수 없는 과거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점에 그녀의 조카인 미란이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하고,  

그녀의 집에 머문다. 하진은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서고, 미란이 함께한다.  

어떻게 보면 미란은 하진의 젊은 시절과도 같다. 상처받은 연약하고 어린 새와 같은...

하진은 잊혀진 기억을 헤쳐 보려다가도 두려움에 빠진다.   

진서의 청혼으로 그 잊혀진 기억의 존재를 깨닫게 된 하진은 두려움 속에서도  

과거를 찾기 위해 나선다.  

그 과거와 마주해야만 그녀가 그 상처를 진심으로 잊을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이다.
미란은 친구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가 가졌다는 걸 알고,  

크게 상심해서 자살을 시도하고, 하진이 과거를 찾아가는 동안 미란도 마음을 추스린다.
하진도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의 아이도 가졌었지만 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의 사건이 있었고, 그는 다른 여자에게 가버렸다. 그 

런 충격들로 그녀는 그 시절을 잊게 된다.  

결국에는 그 사람과 마주하고, 그 여자와 그의 아이와도 마주한다.  

하진은 그 순간 눈물을 쏟게 된다.  

억할 수 없어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그녀가 과거와 화해하는 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때때로 너무 상처가 커서 마음이 크게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처를 안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소설이다.

나는 슬프거나 우울하면 다른 생각은 못하고 그 생각에만 빠져서 마구 슬퍼한다.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디는 일이 너무나 괴롭다.  

그래서 잠시 아파하다 금세 빠져나오기도 한다.  

좀 더 아플 줄 알았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정말 자잘한 일들...

나는 정말 잊고 싶은 시간이 있었는데 늘 구석에 밀어놓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잊혀지리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잊혀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잊어야 하는지, 마주해야 하는지 고민도 했다.  

잊어야 한다고 선택한 이유는 도망치겠단 의미는 아니였다.  

다만 잊어야만 내 삶이 나아지리란 생각이였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비겁한 내 자신을 옹호하기 위한 초라한 변명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차고 솟아오르는 거야.”

나는 이 구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얼마 전 내가 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아닌가.
탁 차고 솟아오르는 내 자신을 느끼고 대견해 했는데...이 말을 여기서 먼저 봤었구나...
나는 알게 모르게 소설 속의 주인공을 흉내내고 있었나보다.  

무언가를 흉내내고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반가운 책이다. 몇 년 전 이 책을 읽을 때는 이런 맘이 아니였겠지. 이 책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잊고 지냈는데 내 안에 이렇게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니... 반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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