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중에 우리는 상대가 나와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와 영혼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나와 합치고자 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나와 다른 존재임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서로 분리된 외로운 존재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속에서 사람은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38쪽
사회학자 라쉬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의 경탄과 선망이 그의 성공의 지표가 될 때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도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경탄과 선망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므로. -62쪽
모든 감정은 나름대로의 굴곡을 갖는다. 해가 하늘 높이 떠서 대낮의 위용을 자랑하다가 슬그머니 황혼과 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의 열정도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희미해진다. 플라톤도 열정이란 갈망과 소유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소유와 비소유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충족되는 순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식는다고 해서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79쪽
'사랑에 머무는' 상태는 그들의 사랑하는 관계가 외부 세계와 격리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견디어 나가는 단계다. -80쪽
애정 어린 결합은 사랑의 열정이 희미해진 후 남게 된다. 그것은 열정적이지도, 어떤 초월의 순간도 제공하지 않지만 항상 연인을 묶어 놓을 수 있는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제공하면서 그 관계를 이어 나간다. -81쪽
연인들에게는 밀착과 분리에 대한 묵시적인 상호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관계는 자신을 침입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짧은 순간의 이별도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돌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밝힐 수 있어야 하며, 상대방이 잠시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사랑에 필요한 이러한 역설적인 거리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자율성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결합을 달성할 수 있고, 자아의 붕괴없이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83쪽
우리의 마음속엔 자기와 타인에 대한 특정하고 일관된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에 따라 자기를 인식하고 타인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인식하는 나는 내가 아닐 수 있고, 내가 인식하는 타인의 모습은 그의 진실된 모습이 아닌 내 임의대로 만든 그의 이미지일 수 있다. -95쪽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빠지는 대부분의 오류는 상대를 자신의 기준과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만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이 가진 가치 기준을 가지고 상대의 태도와 감정을 재단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항상 상대편이나 외부적인 환경에서 찾게 된다. -98쪽
사랑중독증은 다른 중독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사랑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며 무가치하다는 절망감 때문에 자신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게 된다. 이들에게 사랑은 어느 팝송의 가사처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며,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도 다 희생하며, 그 관계에 집착한다. -102쪽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상대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맞추어 가며, 그 안에서 자신과 상대를 발견하고 같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부분들을 상대의 사랑에서 찾으며 그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우는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의 옷을 입은 의존이며, 자신을 소멸시켜 상대의 내부로 함입시키는 과정일 뿐이다. -105쪽
피그말리온식 사랑을 하는 이들은 상대가 자기와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의 취향과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만들고, 자기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보게 만든다. 상대의 말투나 매너, 옷 입는 법까지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꾸려 든다. 아예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상대방에서 주입시켜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이들도 있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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