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구판절판


거울은 사람을 비춘다. 얼굴을 비추고 눈동자를 비춘다. 거울은 단지 물리적인 작용일 뿐,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거울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놓고 그 앞에서 서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나 자랑스러움을,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점검해주고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철저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이고,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1쪽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중간생략)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2쪽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 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아. -3쪽

팩스나 인터넷은 너무 빨라요. 쓴 것을 자기 눈으로 곰곰이 읽을 시간이 없죠. 그래서 터무니없는 내용도 그냥 마구 보낼 수 있어요. 그래놓고는 금방 잊어버려요. 그렇지만 엽서나 편지는 쓰기가 정말 힘들죠. 시간을 들여 생각도 해야 하고, 정해진 공간에 들어가는 문장을 구상해야 하니까요. 쓴 다음에는 그것을 들고 우체통에 넣으러 가야 하는 수고도 해야 하고요. -4쪽

인간이란 그렇게 독창적인 동물이 아냐. 모두 뭔가를 흉내내면서 살고 있다고-5쪽

저 쓰레기통은 가득 차 있지? 하지만 철망으로 되어서 아래쪽에 든 것까지 잘보여. 안 보이는 게 보기 더 좋은데 말이지. 눈에 보인다고 해서 한번 버린 것을 꺼내서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옛날에는 제 역할을 했다 해도 일단 쓰레기가 되어버리면 그걸로 끝이야.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지. -6쪽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난 너무 신기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너무 깊이 분석하는 건 좋지 않아. (중간생략)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사실은 이랬다, 그런 말은 이제 그만둬. 네가 그때 생각한 게 네 진심이야. -7쪽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8쪽

난 물론 지금과 같은 궤변은 인정하지 않아.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인간이 나온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아. 우리 세대에는 그런 지향성이 있으니까 (중간생략) 따분하지 않은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지향성이라고 할까? (중간생략)
가장 두려운 것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인생을 보낼 바에야 죽는 편이 낫다는 그런 지향성. -9쪽

주위의 눈이란 그런 것이다. 진실이 자신에게 직접 닥쳐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인간은 그것과 직면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안락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 해석을 '진실'로 채택하는 것뿐이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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