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번 휴가에 가져간 책은 어느 나무의 일기

3백살인 돌배나무 트리스탕이 돌풍에 쓰러지고나서 이야기이다. 나무의 영혼? 의식이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3백년 인생, 아니 목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 서점에서 서성이다 2011년 유네스코에서 나무의 해어쩌고저쩌고 하는 말 때문에 찾아봤다. 프랑스 작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작품.

기대한 나무 생태 이야기보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았다. 오히려 어떤 선생님이 이야기한 나무의 줄기를 잘라 레코드판 돌리듯 나무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하는 것에 더 가깝다.

나는 이곳에 심어진 이후로 인간의 모든 강렬한 감정을 함께 나누었지만, 그 중 무엇도 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우선, 한 나무에게 자아란 과연 무엇일까? 생존본능, 성장하려는 충동, 주위 환경과의 공감, 공간에서의 갈등, 종 사이의 갈등, 동일군 식물과 기생생물, 포식식물 등에 대한 지식과 거기서 비롯되는 활동일까? 아니면 그저 인간들의 자아가 옮겨진 것에 불과할까?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새와 곤충, 버섯, 정원사, 시인 들과의 교류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우리를 태양과 달, 바람, , 그리고 어떤 풍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칙-인간들이 자연이라고 일컬었다가 나중엔 환경, 혹은 생태계라고 바꾸어 부른 것-과 연결시켜주는 상호작용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죽어가는 나무는 뭔가가 자신을 대신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자신이 해오던 활동이 계속 보장되고, 해오던 역할이 계속 수행되고, 자신이 남겨둔 공백이 메워졌으면 하는 욕구. 그게 전부다. (13 )’

자연은 응당 이래야 할 것 같은데, 이 돌배나무는 다른 생각을 한다. 자기와 계속 관계를 맺은 인간, 자기가 내내 지켜본 인간 세상. 그래서뿌리가 뽑혀나간 나무가 별안간 살아 있는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정원 안쪽의 죽은 벚나무를 잎이 우거진 잔가지로 휘감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담쟁이처럼, 그런 생각이 내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쓰러진 내 몸뚱이에 덧붙여진 대체에너지로부터 생겨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생명활동을 하지 않는 내게, 그들이 남겨준 기억이 자유롭게 떠오른다. 이런 게 바로 나무의 죽음일까?(15)’

정말 이런 게 나무의 죽음일까? 여기서 상상력, 문학이 생겨나는 것이겠지. 반려동물과 야생동물 차이처럼 야생 숲에서 자라는 나무와 마을의 어느 집에서 자라는 나무의 차이이기도 할테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정이 또 다시 나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가까이 있던 나무가 사라지기 무섭게 양분을 흡수하고 성장한다. 내가 없으면 그녀는 더 많은 햇빛과 물,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가루받이 문제라면, 벌들이 조금 더 멀리 다녀오기만 하면 될 일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다른 배나무는 근처 마을 학교 뒤편에 있는 것들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사로잡혀 고문당하고 있는 포로들처럼 보인다.과수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풍부한 꽃가루를 지닌 젊은 나무들이다. 이졸드는 그 덕분에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자연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시인들이 자연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트리스탕과 이졸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한 쌍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16)’

푸하, 정말로 인간은 나무가 없으면 죽지만,(산소부족으로) 나무는 인간이 없으면 더 잘 산다.

어쨌든 이 나무가 죽게 된 뒤 주인 의사 조르주 란 박사 부부, 트리스탕에 대해 쓰는 야니스, 그리고 선택증 무언증이었는데, 자폐라고 알고 있는 마농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무 트리스탕은 자신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의 의식을 옮겨다니며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 이야기는 자신의 기원, 처음 3백년 전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3백년이라는 시간만큼 이제 역사가 되어버린 이야기가 엮여 있다.

이 책을 보고나니 돌배나무가 심상치가 않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번 휴가로 간 무주와 진안에서 오래된 돌배나무 두 그루를 만났다.

 

 

먼저 만난 것은 무주 백련사의 돌배나무.

무주 구천동계곡을 따라 6킬로미터를 올라가면 백련사가 나온다.

백련사 입구에 돌배나무가 있다.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나고, 지지대에 몸을 받치고 있지만, 그래도 열매를 많이 맺었다.

우리가 먹는 배의 씨앗을 뿌리면 돌배가 나온다고 한다.

이 돌배는 나는 쓰일 데가 더 이상 분명치 않았다. 식용이 불가능하여 떨어지면 풀밭을 뭉개는 것 외엔 아무 데도 쓸모없는 자그마한 배를 만들어낼 뿐이다. 증류기의 시대는 갔다. 전쟁이 오기 전, 브랜디를 증류하는 이들은 내 열매로 감미로운 알코올을 만들기 위해 정원에 자리를 잡았고, 그 덕분에 나는 들쥐들의 입에나 들어가는 과일 졸임이 되어버렸다.(17)’는 말처럼 열매는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찾아보니 돌배가 참 몸에 좋다.야생의 것들을 따지고보면 다 몸에 좋은 성분이 있다. 그러고보면 자연이 못할 게, 자연에 부족한 게 뭔가 싶다.

 

나는 펄프의 원산지를 조사하다가, 투구풍뎅이의 개체수가 과하게 늘어나 아메리카 낙엽송을 위협하면, 그 나무가 풍뎅이의 유충 호르몬과 유사하나, 양이 너무 많으면 생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유약 호르몬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를 다른 종들에게 적용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이 배나무가 그와 유사하게 기능한다는 건 거의 확실합니다. 이 배나무는 자신의 콜레스테롤을 이용해 포식동물들의 호르몬을 합성해내죠.” (147)

다른 개체를 불임시킬 수 있는 호르몬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환경을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는데다, 나무들은 원자폭탄을 전혀 높이 평가하지 않았어요. 난 이제 나무들이 우릴 불임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마음먹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우리 연구팀은 얼마 전에 석류 씨와 종려나무 꽃가루에서 그 호르몬들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이상일까요, 아니면 우리 종이 멸종 위기를 맞은 걸까요? 자연은 뭐가 되었든 간에 결코 제멋대로인 법이 없고, 아무 이유 없이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법도 없습니다.”

, 나중에 식물들이 인간들에게 심각한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 코르티솔을 분비하면서 인간 멸종을 시도하는 게 나오는데(, 아주 심각하게는 아니고) 그건 작가의 상상이고 인간 호르몬과 풍뎅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한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으로 모르는 게 무궁무궁하니 작가의 상상처럼 인간에게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도 지나봐야 알테지.

 


또 한 그루 배나무를 만났다.

진안 마이산의 은수사 청실배나무이다. 재래종 배나무로 돌배나무랑 비슷한 종이라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말이 있으니 6백살이 넘는다는 것. 나무 줄기가 네 줄기로 갈라져 위를 떠받치는 모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하고 그 증표로 씨앗을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겨울철에는 청실배나무 밑동 옆에 물을 담아두면 나뭇가지 끝을 향해 거꾸로 고드름이 생기는 특이한 현상도 있다고 한다. 이건 탑사에서도 이런 신문기사가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휴가는 트리스탕과 두 그루의 배나무와 함께였다.

, ‘어느 나무의 일기는 작가가 기르던 배나무가 죽으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여기서 더 추천되는 책들

장 마리 펠트 <자연의 비밀 언어>(파야르 출판사)

조르주 페테르망 <주목할 만한 나무들의 프랑스>(다코타 출판사)

제레미 나르비 <자연의 지능>(뷔세 샤스텔 출판사)

<라루스 나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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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나무의 죽음. 인간과 더불어 300년을 살아온 나무의 이야기, 인간에 의해 나무의 씨앗이 심겨진 처음, 다시 인간의 도움으로 순환되는 처음. 이 모든 이야기가 풍부한 상상력과 더불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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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절판


나는 이곳에 심어진 이후로 인간의 모든 강렬한 감정을 함께 나누었지만, 그 중 무엇도 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우선, 한 나무에게 ‘자아’란 과연 무엇일까? 생존본능, 성장하려는 충동, 주위 환경과의 공감, 공간에서의 갈등, 종 사이의 갈등, 동일군 식물과 기생생물, 포식식물 등에 대한 지식과 거기서 비롯되는 활동일까? 아니면 그저 인간들의 자아가 옮겨진 것에 불과할까?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새와 곤충, 버섯, 정원사, 시인 들과의 교류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우리를 태양과 달, 바람, 비, 그리고 어떤 풍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칙-인간들이 자연이라고 일컬었다가 나중엔 환경, 혹은 생태계라고 바꾸어 부른 것-과 연결시켜주는 상호작용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죽어가는 나무는 뭔가가 자신을 대신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자신이 해오던 활동이 계속 보장되고, 해오던 역할이 계속 수행되고, 자신이 남겨둔 공백이 메워졌으면 하는 욕구. 그게 전부다.
-13쪽

뿌리가 뽑혀나간 나무가 별안간 살아 있는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정원 안쪽의 죽은 벚나무를 잎이 우거진 잔가지로 휘감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담쟁이처럼, 그런 생각이 내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쓰러진 내 몸뚱이에 덧붙여진 대체에너지로부터 생겨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생명활동을 하지 않는 내게, 그들이 남겨준 기억이 자유롭게 떠오른다. 이런 게 바로 나무의 죽음일까?-15쪽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정이 또 다시 나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가까이 있던 나무가 사라지기 무섭게 양분을 흡수하고 성장한다. 내가 없으면 그녀는 더 많은 햇빛과 물,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가루받이 문제라면, 벌들이 조금 더 멀리 다녀오기만 하면 될 일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다른 배나무는 근처 마을 학교 뒤편에 있는 것들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사로잡혀 고문당하고 있는 포로들처럼 보인다. 과수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풍부한 꽃가루를 지닌 젊은 나무들이다. 이졸드는 그 덕분에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자연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시인들이 자연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트리스탕과 이졸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한 쌍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16쪽

"나는 펄프의 원산지를 조사하다가, 투구풍뎅이의 개체수가 과하게 늘어나 아메리카 낙엽송을 위협하면, 그 나무가 풍뎅이의 유충 호르몬과 유사하나, 양이 너무 많으면 생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유약 호르몬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를 다른 종들에게 적용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이 배나무가 그와 유사하게 기능한다는 건 거의 확실합니다. 이 배나무는 자신의 콜레스테롤을 이용해 포식동물들의 호르몬을 합성해내죠." -147쪽

"…인간들은 자신들의 환경을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는데다, 나무들은 원자폭탄을 전혀 높이 평가하지 않았어요. 난 이제 나무들이 우릴 불임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마음먹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우리 연구팀은 얼마 전에 석류 씨와 종려나무 꽃가루에서 그 호르몬들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이상일까요, 아니면 우리 종이 멸종 위기를 맞은 걸까요? 자연은 뭐가 되었든 간에 결코 제멋대로인 법이 없고, 아무 이유 없이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법도 없습니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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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구판절판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22쪽

생김새도 아주 귀엽다. 볼도 동글동글, 곱슬머리도 동글동글, 눈도 동글동글. 아이를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그랬다간 그 애의 위엄을 얕잡아보는 게 될 것 같아 감히 도전할 수 없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빤히 쳐다볼 때 킷의 눈빛은 메데아조차 움츠러들 정도야. 이솔라 말로는 킷이 그런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두 명 있었대. 자기 개를 때리는 잔인한 스미스 씨, 그리고 줄리엣더러 오지랖 넓은 참견쟁이라며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악마 길버트 부인. -293쪽

요즘 나는 화가들이 그리고 싶은 대상을 어떻게 찾아내는지에 관한 책을 보고 있다. 예컨대 화가가 오렌지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치자. 그럴 때 오렌지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화가는 자신의 눈을 속이고 그 옆에 있는 바나나를 응시하거나, 머리를 숙여 다리 사이로 거꾸로 관찰한다. 오렌지를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관점 구축’이라 부른다. -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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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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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40대 중반에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얼마나 춥게 살았으면 우선 따뜻한 것이 가장 좋다 하였을까. 한갓져서 조용하고 마음껏 외로울 수 있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마음대로 아플 수도 있고 하염없이 생각에 젖어 들어도 누가 뭐라 않는 곳이어서 좋다는 마음을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은 적이 있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선생은 비로소 스스로를 스스로답게 부리며 살아 냈던 것이다.
-5쪽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가장 인간스럽게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내가 사람답기 위해 또 한 사람을 찾고 있다. 나는 여지껏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태까지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외로운 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46쪽

옛날 어느 며느리가 보리방아를 찧는데 시어머니가 쓸어 넣어 주지 않아 고생스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 보리방아는 마른 보리에 물을 줘서 찧어야 껍질이 벗겨지는데, 확에다 물을 부으면 보리가 한데 엉겨 붙어 계속 쓸어 넣어야만 한다. 그러자니 며느리 혼자서 디딜방아를 찧다가 확으로 내려와 빗자루로 쓸어 넣고 엉겨 붙은 보리를 우겨 넣고, 다시 방아가랑이로 올라가 찧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혼자서 찧자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며느리는 여름내 혼자서 보리방아를 찧다가 쓰러져 죽어버렸다. 죽은 며느리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그게 금빛 꾀꼬리인 것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한풀이를 하느라 "보리방아 쓸어 넣어 주소." 하면서 운다.
물론 꾀꼬리는 이렇게 길게 사설을 읊조리며 울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동 달아매용!’이라는 소리는 틀립없이 들린다.
이곳 안동 지방에서는 꾀꼬리를 ‘달아매용새’라고 하는데 그런 사연이 있고, 울음소리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135쪽

괴인테마을 아주머니는 뻐꾸기가 ‘볼걸! 볼걸!’ 하며 운다고 했다.
옛날, 어느 곳에 산을 하나 사이에 두고 처녀 총각이 혼약을 했다. 다가오는 가을이면 혼례를 치를 텐데 갑자기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총각이 싸움터로 가 버렸다. 3년을 기다려도 총각이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그만 몸져눕게 되었다. 분명 총각이 싸움터에서 죽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워 있던 처녀는 점점 야위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처녀가 죽은 다음 날 그토록 기다리던 총각이 천신만고 끝에 싸움터에서 돌아온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처녀가 바로 전날 그만 죽었다는 것을 알자 총각은 대성통곡을 하고 역시 그도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았다.
죽은 두 사람은 새가 되었다. 그래서 구슬프게 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볼걸! 볼걸!
-136쪽

돌아가신 박실 어르신네는 제비 울음소리를 재미있게 흉내 내셨다. 제비는 벌레만 잡아먹지 절대 곡식은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울 넘어 담 넘어
콩 한 쪼가리 집어 먹었더니
비리고 배애리고!

옛날, 어느 멍청한 제비 한 마리가 배고푼 것을 참지 못해 콩 한 조각을 집어 먹고 죽을 애를 먹었다. 어찌나 쓰고 비리던지 새끼들한테는 절대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할아버지, 할머니 제비와 아버지, 어머니 제비는 빨랫줄에 새끼들을 줄지어 앉혀 놓고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비리고 배애리고!
비리고 배애리고!
-137쪽

할미꽃은 이른 봄부터 진한 자줏빛 족두리 같은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꽃잎이 떨어지면서 머리칼 같은 텁석부리가 다시 피어난다. 아이들은 그 머리칼 같은 털씨를 잔뜩 뜯어 모아 손아귀에 가볍게 놓고 두 손으로 조심조심 비빈다.

할망이 할망이 꼭꼭 숨어라
뒷집 영감
도끼로 네 머리 쪼로 온다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그렇게 살살 쓰다드듯이 비비면 동그란 할미꽃 공이 된다. 어떤 애들은 탁구공만 하게 만들고 재주가 좋은 아이는 테니스공만큼 크게 만들기도 한다. 풀꽃으로 만든 공이니까 풀 향기가 물씬 나는 살아 있는 공이다. 말랑말랑해서 망가지기 쉬우니 살살 던지면서 논다.

질경이 줄기-풀싸움
왕골 잎-시계 만들기
보릿짚 대궁-여치집 만들기
무릇 뿌리-풀각시
댕댕이덩굴-바구니
-139쪽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일이다. 이 세상에 절대 강자는 있을 수 없듯이 어느 하나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모두 죽여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모두 제거해 버리면 결국 나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도둑놈도 씻나락은 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남의 것을 훔쳐 먹는 도둑이지만 씨앗까지 훔쳐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도둑만도 못한 인간이 다 되었다. 1년에 5만종 이상의 씨를 말리고 있는 삶을 예사로 살고 있지 않은가.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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