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의도했던 것까지는 아니었고 어찌어찌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일종의 꼬리물기 글을 계속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궁리해 보니, 어찌어찌 아시모프와 어슐러 르귄을 거쳐 레비스트로스까지는 (어쩌면 그 이후에도 저 유명한 청바지 회사 창업주까지는) 쉽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귄과 레비스트로스의 관계라면 전자의 아버지 장례를 후자가 치렀다는 일화가 가장 흥미로운데, 저 SF 작가가 이름 중간에 K라는 약자로만 표기하는 본래 성 '크로버'의 유래인 인류학자 앨프리드 크로버 부부가 (즉 르귄의 엄마아빠가) 파리에 가서 레비스트로스의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 디디에 에리봉과의 대담집에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거기서는 급사한 인류학자를 목격한 일화가 무려 두 가지나 나와서 나귀님도 지난번에는 살짝 혼동했었다. 즉 강연 도중에 사망한 사람은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였고, 크로버는 다음날 만나기로 해놓고 밤사이에 호텔에서 사망했던 거다.
결국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졸지에 남편을 잃고 어쩔 줄 모르는 크로버 부인을 대신하여 레비스트로스가 각종 수속을 비롯해서 장례 절차를 밟아주었다는 것인데, 당시 어슐러는 이미 결혼하고 대학 교수였던 남편을 따라 제2의 고향이 된 포틀랜드에 정착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시모프와 르귄의 연결 고리는 무엇인가? 두 사람 모두 장기간 활동하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SF 작가라는 공통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나귀님으로서는 지난번에 르귄의 에세이 가운데 하나에서 아시모프를 '냉전 사고방식의 수괴' 정도로 폄하한 대목이 문득 기억났던 거다.
최근 르귄의 에세이가 줄줄이 번역되기에 눈에 띄는 대로 사다 놓고 뒤적이다가 발견한 내용이었는데, 지금 막상 찾아보니 그 책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구글링해 보니 아마도 고양이 표지의 <남겨둘 것이 없답니다>에 수록된 "너무 필요한 문학상"의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르귄의 말에 따르면 냉전이 한창인 1977년에 미국 공상과학작가협회(SFWA)에서 폴란드 작가인 스타니스와프 렘에게 수여했던 명예 회원 자격을 박탈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반발한 르귄이 그 단체에서 수여하는 네뷸러상 중편 부문에 제출된 자기 작품의 출품을 철회하겠다고 맞섰다는 것이다.
뒤늦게 협회에서는 출품 철회를 번복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르귄의 태도가 워낙 요지부동이어서 결국 (그녀의 표현 그대로) "냉전 전사들의 수괴인 아시모프"의 차점작이 수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그 차점작이 아시모프의 대표작이며 영화화로도 유명해진 "200세를 맞이한 남자"이다.
그런데 아시모프를 냉전의 기수나 대변자로 폄하한 르귄의 태도를 놓고서는 해외의 SF 팬들 사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아시모프로 말하자면 평생 자유주의자에 민주당 지지자였으며, 심지어 SF 작가들의 베트남전 반대 성명 등에서도 르귄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니까.
렘의 협회 축출도 사실은 르귄이며 렘 모두와 친분이 있었던 (하지만 환각제 남용으로 음모론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두 사람 모두를 괴롭혔던) PK 딕 등이 주동자였을 뿐 아시모프와는 전혀 상관 없었다는 지적도 있으니, 이래저래 르귄이 에세이에서 아시모프를 폄하한 의도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물론 이 사건을 나름대로 분석한 해외 SF 팬들도 지적했듯이, 렘의 축출과 르귄의 철회와 아시모프의 수상을 둘러싼 과거사를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가장 오래 살아남아서 최종 평가인지 반쪽 진실인지 모를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놓은 르귄이 현재로서는 최종 승자인 듯 보일 뿐이다.
[*]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다음 차례인 "어슐러 르귄 대신 장례를 치른 레비스트로스"의 내용을 여기서 이미 쓰고 말았으니 시리즈는 일단 마무리하는 게 낫겠다.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서 계속 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귀찮아서.... 사실은 어슐러 르귄 책만 찾았어도 아마 계속 할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또 말고, 뭐, 그렇기도 하고... 만사귀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