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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 - 양쪽의 세계
권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요컨대 내가 영감을 찾아가는 여정이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완성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그래, 난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다할 분명한 이유는 없지만 여행 에세이뿐만 아니라 자전적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에 취미가 없을뿐더러, 남의 인생사를 구태여 글로 읽고 싶지도 않으며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동기가 어떠하든 확실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확실히 좋아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설령, 내가 미치게 좋아하는 천명관이나 김경욱이나 신경숙이 썼다해도 다를 바 없다. 자전적 소설이라면야, 동경의 대상이니 기꺼이 읽을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거나 내게 어떤 인생의 길을 알려주려한다면 예외없이, 그 책만은 읽지 않을 것이다. 지난 십여년의 독서 기간동안 내가 읽은 여행 에세이는 오로지 이병률의 「끌림」과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 이 두 분의 에세이뿐이다. 모르겠다. 이병률의 책은 제목 그대로 끌려서 구매했는데 그의 필력에 짓눌려 읽었던 것 같고 -이병률은 좋다. 여행 말고, 그냥 이병률의 생각, 시선, 사람이- 한비야의 책은 기억나지도 않는 어떤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그 후로는 어떠한 여행 에세이도 읽지 않았다. 그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기웃거리기 싫었던 거다. 내가 직접 갔으면 갔지, 그들의 뒤꽁무니에 착 달라붙어 그들의 시선에 휘둘리며 대리만족 따윈 하고 싶지 않았을뿐이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라고, 하는 권리의 양쪽의 세계 「암보스 문도스」. 그래, 정말 이거 여행기 아니지요, 권리씨 ?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나, 읽기 싫은 책을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읽어야 할 때면 난 정독에 가까운 책 읽기를 시도한다. 이 책의 시작도 정독으로 시작했다. 집중, 또 집중. 쉼표, 마침표 모두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여자의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 어떠한 에피소드로 나를 웃고 울게 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독을 하게 되면 책은 더 이상 여행 에세이를 벗어난 하나의 허구적 소설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타율적인 삶보다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했던 이 책의 저자 권리씨가 어떠한 이유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여행으로 인해 여자의 삶이 얼마만큼의 위로를 받게 되었는지는 내 사정이 아니다. 다만,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 책의 저자이자 여행자인 바로 '권리'. 이 작가가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으로 밀어넣어버리는 독특하고 강렬한 매력발산을 하는 이 여자, 권리씨였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을 뿐이었고, 의외로 재미있는 책이구나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읽는 도중 갑작스레 책을 끌어안아 버렸다. 정확히 페이지 68. 두 번, 세 번, 기어코 필사까지 해버렸다. 이런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책에 대한 열망이 아닌 한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아, 김경욱 역시 같은 케이스의 작가다.-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내가, 그녀가 보고 듣고 겪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권리씨의 뒤꽁무니를 쫓아 다닌 건 아니다. 그렇다. 난, 틈틈히 나오는 권리씨의 어떠한 시절의 이야기들에'만' 열광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사그라들고 냉동 보관하고 싶다던 G.마르케스에 대한 넘치는 애정에 대해 읽다가 책에 대한 열정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가슴속에서 무수히 찍어대던 책에 대한 별점들이 하나, 둘 깎이더니 주섬주섬 그녀의 전작들을 담아들기에 이르렀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책의 여행자는 유럽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에 발자국을 찍어대기에 바빴다. 세 장의 '소요' 속에 그녀의 행적들이 책이 출간되기 4년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메모지에나 끄적였을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한바탕 나를 자지러지게도 했으며 옆구리까지 흘러내리던 머리를 단박에 잘라버린, 무모하면서도 경이로운 삭발. 나는 무의식중에 여자의 발자국을 쫓는게 아닌 여자의 과거를 파헤치고 있었다. 여자와 내가 같은 나이였을 때 던졌던 수천 개의 질문과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음습의 사고관들이 너무도 쉽게 충돌해버렸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편으로 삼고 싶어했던 알베르 카뮈, 다자이 오사무, 도스토옙스키에 집중했으며 여행이 아닌 좀 더, 더, 권리라는 한 여자 혹은 작가에 대해 알고싶었다.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언정, 어차피 작가는 애초에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고했으니 굳이 여자의 여행에 관심을 두지 아니해도 될 것이다. 시작은 예술의 영감에서 시작되었을 뿐이고 내게는 권리라는 여자에 대해 알 수 없는 매력에 대해 쫓을때마다 여자가 칠레 여행때 얻은 '나는 벼룩이 득실거리는 개보다 행복하다'고 한 것 처럼 그랬기때문이다. '명란한 크로스 오버 예술'을 꿈꾸는 이 작가가, 솔직히 난 앞에서도 주구장창 말했 듯 「암보스 문도스」라는 책 보다 더 좋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작가가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겠지만 그렇게 믿는게 편하고, 여자가 힘겹게 여행한 여행에 그닥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도서관에 살았을법한 지식광인 여자에 대한 이야기만 실컷하고보니 무언가 허무해진다. 아마도 이게, 이 책에 대한 여행지를 다시 한 번 복습하 듯 쓰지 않은 이 리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여행 에세이를 좋아할법한 독자라면 매력적인 권리씨의 뒤를 쫓아도 괜찮을만한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야 -헐, 이제와서- 너무 많은 나라들을 다녀 온 탓인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않아 너무 많은 지명들이 스치워 혼란스러웠다. 영감의 계보라는 동기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과 배치시킨 여행도 색달랐지만, 무엇보다 여행자의 자유로움이 한껏 발산되어진 작품인것에는 하자가 없음이 분명하다. 앞으로 북한을 여행하는 것이 목표라는데, 목숨걸고 따라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솔직히는, 정말이지 솔직히는 여행 에세이말고 소설, 써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미출간으로 그친 「나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이란 걸 알아」라는 책의 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