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월이 잔인한 계절이라면 오월은 몸살나게 아픈 계절이다.
   내게는 '월'의 개념이 아닌 그 '월'이 가진 계절의 개념만이 존재 할 뿐이다.
   지나칠정도로 예민하고 극단적일만큼 충동적인 계절이 있다면 단연코
   꽃무더기 낙화하는 오월과 내가 태어나며 울부짖던만큼 겨울 눈꽃 
   휘몰아치던 십이월이다.
 
   더군다나, 이번 오월은 예견되어있는 헤어짐과 만남이 있다.
   동경하는 여자에게서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없다'는 말은
   가당찮다고 배웠지만 더 이상은 나를 혹독하게 대하고 싶지 않다.
 
   가끔은,
   정말이지 가끔은 타인의 흐름속에 살을 섞고 살아도 괜찮지않을까.

  



    ** 

 
   좋아하는 여자의 홈페이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정리해봤는데,
   골라놓고 보니 어쩐지 울적해진다.




  

 


   박유하 「소멸하는 순간」

   작가의 이름도 예쁘지만 제목도 예쁘다.
   친애하는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제목과 표지를 보고
   책을 선택할때가 많은데 아마 이 책도 그럴것이다.
   자극적이지않고 몽상적인 표지를 비롯해
   소멸하여 파괴되어질 것 같은 제목.
   좋아하는 여자가 옮겨놓은 글귀들을 흘겨읽다가
   멈춘 시선이 닿은 곳은 이 부분이다.
   고독 그리고 사랑, 문장이 떨리는 듯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분간하기 시작한 인간에게
그만한 고독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 그녀가 고독하지 않은 날을 하루라도 원한 적이 있었던가.
고독의 모든 찬양할 만한 점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는 인간에겐,
고독할 수 없는 사랑도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p170 소멸하는 순간 

 

  

 

 


   나쓰메 소세키 「마음」

   참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 온 책이다.
   소세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을 때, 덜컥 전집을
   사들인지가 꼬박 7년은 지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들춰보기만 할 뿐
   읽어보지는 않았다. 전집에 마음이라는 소설이 수록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은 단 권으로
   구매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마음, 마음.. .

 

 

 

 욕망 하나가 밤마다 나의 머리맡에 앉았다.
새벽마다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을 나는 본다.
밤새도록 그것은 나를 지켜본 것이다.
나는 걸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지치게 하려 하였다.
지친 것은 나의 육체뿐이었다. p109 마음

 


 

 

   다자이 오사무 「정의와 미소」

   오 마이 갓 !
   훈훈함이 가득한, 이런 표지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지근한 분위기를 그러모아 오사무씨에 대해
   적으려고 했더니 표지를 보고는 한바탕 웃었다.
   청소년 소설 같은 표지다.
   정녕, 정의와 미소의 출간작은 이거 하나뿐인가.
   문고판도 안보이고 이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나는 원서로는 읽을수가 없는데 ! 

 

   

 
 



 요즘 왠지 푹 가라앉은 기분에 예전처럼 기쁘게 일기를 쓸 수가 없다.
일기를 쓰는 시간조차 아까운 기분이 들어 자중한다고 할까.
별 거 아닌 걸 일일이 일기에 쓰는 게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중해야만 한다고 자꾸 생각했다.
베토벤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
'너는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나 역시 그런 기분이 들었다. p201, 정의와 미소

 
  


 

 


   
   조경란 「풍선을 샀어」

   작품보다 이름이 그리운 작가다.
   독서라는 취미를 몸에 스며들게 할 때 쯤
   공공연히 들려오고 추천받아 온 작품들이 있다.
   혀, 라는 작품도 그렇고 복어, 라는 작품도 그렇다.
   복어는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았다. 아니,
   애써 모른체 했다. 까닭은 없다. 그저 이 여자가
   어떤 시절의 내, 가장 아픈 곳을 치유하리라 믿을 뿐. 

  

 

 

타인에게 친화적이고 관대하며 게다가 능동적인 사람들을 보면 더럭 겁부터 난다.
나는 잘하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중요한 것은 더 못한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글쓰는 일만큼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남녀관계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관계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일종의 생명체의 결합 같다.
글쓰기와 연애의 공통점이 있다면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된다는 것이다.
결과를 짐작할 수도 없다. p212 ,풍선을 샀어 

 

  

 

 

   달달하게 취한 새벽 녘, 울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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