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비가 내렸고,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며
컴퓨터를 하는 그이의 옆에서 연신 종알거리며 기형도의 전집을
끊어 읽고 있었다. 저녁 열두시가 막 지나던 참이었고
그이는 졸린지 규칙적으로 하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만잘까?
내가 물었고 말 없이 고개를 젓는 그이를 보며 낮에 보다 만
영화를 재생시키며 함께 보자며 그이를 다시 바라보는데
싫다며, 다시 고개를 젓길래 그럼, 비오는데 나갈까?
하고 물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장난스레 내 머리를
콩, 치며 그만 마시고, 얼른 자. 했다.
두 말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빈 맥주병을 챙겨 거실로 나와
양치를 하고는 이브자리에 누워 생각없이 천장을 쳐다보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뜨니 날은 밝아 있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주말이 싱겁게 지나가버린 걸 깨닫고는 잠시 절망감에 휩싸였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을 읽기 전에 결백을 먼저 읽으려 했는데 아니, 실은 그의 전작들을 모조리 읽어내고 이번 작품을 읽으려고 했는데 시기적인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미스터리의 대가라는 그를 급작스레 마주하게 되었다. 할런 코벤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꽤 높은 편이었고 그의 작품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없는 감격스러움들이 뿌듯함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습관적 과대평가는 책을 펼쳐들고는 무력해졌음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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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기며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는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아,
읽는 도중 TV 채널을 돌리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끝내는 일어서서
읽다가 소리내어 읽기를 반복했다.
날이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내 문제이기도
했지만 할런 코벤이 구사하는 문체(혹은, 번역)
라던가 그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서술해가는
구성 방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몇 가지의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점철되어
끝에서 뭉쳐지긴 하지만, 복선과 스토리가
놀라운 반전이라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부산스럽게 흩어지는 이야기를, 그래도 내가 아주 잘 읽어냈다면 이 소설은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살인과 추적 그리고 부모가 품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정의의 신빙성에 반하는 아이들의 자립성 소설이다. 친구의 자살로 자폐적 성향을 보이는 아들의 컴퓨터에 아들이 무엇을 보고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를 하며 감시하는 부모의 빗나간 맹목적인 사랑이 소설의 1차적 이야기다. 감시를 당하는 아들의 퇴폐적인 생활과 자립하려는 딸의 고의적인 행동들이 2차적 이야기 그리고 어른에게 상처받은 아이를 위해 저지른 복수가 은폐되어져있던 한 남자의 본성을 끌어내며 참혹한 연쇄살인으로 치닫는 이야기가 3차적 이야기다. 소설의 지반은 아이들이지만 작위적인 결말에 그만, 맥이 풀려 내가 정말 기다리고 고대하던 할런 코벤의 소설을 읽은것인지 순간 의심했다면 믿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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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게도 마음이라는 건 정말 다치기 쉬웠다. 우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쉽게 산산조각날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 정신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어느 누가 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정상인으로 활동하도록 치료하려고 나서겠는가? 그들은 현실이 얼마나 가느다란 줄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지 알아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을 차단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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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이 그저 그런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난 할런 코벤의 단편적인 모습만 본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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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구사하는 문체, 스토리, 서사, 플롯에 익숙하지 않았거나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
조금은 능청스럽기는 하지만
'팬' 하기로 했으니까.
뛰어나지 않아도 몇 만 부씩 팔리지 않아도
뭐든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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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한 할런 코벤의 책이 많으니,
한 권씩 부지런히 읽어낼테니까 동안 더 빛나는 책 집필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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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모두가 별 하나 (그럴일은 없겠지만) 를 찍을때
선 별점 후 페이퍼 쓰며 별 다섯개 그려넣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