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뜨거워지면서,
베란다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가만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열기와 함께 스멀거리며 오래도록 담배 연기가 허공에 머무는 모습이
보기 좋아, 여름철에는 항상 담배가 는다. 그리고 그 열기를 가르며
두툼한 비가 거침없이 내려친다. 비를 좋아하지만,
이런 비는 기분이 나쁘다, 상당히.
- 하우스 침몰.
집을 나가 여즉 돌아오지않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거름냄새 진득한
밭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짧게 하고 끊은 후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운
그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정말? 그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묻고,
- 조난당했어. 가지와 치커리들이.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내가 대답했다.
여름은, 뜨겁고도 폭력적인것에는 변함이 없다.
열심히, 읽은 책이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
눈물 지으셨다는 어느 서재글에서 보고 읽은 책인데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번역마저도 완벽,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장르소설의 작가인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우스워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은, 소설의 배경이 정신병동인것과
주인공 역시 한 때 나와 같은 증상으로 빚어진 인물인것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음이다.
출처없는 목소리들이 들린다는 미친 사내.
그래 목소리, 그 목소리. 결국 스스로의 목소리.
꼬박 1년 하고도 6개월동안 신경과를 다니며 게워내도 시원찮을만큼의
약을 먹었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줄곧,
세상을 비틀어 보았고 세상 역시 나를 비틀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비트는 세상과 맞설 시간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비틀어진 나를 가엾게 여기며 안쓰러워 했으며
냉동고에 저장된 오랜 음식들을 꺼내어 삶거나, 구워 먹었다.
매일 아침 착실히 배달되는 우유를 차곡차곡 쌓아
정확히 유통기한 하루가 지났을 때, 데워먹거나 세수를 하며 할짝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몸이 상하지 않아 손목을 긋거나 약을 필요이상으로 먹기도 했으며
제발 그러지 말라며 내게 진저리를 치는 이에게 이혼할 것을 요구했다.
우울증의 약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내 행동들을
약을 먹어 보지 않은 아니, 먹을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약을 오래 먹다보면 순간적으로 (이건 절대 찰나가 아니다) 기억들이 조각난다.
조각난 기억의 위험성은 결국 그가 내 뺨을 올려붙이게 했으며
내가 먹는 많은 종류의 약들을 바로 내 눈 앞에서 뜯어 변기통에 흘려보냈다.
망연자실한 내가 이불 위로 쓰러져 엉엉 울며 나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내가 말한 그 집은, 내가 어릴때부터 살던 엄마가 있는 집이었는데
그이는 나를 병원으로 끌고갔으며 몇 개월을 꼬박 그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를 받았으며 이상하게도 난, 고분고분 그이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그때의 난, 막 스물 다섯이 되던 해였고 미쳐가고 있었으며 그 해의 기억들이 전부
사라져갈때쯤 스물 여섯이 이미 훌쩍 지나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기억들이 내게 남긴 건
.. . 스스로가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기막힌 공포감, 그 뿐이다.
스릴러의 감을,
놓치지않기 위해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은
데몰리션 엔젤이다. 어느 책이나 그러하겠지만
과대광고는 책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 줄 뿐이다.
연쇄 폭탄범을 추적하는 테크노 스릴러라는데,
아직 초반이라 잘 모르겠지만, 꽤나 유명한 작가란다.
워낙 국내 소설만 읽는지라 장르소설로 국외 소설에
다가가보려 집에 잔뜩 스릴러들만 장만해놓았다.
이러다 평생 장르 소설만 읽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또 다시 불면증의 시작이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