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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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지가 쓴 글에 혼자 감탄하고, 도랑 치고 가재 잡으려다 쫄딱 망한, 초보 리뷰어가 벌인 쌩쇼 분투기이다. 동시에, 좌절했던 그 인간이 극히 서...인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릴 용기를 냈다는 감사의 글이기도 하다.

 

정말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단 말이다, ~ 파랗게 펼쳐진 바다 위를 씽씽 날기도 했다. 심지어 새하얗게 펼쳐진 눈밭을 보기도 했다. ‘뭔가 학업적인 성취를 얻을 꿈입니다. 당신의 재능은 여러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겁니다.’꿈 해몽을 검색하며 입이 쭉 찢어졌다.‘음하하~ 뭔가 조짐이 좋아. 예지몽까지 꾸다니!’지난 9월은, 핸드폰 캘린더에 당첨자 발표 일자를 입력해놓고 매일 확인하며 목 빠지게 기다리던 달, 결과 발표에 목이 축 늘어진 달이기도 했다.

 

8월 말, 오늘의 작가상 수상 선정 이벤트였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리뷰를 올렸다. 구병모작가가 직접 심사한다는 말이 강하게 나를 유혹했다. 8편의 단편을 꼼꼼히 분석하고 인상 깊은 구절과 나의 느낌을 적었다. ‘알라딘에 등록하고 나니, 리뷰대회 공지 이후 올라간 첫 번째 글이 된다. 수시로 확인해도 최초 마감일이던 831일까지는 몇 편 올라오지 않는다. ‘오예~’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수상 예정인원과 응모자 수가 거의 비슷한 것 아닌가. 이 중에서는 뽑히겠지 싶었다.

그런데, ! 마이! ! 리뷰의 수준에 따라 수상 인원이 조정될 수 있다는 공지가 뜬다. 후진 글은 상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살짝 찔리며 불안해진다. 나름 긴 리뷰를 썼는데. 모나리자의 미소도 책의 분위기에 접목시키고, <어린 왕자>도 다시 읽으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최신 인터넷 뉴스와 최근 읽은 단편 <표류>의 구절 등을 인용했다.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그런 대로 괜찮다며 자기 암시를 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 고사 성어다. 마감 일자가 94일까지로 미뤄진다. 겨우 4일 미뤄졌을 뿐인데, 분열법으로 번식하는 아메바처럼 리뷰들이 실시간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감탄이 나올 만큼 잘 쓴 글들이 대거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실패로구나! 명예도 얻고 상금도 얻으려던 무모한 도전은 당선자 발표가 되기도 전에 결과를 예감하게 한다. 노래가사처럼 어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4명의 당선자 목록을 본다. 그들의 글을 찾아 읽어본다. 내 리뷰를 다시 읽는다. 좌절한다. 낯선 이름들 사이에 끼인 *표시가 차가운 눈처럼 내렸다.

 

아직 포기할 순 없다. 나흘 뒤에 또 다른 리뷰에 도전한다.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이건 좀 더 난이도가 높다. 원고지 9매 이내라니! 분량 제한이 있다. 글쓰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들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말이지만, 요즘의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학창 시절에는 뭔 뜻인지 이해는 안가지만 길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감동적인 시로 탈바꿈한 시를 일기에 적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분량을 확보하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이렇듯 처음부터 글을 길게 쓰지는 않았는데, 틈틈이 리뷰를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분량이 길어져버렸다. 평소 말이 별로 없다보니 글로 수다를 떨게 된 건가.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면 20매를 훌쩍 넘어가버리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긴 글이 반드시 좋은 글과 비례하지는 않으므로, 가끔 시를 쓰며 글을 압축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산문인지 시인지 구분되지 않는 정체오묘한 시를 올리기도 하지만.

이건 리뷰를 어떻게 쓸까? 책의 내용을 인용하기에는 제한 분량에 대한 압박이 크다. 그래! 경험담을 쓰자. 그 즈음에 경험했던 일을 책 내용과 연결시켰다. 제목은 어떻게 지을까? 가만있자,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지? 보름에 맞춰 리뷰를 올리고, ‘보름, 또는 내가 책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며 책 제목을 패러디할까? 아니지, 너무 작위적이다. 고민하다 세 단어로 된 차례를 패러디하여 쓴다. ‘역쉬~ . 이러다 패!!(패러디의 달인) 되는 거 아냐?’‘..류의 말을 일상으로 사용하는 중딩과 지내다보니 많은 단어들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스스로 감탄하며 말도 안 되는 자아도취에 빠진다.

결과는 실패였고, 그로부터 열흘 동안 좌절한 나르시스는 어떤 리뷰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된 칙칙한 시 2편은 암흑기를 보내고 있음을 드러내놓고 암시한다.

 

다시 읽어보면 응모 결과를 쉽게 예견할 수 있는 리뷰였다. <서민적 글쓰기>에 나온 내용은 이 사실을 튼튼히 뒷받침했다.

첫째, 난 서평의 금기사항을 어기는 오류를 범한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리뷰에서는 그녀는 결국 마을을 ~ 게 한다.’등 곳곳에 스포일러를 심는다. 더군다나 글이 난잡하고 어수선하다. 마지막 문장은 억지웃음처럼 부자연스럽다. ‘아픈 그림이 되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말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글의 느낌은 그리 아팠던 것 같지 않다.

둘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리뷰는 책의 내용과 연결된 고리가 다소 뜬금없고 부실하다. 개인사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리뷰라기보다는 페이퍼에 가까운 글이다. 그나마 세 번째 단락부터 책의 내용에 대한 리뷰가 시작되나 싶은데 이내 끝나버린다. 뽑아져 나오던 가래떡에 랙이 걸린 느낌이랄까. 이 책에 나오는허리가 좋아야 글이 튼튼하다.’(p207)는 문장에서 허리가 나쁜 바른 예로 들기에 적합한 글이다.

 

스스로 만족하며 올렸던 리뷰의 단점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좀 더 많이 연습해야했고, 나르시스와 같은 자만심을 걷고 겸손해야했다. <서민적 글쓰기>는 그런 면에서 부드러운 채찍이었다.

수필과도 같은 저자의 글을 보니 장점이 확실히 보였다. 댓글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는 초특급 레시피를 전수받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함과 유머로 무장한 그의 글에는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애인이 생긴 기분이랄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악의 무리를 모조리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생겼다. 나도 열심히만 한다면 꽤 봐줄만한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글이 주는 힘이었다.

글쓰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p247)는 에필로그의 제목은 태엽 풀린 장난감처럼 멈춰가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노빈손과 위험한 기생충 연구소>의 리뷰를 쓰고, ‘심페소생식이라는 경험담을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손가락이 키보드 사이를 경쾌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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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빈손과 위험한 기생충 연구소 노빈손이 알려 주는 전문가의 세계 1
서민 지음, 이우일 그림 / 뜨인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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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를 바닥에 펼쳤다. 나무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저녁도 잔뜩 먹었으니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힘을 모은다. 1차 시기, 실패다. ! 좀 더 집중해서 다시! 역시 실패다. 식은땀이 흐른다. 중력 방향으로 배를 문지르며 간절히 주문을 왼다. ‘성공하게 해주세요! 그나마 저밖에 없단 말이예요. 나무아미타불!’순간 뱃속을 내려가는 묵직한 느낌. 올레~ 미션 클리어! 콧등에 송송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쓰윽 닦고, 섬세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다. 왼손으로는 비닐봉투의 입구를 조심스럽게 벌리고, 오른손으로는 정교하게 한 점 찍어 주변에 묻지 않도록 집어넣는 기술이다. 마침 배탈이 나 고체 상태의 그것을 확보할 수 없었던 언니, 변비 때문에 도무지 작은 덩어리로의 해체가 어려웠던 동생 것까지 무사히 성공했다. 그렇게 변까지 나눈 우애는 끈끈하게 지속되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 부르는 사람은 나와서 약 먹으세요.’얼마 후 학교에서 구충제를 먹게 된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언니와 동생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지!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조금만 나눠달랄 때는 언제고!’변 한 번 나눴다가 변변한 소리도 못 들었다. 이 책의 에필로그 뒤에 나온 채변봉투 사진(p189)을 보니 예전 생각이 스물 스물 났다. 당시 기생충 이름이라고는 회충밖에 몰랐던 나는 괜히 회충을 원망했는데, 가끔 항문이 가려워서 긁었던 기억으로 유추해 보건데, 서민 박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건 요충이었다.

 

진한 쌍꺼풀에 눈 화장을 한 여자를 보면 나는 회충을 떠올리곤 했다. 그 생각은 순전히 중학교 때 들었던 괴담 비슷한 이야기에서 기인한 건데, 미술 재료로 신문지를 가져왔을 때였다. 전면 광고로 나온 여자 사진을 보고 어떤 친구가 그러는 거다.

“얘들아! 어떤 사람이 눈이 계속 꺼끌거리고 쌍꺼풀이 짙어졌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눈꺼풀 사이로 뭔가 희미한 실 같은 것이 나와 있더래. 그래서 그걸 잡아당겼더니 30cm 정도의 회충이 쭈욱 나왔단다!”꺄악! 주변에 있던 우리는 징그러움에 몸서리를 쳤고, 한동안 등하교 길에서 눈 화장한 여자를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설명으로 판단한다면 회충이 아니라 눈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동양안충(p164)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두통-치통-생리통세트처럼 흔히기생충하면 회충-편충-십이지장충세트로 불리는 바람에 선두에 선 회충이 억울한 오해의 화살을 맞았던 거다.

 

영화 <쥐라기 공원>이 연상되었다. 보통 재미있는 책은 내용이 헐렁하고, 지식이 많은 책은 설명문처럼 지루하기 마련이건만, 치밀한 구성은 영화처럼 이미지화되어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다. 무심코 읽다 빵 터지는 유머는 덤이었다. 길이로 보았을 때 기생충도 결코 공룡의 스케일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파라지 파크>로 영화화되어도 재미있겠다 싶다.

깨알같이 소개된 박사님의 멘트는 어린이 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생충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에 광절열두조충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지어낸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박사님의 멘트를 읽고 실존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몇 번에 걸친 인터넷 검색 끝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많구나, 기생충이! 연가시, 편충, 십이지장충, 디스토마 등 어렴풋이 들어본 기생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몰랐던 기생충까지 알고 나니 상식의 세계가 넓어진 듯 뿌듯함이 일었다. 책 내용이 너무 사실적인 나머지 공간적 배경인 홍합도까지 검색해 보았다는 건, ! 비밀이다.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이 떴다는 현빈의 츄리닝을 보는 것처럼, 기생충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의 애정이 느껴졌다. 멧돼지의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 120여 마리의 근육을 일일이 현미경으로 검사했다는 일화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열정을 느끼게 했다. 나도 무언가에 저런 열정을 쏟을 수 있을까.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면 저토록 쉽게 설명도 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깨져 버렸다. 생존을 위해 제각각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남아 온 그들의 삶은 놀라움을 넘어 찡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생충 때문에 감동받는 순간이 올 줄이야! 가장 바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생각이라지만, 바뀌기 쉬운 것도 생각이었다. 다만 그 계기가 99를 넘어가는 강렬함이라면, 발화점에 도달한 듯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번 추석에 친정 식구들 모였을 때, ‘그 때 걔가 회충이 아니었어~’라며 듬뿍 얻게 된 나의 지식을 뽐낼 수 있었을 것을. 더불어 채변봉투에 대한 추억도 나누었을 텐데. 밥상머리에서 얘기하기에는 좀 거시기한가? , 기생충에 대한 애정이 좀 더 필요하다. <서민의 기생충열전>으로 충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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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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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밋밋했다. 줄어드는 핸드폰 배터리인양 여름 끝자락으로부터 가을을 향해 가는 마음이 점점 가라앉던 시기였다. 간신히 이 책의 글자를 매달고 느린 시간을 걸었다. 낙엽처럼 바삭거리던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코끝이 찡해졌다.

누군가 돌아가셨다거나 말기 암에 걸렸다더라는 소식을 자주 접했던 9월이었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아 간단한 글조차 끄적일 수 없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아님 계절이나 중년을 지나고 있는 나이 탓인지도 몰랐다.

책이란 참 묘한 존재다. 그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되어있는 무생물인걸, 종종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으니. 따뜻한 글자가 내 안으로 들어와 식어가는 마음을 데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통계가 첫 화면에 떠있었다. 오랜만에 접속해본 SNS. 내가 올렸던 글과 사진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words...‘사람, 마음, 시간, 생각, 그대’. 이런 단어를 주로 썼던가. 살짝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이리 마음이 가는 단어들만 찾아냈는지. 나도 모르게 내가 읽히고 있었다.

수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아낸다는 빅데이터 마이닝이란 게 있다고 한다. 데이터가 세상을 읽는 시대가 되었다. 질병의 확산 시나리오를 쓰고, 태풍의 경로를 예측하고, 이제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히는 세상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음에 와 닿던 문장을 정리해보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소설가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진짜 주제는 삶이다.’(p86)

너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느냐고’(p97)

살아가는 것에 정답이란 없다. 인생은 언제까지나 진행형일 뿐이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p113)

사람의 인생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별빛으로 가득한 캄캄한 밤하늘이다’(p128)

그들의 인생은 모두 정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정답이라기보다도, 이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p219)

서로 다른 23편의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제각각일 텐데, 내가 그은 밑줄에 가장 많이 올라온 단어는 인생이었다. 마음 한 구석,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심어두면서도 눈은 삶을 좇고 있었던 거다.

 

어떤 문장은 나를 토닥이며 강해져야함을 말해주기도 했다.

필요한 것은 자기가 서 있는 발아래, 거친 땅바닥을 파헤치고 그곳에 나무를 세울 수 있는 작은 용기와 결단이다.’(p81)

선택은 곧 행동이다.’(p187)

선하다는 건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룰 때 가치가 있다’(p201)

그래서 따뜻했다. 표지에 나와 있는 글처럼, ‘천천히 소리 내어 당신과 함께 읽고 싶다는 문장을 따라 3주에 걸쳐 느리게 읽었던 내내. 가끔은 한 호흡 크게 내쉬고, 글쓴이의 이야기도 들어가며, 그가 해석한 소설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며 산책하듯 책을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헤밍웨이가 썼다는 여섯 단어로 된 소설이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p73)

이 짧은 문장에서는 음미할수록 깊고도 슬픈 이야기가 우러나왔다.

학창시절 억지로 읽었던 책 <노인과 바다>. 그의 일화가 얽힌 문장 하나로 새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결국 어르신은 내일 택배로 도착하게 되었다.

첫 문장으로 문학 작품에 접근한 저자의 시각도 신선했다. 평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 리뷰는 특히 첫 문장을 쓸 때 좀 더 고민을 했다. 결과물이 썩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카페에 앉아 무심코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들렸다.

도대체 인생이란 놈은 대체 뭔데 뭐길래/ 얼마나 만만찮은 거길래/ 왜 늘 헉헉대게 하나

대체 세상이란 놈은 뭔데 뭐길래/ 왜 매번 뒤통수만 치는 건지

매일 사는 게 참 팍팍하고/ 모진 현실 앞에 막막할 땐

눈감고 그려봐요/ 야자수 그늘아래/ 보석 빛 푸른 물결/달콤한 칵테일

다 함께 저 바다로 가요/ 탁 트인 해변으로 가요/ 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I say 라라라라라 오 라라라라라

대체 행복이란 놈은 뭔데 뭐길래/ 왜 나만 비껴가고 있는 건지

같은 하루하루 갑갑하고/ 왠지 가슴속이 답답할 땐

눈 감고 들어봐요/ 숲 속의 바람소리/ 초록빛 나무 사이/ 별들의 속삭임

다 함께 저 산으로 가요/ 시원한 계곡으로 가요/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그대여 어디로든 가요/ 원하는 그곳으로 가요/ 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I say 라라라라라 오 라라라라라

지금껏 잘 견딘 그대/ 오늘도 사느라 애쓴 그대/ 떠나요’... 2BiC<여름이잖아요>

 

 

이미 읽은 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책을 소개해주는 책은 이런 점에서 매력적이다. , 읽을 때의 기분에 따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문장들이 달라진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다른 문장들이 나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아직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여름은 아니지만, 마지막 문장에 울컥했던 순간, 마음속에서 묵직한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속의 나를 용서하고 부둥켜 안아주는 일, 나는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믿는다.’(p369)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냥 눈에 띄었다..

p77, 인용문, 내가 할 수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p80, 더 컬러 퍼플에 각주2 표시 없음

p220, 태양계 8개 행성 외에 발견된 외계 행성은 많아야 2,000개 정도라 들은 것 같은데, 2,817번째라는 것이 혹시 소행성아닐까? 소행성의 이름은 발견자가 부여하는 경우가 많으니...

p260, 인용문, 마날 수 만날 수

p295, 인용문, 맨 앞 따옴표 빠졌음

p324, 각주번호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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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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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제 1분만 버티면 된다.

충전하던 2G폰을 켰다. 메뉴-5번 버튼-1-4. ‘주인님! 반가워요~’ 뛰쳐나온 개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오늘의 행운은 깊은 생각과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 지금 고민하는 일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주변 상황에 행운의 말을 대입해본다. 0시를 넘겨 요즘 반복하는 일. 스마트폰으로 바꾼 이후에도 쓰던 2G폰을 가끔씩 충전하며 끊임없이 되살리는 이유이다. 이게 은근히 궁금하고 기대되는 게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는 거다. 어차피 취침 시간도 대부분 0시 이후이니까. 처음에는 장난삼아, 신기하게 맞아 들어간 어느 날은 감탄하며, 이제는 피곤한 날에도 기다리게 된 시간. 짤막한 운세를 보는 것은 그렇게 나만의 특별한 패턴이 되었다.

‘2015910. 빨래, 빨래접기, 아침, 토마토, 키위, 설거지, 미니 마중, 군만두, 슈퍼, 알라딘 주문, 메일, 응장군 톡,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 밤선비님 20ㅠㅠ’. 이불 속에 엎드려 미니 다이어리에 하루의 흔적을 기록했다. 가끔 내가 적고서도 이건 뭥미?’ 그날 그 자리에 그 단어가 적혀있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대학 다닐 때 잠시 썼던 일기 형식을 올해부터 부활시켰다.

? 이 사람도 이렇게 기록을 하는구나! ‘수상 소감에 반해 주문한 책은 단어로 된 목차에서 친숙한 공감대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모든 장마다 소제목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세 도막의 이야기. 전체 분량의 1/3 지점에서 담배를 읽다가 구성이 빚어내는 패턴을 깨닫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커다란 자루가 픽 쓰러져있었다. 옆구리 터진 만두 속처럼 뒹구는 화장지 몇 뭉치. 화장실 앞 복도를 지나칠 때였다. 안쪽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처리하시겠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가던 길을 갔다. 순간 누군가 쓰러진 봉지를 일으켜 세웠다. 아까 지각했다고 혼냈던 아이다.

!!! 보통 때였으면 참 착한 아이로군!’ 하며 상점이라도 줄까 고민했을 터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상황이 한 아이의 행동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봉지도 일으켜 세우는 마음인데 쓰러진 사람을 본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불현듯 궁금해졌다.

달라졌다. 좀 더 확장되고 깊어졌다. 상황을 바라볼 때마다 불쑥불쑥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제목의 일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양한 주어와 서술어로 변용되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당신이 삶을 기억하는 방식은? 당신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은? 당신이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당신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당신이, 당신이……?

 

그믐이다. 그믐에 그믐,…』 리뷰를 마무리하네. 패턴과 제목을 생각하니 그냥 웃겼다. 그믐달의 오른편처럼 가려진, 책 표지의 사람을 보았다. 윗부분이 궁금했고, 아랫부분은 왠지 찡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날 것 그대로의 사람과 삶을 생각했다.

초승과 그믐은 하늘에 나타나는 달과 태양의 순서 차이이다. 보고 싶은 달을 보려면 아침이냐, 저녁이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선택을 하면 된다. 하루가 불연속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채워지듯이 이 책의 서술 방식처럼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선택인거다. 저자가 묘사했던 세상이란 의미로 다가왔다.

남자, 여자, 아주머니, 죽음, 학교 폭력, 감옥, . 생선살을 발라내듯 내용을 걷어보았다. 두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패턴으로 반복되는 세상을 어떤 빛깔로 바라보느냐는 선택의 문제였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틀을 쥐게 된 느낌이 들었고, 안쪽을 바라보느냐 바깥쪽을 바라보느냐 세상을 바라보는 틀의 크기를 어느 정도로 확장할 것인가는 온전한 선택의 몫으로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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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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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그리고 내가 기대평을 쓰는 방식> 제가 100자평을 쓰는 첫번째 이유는 `추천도서증정`인 것이 맞습니다. 수상작인건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진솔한 수상소감에 반했습니다. 그래서,궁금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추천도서는 어떨까 하구요. 이젠 글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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