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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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제 1분만 버티면 된다.

충전하던 2G폰을 켰다. 메뉴-5번 버튼-1-4. ‘주인님! 반가워요~’ 뛰쳐나온 개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오늘의 행운은 깊은 생각과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 지금 고민하는 일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주변 상황에 행운의 말을 대입해본다. 0시를 넘겨 요즘 반복하는 일. 스마트폰으로 바꾼 이후에도 쓰던 2G폰을 가끔씩 충전하며 끊임없이 되살리는 이유이다. 이게 은근히 궁금하고 기대되는 게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는 거다. 어차피 취침 시간도 대부분 0시 이후이니까. 처음에는 장난삼아, 신기하게 맞아 들어간 어느 날은 감탄하며, 이제는 피곤한 날에도 기다리게 된 시간. 짤막한 운세를 보는 것은 그렇게 나만의 특별한 패턴이 되었다.

‘2015910. 빨래, 빨래접기, 아침, 토마토, 키위, 설거지, 미니 마중, 군만두, 슈퍼, 알라딘 주문, 메일, 응장군 톡,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 밤선비님 20ㅠㅠ’. 이불 속에 엎드려 미니 다이어리에 하루의 흔적을 기록했다. 가끔 내가 적고서도 이건 뭥미?’ 그날 그 자리에 그 단어가 적혀있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대학 다닐 때 잠시 썼던 일기 형식을 올해부터 부활시켰다.

? 이 사람도 이렇게 기록을 하는구나! ‘수상 소감에 반해 주문한 책은 단어로 된 목차에서 친숙한 공감대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모든 장마다 소제목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세 도막의 이야기. 전체 분량의 1/3 지점에서 담배를 읽다가 구성이 빚어내는 패턴을 깨닫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커다란 자루가 픽 쓰러져있었다. 옆구리 터진 만두 속처럼 뒹구는 화장지 몇 뭉치. 화장실 앞 복도를 지나칠 때였다. 안쪽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처리하시겠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가던 길을 갔다. 순간 누군가 쓰러진 봉지를 일으켜 세웠다. 아까 지각했다고 혼냈던 아이다.

!!! 보통 때였으면 참 착한 아이로군!’ 하며 상점이라도 줄까 고민했을 터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상황이 한 아이의 행동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봉지도 일으켜 세우는 마음인데 쓰러진 사람을 본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불현듯 궁금해졌다.

달라졌다. 좀 더 확장되고 깊어졌다. 상황을 바라볼 때마다 불쑥불쑥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제목의 일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양한 주어와 서술어로 변용되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당신이 삶을 기억하는 방식은? 당신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은? 당신이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당신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당신이, 당신이……?

 

그믐이다. 그믐에 그믐,…』 리뷰를 마무리하네. 패턴과 제목을 생각하니 그냥 웃겼다. 그믐달의 오른편처럼 가려진, 책 표지의 사람을 보았다. 윗부분이 궁금했고, 아랫부분은 왠지 찡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날 것 그대로의 사람과 삶을 생각했다.

초승과 그믐은 하늘에 나타나는 달과 태양의 순서 차이이다. 보고 싶은 달을 보려면 아침이냐, 저녁이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선택을 하면 된다. 하루가 불연속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채워지듯이 이 책의 서술 방식처럼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선택인거다. 저자가 묘사했던 세상이란 의미로 다가왔다.

남자, 여자, 아주머니, 죽음, 학교 폭력, 감옥, . 생선살을 발라내듯 내용을 걷어보았다. 두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패턴으로 반복되는 세상을 어떤 빛깔로 바라보느냐는 선택의 문제였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틀을 쥐게 된 느낌이 들었고, 안쪽을 바라보느냐 바깥쪽을 바라보느냐 세상을 바라보는 틀의 크기를 어느 정도로 확장할 것인가는 온전한 선택의 몫으로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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