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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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밋밋했다. 줄어드는 핸드폰 배터리인양 여름 끝자락으로부터 가을을 향해 가는 마음이 점점 가라앉던 시기였다. 간신히 이 책의 글자를 매달고 느린 시간을 걸었다. 낙엽처럼 바삭거리던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코끝이 찡해졌다.

누군가 돌아가셨다거나 말기 암에 걸렸다더라는 소식을 자주 접했던 9월이었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아 간단한 글조차 끄적일 수 없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아님 계절이나 중년을 지나고 있는 나이 탓인지도 몰랐다.

책이란 참 묘한 존재다. 그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되어있는 무생물인걸, 종종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으니. 따뜻한 글자가 내 안으로 들어와 식어가는 마음을 데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통계가 첫 화면에 떠있었다. 오랜만에 접속해본 SNS. 내가 올렸던 글과 사진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words...‘사람, 마음, 시간, 생각, 그대’. 이런 단어를 주로 썼던가. 살짝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이리 마음이 가는 단어들만 찾아냈는지. 나도 모르게 내가 읽히고 있었다.

수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아낸다는 빅데이터 마이닝이란 게 있다고 한다. 데이터가 세상을 읽는 시대가 되었다. 질병의 확산 시나리오를 쓰고, 태풍의 경로를 예측하고, 이제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히는 세상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음에 와 닿던 문장을 정리해보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소설가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진짜 주제는 삶이다.’(p86)

너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느냐고’(p97)

살아가는 것에 정답이란 없다. 인생은 언제까지나 진행형일 뿐이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p113)

사람의 인생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별빛으로 가득한 캄캄한 밤하늘이다’(p128)

그들의 인생은 모두 정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정답이라기보다도, 이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p219)

서로 다른 23편의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제각각일 텐데, 내가 그은 밑줄에 가장 많이 올라온 단어는 인생이었다. 마음 한 구석,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심어두면서도 눈은 삶을 좇고 있었던 거다.

 

어떤 문장은 나를 토닥이며 강해져야함을 말해주기도 했다.

필요한 것은 자기가 서 있는 발아래, 거친 땅바닥을 파헤치고 그곳에 나무를 세울 수 있는 작은 용기와 결단이다.’(p81)

선택은 곧 행동이다.’(p187)

선하다는 건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룰 때 가치가 있다’(p201)

그래서 따뜻했다. 표지에 나와 있는 글처럼, ‘천천히 소리 내어 당신과 함께 읽고 싶다는 문장을 따라 3주에 걸쳐 느리게 읽었던 내내. 가끔은 한 호흡 크게 내쉬고, 글쓴이의 이야기도 들어가며, 그가 해석한 소설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며 산책하듯 책을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헤밍웨이가 썼다는 여섯 단어로 된 소설이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p73)

이 짧은 문장에서는 음미할수록 깊고도 슬픈 이야기가 우러나왔다.

학창시절 억지로 읽었던 책 <노인과 바다>. 그의 일화가 얽힌 문장 하나로 새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결국 어르신은 내일 택배로 도착하게 되었다.

첫 문장으로 문학 작품에 접근한 저자의 시각도 신선했다. 평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 리뷰는 특히 첫 문장을 쓸 때 좀 더 고민을 했다. 결과물이 썩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카페에 앉아 무심코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들렸다.

도대체 인생이란 놈은 대체 뭔데 뭐길래/ 얼마나 만만찮은 거길래/ 왜 늘 헉헉대게 하나

대체 세상이란 놈은 뭔데 뭐길래/ 왜 매번 뒤통수만 치는 건지

매일 사는 게 참 팍팍하고/ 모진 현실 앞에 막막할 땐

눈감고 그려봐요/ 야자수 그늘아래/ 보석 빛 푸른 물결/달콤한 칵테일

다 함께 저 바다로 가요/ 탁 트인 해변으로 가요/ 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I say 라라라라라 오 라라라라라

대체 행복이란 놈은 뭔데 뭐길래/ 왜 나만 비껴가고 있는 건지

같은 하루하루 갑갑하고/ 왠지 가슴속이 답답할 땐

눈 감고 들어봐요/ 숲 속의 바람소리/ 초록빛 나무 사이/ 별들의 속삭임

다 함께 저 산으로 가요/ 시원한 계곡으로 가요/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그대여 어디로든 가요/ 원하는 그곳으로 가요/ 열심히 수고한 그대여 오늘을 누려봐요/ 신나는 여름이잖아요/ 지친 마음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 지금 함께 떠나요

I say 라라라라라 오 라라라라라

지금껏 잘 견딘 그대/ 오늘도 사느라 애쓴 그대/ 떠나요’... 2BiC<여름이잖아요>

 

 

이미 읽은 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책을 소개해주는 책은 이런 점에서 매력적이다. , 읽을 때의 기분에 따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문장들이 달라진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다른 문장들이 나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아직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여름은 아니지만, 마지막 문장에 울컥했던 순간, 마음속에서 묵직한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속의 나를 용서하고 부둥켜 안아주는 일, 나는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믿는다.’(p369)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냥 눈에 띄었다..

p77, 인용문, 내가 할 수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p80, 더 컬러 퍼플에 각주2 표시 없음

p220, 태양계 8개 행성 외에 발견된 외계 행성은 많아야 2,000개 정도라 들은 것 같은데, 2,817번째라는 것이 혹시 소행성아닐까? 소행성의 이름은 발견자가 부여하는 경우가 많으니...

p260, 인용문, 마날 수 만날 수

p295, 인용문, 맨 앞 따옴표 빠졌음

p324, 각주번호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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