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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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등장하는 접속사가 과속방지턱처럼 걸렸다. 겉도는 묘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직전에 읽은쓰기의 말들의 후유증이 컸나. 깔끔한 일식의 맛이 나던 은유 작가의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맴돌았나보다. 1아프게 짝사랑하라가 끝날 때까지 이 책의 문장들은 설 끓인 김치찌개 맛처럼 마음 언저리를 겉돌았다. 2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면서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멈출까. 첫 번째 에피소드만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어느 거지의 변>은 신의 한 수였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담겨 있다. 은행나무를노란 화관으로 표현한 문구가 두 번 나오면서 나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지만, 경험담이 많아지면서 눈 끝은 뭉툭해진다. 사고의 폭이 넓어질 기회를 놓칠 뻔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2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놓은 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그 마음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북극의 에스키모족도- 알아듣는 만국 공통어이다.(p68)’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느껴진다. 마음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내 짝꿍은 손이 뭉툭했다. 굉장히 친절하고 마음씨가 고왔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은했던 친구의 미소는 맑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p104)’순수한 이성적 판단이 담긴 대학생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무심코 지나치던 사회의 모퉁이를 돌아본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에서는노인과 바다가 등장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나 일상적인 산문에서 공통으로 권장하는 도서가 고전이다. 참 신기하다. 몇 백 년 전에 쓴 글이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의 어딘가에는 공통된 감성의 스위치가 존재하는 걸까. 고전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풍성해질 것만 같다.

 

3더 큰 세상으로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4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작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기억 상자 속을 여행했다.

<엄마의 눈물>에서는 연탄재를 배경으로 한 어린 시절로 후다닥 타임 슬립을 하였다. 추운 새벽 연탄을 갈던 어머니, 일하러 나가신 사이 연탄을 간답시고 번개탄을 거꾸로 놓고 불이 안 피워진다며 땀 흘리던 기억, 온 집안에 배경음악처럼 자욱하던 연탄가스냄새가 훅 끼얹어졌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 돈이 모아지는 대로 쌀을 한 말씩 사던 날들이 빈번했다. 눈뜰 때마다 선명했을 일상, 그 막막한 무게를 껴안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주로어디에 가고 싶다가 많았다.(p124)’<>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던 참이다. ‘엄마는 세계 여행 한군데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디 가고 싶어?’중국에 있는 딸이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 묻는다. 딸에게 답문을 보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이라고. 한동안 잊고 있던 30대의 꿈이 생각났다. 겨울 새벽 2시쯤이었던가. 광해를 피한답시고 아파트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옥상 문을 개방했던 시기였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맨눈으로 관측해다. 벅차게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때의 열정을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p135)’작가의 문장 앞에서 오만했던 나를 반성한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 정답을 정해놓고 감히 작가의 글을 채점하려 덤빈 꼴이 아닌가. 글은 곧 삶이고, 모든 삶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을. 표현이 다소 투박하면 어떤가. 삶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겨있다면 지금처럼 마음을 출렁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의 제목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을 다시 음미하며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일렁이는 마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책이다. 뚝배기 같은 글이랄까. 작가만의 삶이 글 안에 담겨 서서히 온도를 높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끓게 되는. 그녀만의 삶이 전해주는 맛을 느끼며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덩달아 따스해지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p51, 1째줄, 북극성은 1100광년이래. 너무 멀어서 기록마다 편차가 있지만, 북극성까지의 거리는 약 400광년으로 알려져 있다.(참고: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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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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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자, 모나!리자, 모나리!, 모나리자!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말장난이다. 단지 네 글자 발음하는 데에도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지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 책에 담긴 104편의 짤막한 글들이 그랬다. ‘글쓰기라는 일관된 과녁을 향했지만 조금씩 다른 에피소드를 담고 전개되는 글들은 매번 달랐다. 1쪽 안에 새겨진 디테일과 완결성이란! 은유의 글을 보며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쌀 알 하나에 다보탑을 새긴다는 사람을. 고급 일식집에서 새우튀김 한 개를 맛본 기분이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절로 깨달아졌다. 그녀는 훌륭한 요리사였다. 내가 계란 프라이만 할 줄 아는 원 푸드 초보 주부라면 그녀는 달걀 한 개를 놓고도 계란찜, 계란말이, 스크럼블 에그, 계란탕을 구현했다. 계란 프라이만 하라고 해도 채친 당근과 쪽파 등으로 색다른 데커레이션을 구현할 것 같았다.

 

글을 요약하는 게 힘들어요. 대학에 다니던 제자는 말했다. 20~30장 리포트를 쓰는 건 일도 아닌데 그걸 A4 한 장으로 제출하라는 과제가 너무 어렵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꿰어지는 이야기는 방앗간 가래떡처럼 언제 끊길지 몰랐다. 중간에 칼을 댈라치면 어정쩡한 거지 컷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시 쓰기에 도전한 이유 중 하나다. 시에 담으면서 흰 색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였다. 입금 전후 배우의 모습처럼 최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침표가 찍히는 장소가 생경했다. 짐작할 수 없는 내 글의 마지막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단어를 잘라내고 이리저리 배치를 바꾸다가도 누에고치처럼 구구절절 뽑아내던 문장을 송두리째 버렸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깜지가 될 즈음 알라딘 서재에 업로드 했다. 찜찜한 마음을 꼬리표처럼 매단 채였다.

 

아름다운 표현에 자주 현혹되었다. 햇살, 바람, 나무를 이용하여 글에 색칠을 했다. 하늘하늘한 수채화이기를 바라며 붓을 들었다. ,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표현이야.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를 썼다. 그렇게 몇 십번을 반복하니 입에 물렸다. 뻔한 표현, 남들도 다 하는 비유라는 생각이 점점 진해졌다. 제대로 된 화장법도 모르고 입술만 시뻘겋게 두드러진 갸루상이었다. 나의 글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전력질주 하던 커서는 점점 발걸음이 둔해졌다. 짧은 구간을 왕복달리기만 하던 날들이 지나갔다. 우측 깜빡이만 넣고 출발도 못하는 초보 운전자가 되었다. 감성은 종종 새싹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햇살과 바람과 나무가 예민하게 살갗을 건드리는 건 사실이었다. 재료는 같았지만 질감과 양과 투명도는 달랐을. 감성은 발끝을 보이는데 허리를 숙여도 닿지 않은 손끝으로 초라한 글이 매달렸다. 미묘한 채도의 차이를 글로 그려내는 데 한계를 느꼈다.

 

새벽 세 시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느낌표로 남은 문장들이 수시로 볼펜 끝에서 복기되었다. 수많은 느낌표를 나무인 양 마음에 심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리뷰 안으로 어떤 문장도 불러내기 어려웠다. 느낌표가 빽빽한 숲을 이룰 무렵 물음표 하나가 꽃으로 피었다. ?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작가의 책은 이 한 글자를 남긴 채 어젯밤과 오늘 새벽을 주섬주섬 챙겨가지고 달아났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표현의 한계가 아니었다. 그건 둘째 문제였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나의 글의 존재 이유였다. 왜 나는 글을 쓰는 걸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대의 따위는 없었다. 내 글의 시작은 나의 눈물을 닦아내는 손수건이었다. 글자로 이루어진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시린 공기가 폐 속을 들락거리는 날이면 따뜻한 숨결을 후 불어넣어 주는, ‘나 너무 외로워라 쓰면, 내게도 나 너무 외로워라 말해주는. 내 마음이 담긴 글자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손난로를 쥐게 된 양 온기가 저릿했다. 글을 쓰는 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자주 외로웠다. 그것이 존재의 원초적인 고독에서 기원한 것인지 관계의 삐걱거림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마음으로 스며드는 냉기였다. 냉랭해진 관계의 원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변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품고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서는 더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이것 때문이었을까, 저것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이 원인이었고 그 무엇도 원인이 아닐 수 있는 아이러니였다.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들어낸 드넓은 공간에서 선명한 좌표를 찾아 점을 찍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견딜만할 때에는 책을 읽었다. 한겨울 노숙자가 된 기분으로 드라마를 신문지처럼 덮고 잤다. 그마저 견딜 수 없을 때 하게 된 것이 글쓰기였다. 시집이든 소설이든 동화든 다큐 형식의 글이든 책을 읽을 때마다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렸다. 때때로 일렁이는 마음을 시로 옮겼다. 되도 않는 글을 무작정 끄적거렸다. 글은 자꾸만 초라해지려는 나를 어루만졌다. 내게 있어 글은 온기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아프다며 질척한 넋두리를 하는 글들이 많았다. 음울한 흑백 사진 같다 여겼다. 어떤 이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인데 내 글을 읽고 울었다는 이가 생겼다. 내게서 나온 글이 누군가에게는 거울이 되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이들이 간혹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신기하면서도 신이 났다. 즐거운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글도 그림처럼 해석의 차이가 강하게 작용하는 예술이었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p219)’라는 말처럼 내 글에 조금이나마 좋은 글의 꽃가루가 묻게 된 것일까. 물음표의 포장을 뜯고 보니 화살표가 들어있었다.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왠지 알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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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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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변화라 생각했다.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기만 하면 물에서 수증기로, 수증기에서 얼음으로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 3종 세트를 종횡 무진하는 물처럼 주변 환경만 변하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관계. 남편와의 관계는 어느 순간 이런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관계의 물리 변화에는 나태한 마음도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변 환경만 변하면이라……. 전제 조건이 붙는 관계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가. 환경은 그리 쉽게 변하는 요인이 아님을.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에너지가 얽힌 세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경직된 거리감으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관계라는 생각을 하며 등속운동의 시간-속력 그래프를 떠올렸다. 세상 참, 재미없다. 희망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래는 아득했다.

 

서민의 책에 주로 손이 가는 상황이 있다. 춥다는 느낌이 묵직한 추가 되어 마음에 매달릴 때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간간이 피식거리다보면 삶의 중력이 조금이나마 약해진다. 나의 소박한 기대는 매번 충족되었고 집을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집어든 집 나간 책은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라앉은 마음이 반응의 역치를 높였지만 넘어간 책장이 남아있는 책장보다 두꺼워질 무렵, 마음은 향긋한 빵처럼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그의 글이 내 감성의 주파수와 맞는 걸까. 서민의 글이 좋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극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자극적이고 과격한 시선으로 부담을 주지 않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어휘 끝에 따라오는 재수 없음도 없다. 그렇다고 고지식하지도 않다. 단맛이 살짝 가미된 플레인 요거트 맛이다. 기분 좋게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는 종종 글을 통해 내가 우울할 때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가 된다.

 

서평과 세상, 저자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3개의 장에 나눠 담았다. 1장은 사회적인 이슈나 현상을, 2장은 일상적인 경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3장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가는 서평이다. 사회, 일상, 학문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지와 편견과 오해를 부드러운 예리함으로 묘사한다. BGM처럼 깔리는 유머는 덤이다.

책장이 얼마 넘어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책속에 담긴 세상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었다. 글이 펼치는 그들만의 세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인간으로서의 양심, 416일의 기록, 강자들을 위한 도구인 법,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아이들 세대, ‘적당히가 우선하는 사회, 사회적 차별에 관한 이야기들이 손끝을 지나가면서 마음의 색채는 조금씩 달라졌다.

전혀 감성적이지 않은 글이 오히려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계속 읽다보면 일렁이는 마음의 파동이 잦아든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마다 이성적인 글을 쓰는 알라딘 서재를 찾게 되는 이유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는 글에 젖어들었다. 바싹 마른 싸리비로 어질러진 내면의 마당을 쓱쓱 청소하는 듯 점점 개운해졌다.

 

책의 3분의 1지점에 이르자 마음이 크게 들썩였다. 정희진처럼 읽기에 있다는 구절 때문이다. ‘상대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끝나는 것이다.(p91~92)’ 같은 문장을 서성이며 몇 번이나 읽었다.

화학 변화였구나. 전혀 다른 물질이 되어버려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관계였어. 이미 깨닫고 있었지만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스스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울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외면하던 상황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오히려 마음은 담담해졌다.

 

덴마크의 과학자 외르스테드는 전류와 관련된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변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연은 선물 같은 순간을 떨구고 지나갈 때가 있다. 책 속에 소개된 책에서 얼떨결에 의미 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처럼. 곳곳에 숨겨진 작은 보물을 찾는 기쁨,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이다.

인터넷과 책은 이런 점에서 선명한 차이로 갈린다. 적절한 검색어를 입력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인터넷과 달리 책을 통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많다. 매일 오가는 출근길 풍경도 자동차의 속도에 따라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있듯 나만의 속도로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엉뚱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배경지식이 제각기 다른 독자들은 저자가 의도한 주제대로 책을 읽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맥락의 주제는 분명 보이겠지만, 같은 사람이라도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감정 상태에 따라 좁다랗게 이어진 골목길로 들어갈 수 있다. 책이 지닌 강력한 매력이다.

 

글쓰기와 관련된 몇 가지 팁도 얻는다. ‘한국인은 그 세 단어 -있었다, , -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p182~183,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문장이 리뷰를 쓸 때 자꾸 생각났다. 의식적으로 세 단어를 빼가며 글을 쓰니 문장이 담백해졌다. ‘독자에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어라.(p239, 유혹하는 글쓰기)’,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p239, 마르셀 프루스트)’ 라는 문장은 표현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p186,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지난겨울, 1월과 2월 두 달 동안 매일 수필을 쓰듯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며 하루라는 책꽂이를 정리했다. 이번 여름에도 두 달 동안 시도할 계획이다. 사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는 삶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운동, 다이어트, 공부에서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정희진의 문장을 보며 가장 풀기 어려웠던 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하였다. 서민의 글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귀 기울이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였다. 유머가 담긴 서민의 발상에 피식피식 웃다보니 낙천적인 마음이 되어갔다. 그래, 이유가 없다는데 어쩌겠어. 물컹하던 계란은 이미 프라이팬 위에서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 프라이로 굳어져 되돌아가지 않을 텐데. 삶은 달걀이나 계란찜을 바랜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 이제 나의 선택지는 계란 프라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간장을 뿌려 밥과 함께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교육자의 마인드로 조금씩, 날마다, 꾸준한 변화를 도모할 밖에. 풀리지 않던 관계의 해법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하며 두텁게 입고 있던 외로움의 외투를 벗어던졌다.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서툴지만,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p58, 밑에서 10째줄 : 신기하기도 신기하게도

p95, 2번째 단락 1째 줄 : 한 장 한장 한 장 한 장

p293, 3째 줄 : 1969716(중략)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한 날이다. 16일은 발사일, 20일이 착륙일

 

관심 가는 책

<정희진처럼 읽기>,<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아주 사적인 독서>,<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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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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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일이 주가 되고 생활 지도와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교직 생활 27년 째. 갈수록 이 일이 어렵고 조심스럽다. 가르치는 일은 노하우가 쌓여가고 투자한 시간에 대비해서 효율도 높아지는데, 발령 초반에는 부수적이라 생각해왔던 영역들이 점점 높은 비중을 차지해간다. 이 직업이 다루는 대상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깨달음의 영향이 크다. 내가 마주보는 대상이 살....는 것이다. 이 사실은 종종 커다란 부담감으로 온다. 분열법으로 번식하는 아메바 같은 하등 생물을 제외하고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삶은 어느 하나 동일하지 않다. 학생들을 마주 본다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영혼들이 나로 인해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삶의 방향이나 빛깔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심스럽다. 무심코 내뱉은 나의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발화점이 될 수도, 내게서 풍기는 분위기나 생명 에너지가 또 다른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 그들이 어느 부분을 바라볼지 전혀 예상을 못한다는 점이 나는 때로 두렵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했다. 빈 종이를 옆에 두고 거미줄처럼 깔린 관계망을 그려가면서 결말이나 사건의 원인을 예측했다. 학교에서의 체험 캠프를 시작으로 소설 속 사건은 전개된다. 배경이 학교이고, 교사와 학생과 가족 관계에서 발생한 일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보니 여타 추리 소설보다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7년 전에 진행을 했던 영재캠프를 떠올린다. 여학교이고 여름방학이라서 시도 가능했던 캠프였다. 간단한 침구를 가지고 와서 팁별로 깃발도 만들고, 천문 특강도 듣고, 천체망원경으로 달도 관측하고, 탐구활동도 하고, 저녁에는 학교 건물 한 옆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가사실에서 밥을 지어 나누어먹었다. 밤에는 골든벨, 몸으로 말해요, 이구동성 등 팀별 게임도 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학교 뒷산으로 천천히 산책도 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한편으로 내가 그 때 참 무모했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생각한다면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젊음은 무언가에 도전하는 횟수와 비례하는 걸까.

 

카카오 톡에서 나의 상태메시지는 처음처럼이다. 처음 수업을 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처음 사람을 대할 때의 조심스러움으로 대하고자하는 작은 다짐이 담긴 문구이다. 그게 생각만큼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일상적인 어긋남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기분이 다운된 날의 수업은 다른 날보다 확실히 신경이 곤두선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교실을 나서는 순간, 조금만 참을 걸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좀 더 넓어져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은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선생도 인간이니, 학생이라는 살아 있는 인간을 상대하다보면 교육자의 얼굴 아래 본래 있던 인격이 드러나기도 하겠죠. 그것이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오거나 반발을 초래할 테고요. 그래서 생활인으로서 그의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은 겁니다.(p59)’

 

드라마 <스위치>에서는 원칙주의자인 검사와 도플 갱어인 독특한 사기꾼이 남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주인공 검사가 사기꾼과 손을 잡고 마약과 연관된 거대한 암흑 세력을 소탕하려는 시도를 하자 원칙주의자 검사는 그건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목적이 옳아도 수단이 잘못되면 모조리 틀린 것이 되어버리는데. (중략) 왜 나쁜 놈이 저지른 진짜 나쁜 짓을 하나하나 모아서 입증하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어?(p126)’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문장을 드라마 내용과 오버랩 시키며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진짜 나쁜 짓을 입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내 생각은 회의적이다.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울 때조차 흔히 말하는 FM 대로 걸어가야 하는 걸까. 잘못된 수단을 모조리 틀린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였다면 남주인공 검사의 입장에 가까웠으리라. 요즘 생각은 달라지고 있다. 누가 보든 안보든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까지 굳이 돌아서 차도를 건너던 나는 이제 없다. 필요에 따라 휘휘 둘러보며 무단횡단을 할 때도 있다. 더 나쁜 놈들이 버젓이 휘젓고 다니는 세상의 풍경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면서부터 점점 드라마 속 사기꾼의 논리에 마음이 기운다.

 

음의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과 학생,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이끄는 쪽과 따르는 쪽, 억압하는 쪽과 억압받는 쪽의 조합부터 잘못되었고, 그러니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 답만 나온다.(p116~117)’ 지난주에는 시어머님께서 나물과 국을 끓여주신다고 가지러오라고 하셨다. 당신께서는 종종 말씀하신다. 억지로 가져가라는 것은 아니라고.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마냥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은 아니다. 직장일이 많아 몸이 너무 피곤할 때면 굳이 그것을 받으러 시댁까지 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안 해주셔도 된다며 사양하면 혹여 서운해 하실까 염려스러워 매우 기쁜 척 리액션을 취하고 살짝 강요된 느낌으로 다녀올 때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시댁을 향하면 학생들의 입장이 이해된다. 교사인 나는 편하게 대해준다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아이들 입장은 다를 것이라고. 관계 자체가음의 방정식이므로 마음속으로는 마이너스의 답을 안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제목 음의 방정식의 의미를 풀이한 문장을 한참동안 음미하며 그래프의 변인들을 떠올린다. 2차원 평면에 그래프를 그리려면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이 필요하다. 기체에 작용하는 압력을 증가시켰을 때 기체의 부피가 변화하는 그래프라면, 일정하게 변화하는 값이 독립 변인으로 가로축에, 독립 변인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값이 종속 변인으로 세로축에 온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값은 통제 변인이다. 둘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경우에서든 일정하게 해주어야 하는 값, 예컨대 일정한 온도 같은 것이다.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하는데, 소위 보일 법칙이라 불리는 이 관계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었을 때 성립한다. 독립 변인이 선생, 가르치는 쪽, 이끄는 쪽, 억압하는 쪽이라면, 종속 변인은 학생, 배우는 쪽, 따르는 쪽, 억압받는 쪽일 것이다. 통제 변인은 둘 사이의 관계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 의한 변수들일 것이다.

내가 주로 맺고 있는 관계들을 대입해본다. 학생들이나 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독립 변인이고, 시댁이나 관리자와의 관계에서는 종속 변인일 것이다. 1기압, 2기압, 3기압 등 독립 변인이 일정하게 변화되어야 그에 따른 그래프를 깔끔하고 편하게 그릴 수 있다. 이처럼 독립 변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항상 일정한 패턴으로 종속 변인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해야할 것이다. 변인을 통제하면서 일정한 걸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과의 관계가 조심스러워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다. 삶의 경험이 많아지면서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들을 둘러싼 환경들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대상은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일정한 걸음으로 걸어가려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인간관계는 결국 독립 변인, 종속 변인, 통제 변인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무게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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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에도 다 이유가 있다 한겨레 동시나무 4
정연철 지음, 안은진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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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쏟아지는 업무와 불쑥불쑥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점점 지쳐가던 시기였다. <시인의 말>에 나온 한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동시는 마음을 말갛게 한다.(p4)’. 씹을수록 후텁지근했던 마음이 보송보송해졌다.

시인을 따라 학교에도 가보고, 아이가 되어보고, 아이의 부모님이, 할머니가 되어보았다. 산수유 꽃을 새삼 바라보고, 무릎을 굽혀 작은 봄꽃에 눈길을 주고,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무모한 행위에 화를 내기도 하고, 의인화된 생물들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오래된 더께처럼 밑바닥에 눌러 붙은 마음을 조금씩 긁어냈다.

 

<1, 빵점에도 다 이유가 있다>에서는 학교에서 겪는 일상과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꼴찌라도 주인공이죠.(p33, <주인공>)’를 읽고는 공부는 꼴찌라도 마음만은 일등인 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서른세 가지 아이들 나물 넣고(p34, <비빔반>)’를 읽다가 수업에 들어가니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눈길이 머문다. ‘그렇지, 이 중에서 같은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지.’ 라 생각하니 따뜻한 곳으로 들고 온 풍선처럼 마음이 쫘악 펴진다.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며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을 향해 화낸 적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2, 향기는 덤으로 드립니다>에는 꽃과 식물 등 주로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송이송이 / 노란 폭죽이다(p40, <산수유꽃>)’를 읽고 적절한 비유라며 감탄한다. 노란 산수유 꽃에서 고고한 아름다움이 풍긴다는 것은 오래전 디카를 구입하고 접사를 찍으러 돌아다닐 때 알게 된 사실이다. 백제시대 왕관을 연상시킨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주렁주렁 매달린 자그마한 술에서 불꽃을 떠올리다니! 시인의 통찰력이 놀랍다. ‘땅은 / 당연히 / 모두에게 / 무상급식한다(p42, <제비꽃>)’를 읽고는 세상에 존재하는 공평한 것들을 생각한다. 공기, 하늘, 햇빛... 무상으로 제공되는 자연을 마음대로 가르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인간들의 욕심을 생각한다.

<3, 개구리밥이 개명 신청을 했다>는 주변의 동식물을 의인화하며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행위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달팽이를 밟지 않으려 영광의 상처를 얻은 아이의 고운 심성(p55)에서부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p62) 원형탈모가 생긴 동네 뒷산(p63)에 이르기까지. 성형수술을 당하는 학교 화단의 향나무(p66)를 보니, 겨울이면 줄줄이 매달린 뜨거운 전구로 그물 옷을 입게 되는 거리의 나무들이 떠오른다.

<4, 할머니는 좋겠네>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다. 손주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배어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친숙하고 투박한 구어체로 맛깔스럽게 묘사한다.

 

출장을 갔다가 같이 근무하던 동료를 거의 10년 만에 만났다. 일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같이 걸어가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부족하지만 가끔 시도 써요.’ 내가 말하자, ‘어멋! 저 시 완전 좋아해요!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은행잎이 태평가도 없이 부채춤을 춘다는 시도 썼잖아요.’ 무척 반가워한다. 우리 과학샘 맞냐며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1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어색한 간극이 라는 한 마디로 훅 날아가 버려  ‘1+1=1(p67)’이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기로 했다. 시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말갛게 보일까. ‘온 마을 온통 하얗게 팩을하고, ‘개밥 그릇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함박눈>(p52)처럼, 시는, 시인은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이리라. 마음을 세수한 듯했다. 보송보송한 마음의 민낯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간질거리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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