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에도 다 이유가 있다 한겨레 동시나무 4
정연철 지음, 안은진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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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쏟아지는 업무와 불쑥불쑥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점점 지쳐가던 시기였다. <시인의 말>에 나온 한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동시는 마음을 말갛게 한다.(p4)’. 씹을수록 후텁지근했던 마음이 보송보송해졌다.

시인을 따라 학교에도 가보고, 아이가 되어보고, 아이의 부모님이, 할머니가 되어보았다. 산수유 꽃을 새삼 바라보고, 무릎을 굽혀 작은 봄꽃에 눈길을 주고,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무모한 행위에 화를 내기도 하고, 의인화된 생물들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오래된 더께처럼 밑바닥에 눌러 붙은 마음을 조금씩 긁어냈다.

 

<1, 빵점에도 다 이유가 있다>에서는 학교에서 겪는 일상과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꼴찌라도 주인공이죠.(p33, <주인공>)’를 읽고는 공부는 꼴찌라도 마음만은 일등인 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서른세 가지 아이들 나물 넣고(p34, <비빔반>)’를 읽다가 수업에 들어가니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눈길이 머문다. ‘그렇지, 이 중에서 같은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지.’ 라 생각하니 따뜻한 곳으로 들고 온 풍선처럼 마음이 쫘악 펴진다.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며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을 향해 화낸 적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2, 향기는 덤으로 드립니다>에는 꽃과 식물 등 주로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송이송이 / 노란 폭죽이다(p40, <산수유꽃>)’를 읽고 적절한 비유라며 감탄한다. 노란 산수유 꽃에서 고고한 아름다움이 풍긴다는 것은 오래전 디카를 구입하고 접사를 찍으러 돌아다닐 때 알게 된 사실이다. 백제시대 왕관을 연상시킨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주렁주렁 매달린 자그마한 술에서 불꽃을 떠올리다니! 시인의 통찰력이 놀랍다. ‘땅은 / 당연히 / 모두에게 / 무상급식한다(p42, <제비꽃>)’를 읽고는 세상에 존재하는 공평한 것들을 생각한다. 공기, 하늘, 햇빛... 무상으로 제공되는 자연을 마음대로 가르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인간들의 욕심을 생각한다.

<3, 개구리밥이 개명 신청을 했다>는 주변의 동식물을 의인화하며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행위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달팽이를 밟지 않으려 영광의 상처를 얻은 아이의 고운 심성(p55)에서부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p62) 원형탈모가 생긴 동네 뒷산(p63)에 이르기까지. 성형수술을 당하는 학교 화단의 향나무(p66)를 보니, 겨울이면 줄줄이 매달린 뜨거운 전구로 그물 옷을 입게 되는 거리의 나무들이 떠오른다.

<4, 할머니는 좋겠네>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다. 손주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배어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친숙하고 투박한 구어체로 맛깔스럽게 묘사한다.

 

출장을 갔다가 같이 근무하던 동료를 거의 10년 만에 만났다. 일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같이 걸어가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부족하지만 가끔 시도 써요.’ 내가 말하자, ‘어멋! 저 시 완전 좋아해요!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은행잎이 태평가도 없이 부채춤을 춘다는 시도 썼잖아요.’ 무척 반가워한다. 우리 과학샘 맞냐며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1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어색한 간극이 라는 한 마디로 훅 날아가 버려  ‘1+1=1(p67)’이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기로 했다. 시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말갛게 보일까. ‘온 마을 온통 하얗게 팩을하고, ‘개밥 그릇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함박눈>(p52)처럼, 시는, 시인은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이리라. 마음을 세수한 듯했다. 보송보송한 마음의 민낯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간질거리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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