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필통 크기 만한 방망이로 직접 밀어서 만드는 만두피, 노트만큼 펼쳐진 밀가루를 찹찹 접어서 나무로 된 도마 위에서 써는 손칼국수의 면발, 양재기에 직접 쑤는 청포묵, 엿기름으로 만드는 식혜, 하루 왼종일 고아서 말간 국물이 우러나는 사골 국물, 시커멓고 찐득찐득한 껍질을 직접 벗겨서 방망이로 두드린 다음 쭉쭉 찢어서 양념장에 버무린 더덕무침. 당신에게 요리란 천연 재료로부터 출발하여 거의 모든 과정을 손으로 만들어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어머님의 세계는 달랐다. 슈퍼마켓 진열장에서 출발하며 비닐봉지를 뜯고 가열만 하면 바로 끝나는 내 세상과는 아주 많이. 결혼 후 많은 기간 동안 그 다름을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어 속으로 투덜댔다. 몇 시간이나 걸쳐 노동을 한 결과물이 허무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늘 마이너스가 나왔다. 그냥 편하게 사먹으면 될 걸 힘들게 왜 저러실까, 금전적으로도 별반 차이도 없는데.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바라보면 답답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고들 한다. ‘이해의 앞에는 언제나 체험이 있다.(p178)’ 달라도 너무 달랐던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20여년의 시행착오가 담긴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10년 전 아니, 5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을 소재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뻑뻑했던 관계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시점은 작년이었다. 조계사에서 화쟁 사상을 주제로 한 독후감 공모를 주최했는데, 담론(신영복, 돌베개, 2015.4.)을 읽은 후 독후감을 보냈더랬다. 관계가 주제였기에 당시 가장 불편했던 어머님과의 관계를 글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변화는 그 후에 일어났다. 언행불일치의 삶을 적잖이 살아왔지만, 적어도 세상에 발표한 글과 너무 이질적인 삶을 이어간다는 건 양심에 찔렸다. 당신과의 관계가 서서히 풀려가는 시기였지만, 객관적으로 정돈된 이야기가 글로 나오자 그 속도는 급격하게 빨라졌다. 적절히 달궈진 프라이팬처럼 관계 위에 얹는 에피소드마다 알맞게 익어갔다. ‘이야기는 도구다. 그것은 세계와 나를 이어준다.(p144)’ 이야기는 세계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도 이어주었다. 당신과의 이야기가 당신과 나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변화였다. 그 후로 어머님은 지금처럼 종종 내 글의 소재가 되어 주셨다.

 

관계의 해동기에 이 책을 만난 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결정적인 한 방이랄까. 장르별로 책을 꽂을 수 있는 깔끔한 책장을 만난 느낌이었다. 채사장의 글을 따라가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꽂을 수 있었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한 건 이것 때문이고, 그럴 때 이랬던 건 이래서야 하며 체계적으로 요점 정리를 해준 책이었다. 그의 풀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말과 글은 간결해도 충분하다. 꾸미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수식어를 걷어내고 정갈하게 정돈된 언어를 정확히 구사한다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언어는 타인의 가슴에 강렬하게 박힌다.(p172)’ 그의 글이 그랬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핵심을 찔렀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깔끔한 느낌이 철학적인 시를 읽는 것 같았다. 인문학 장르로 분류되어있지만 철학적인 내용이 다분히 많았다. 스피노자나 니체의 철학처럼 채사장의 철학이랄까. 나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타인과 세계, 그들과 나를 이어주는 도구로써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을 통찰하여 결론처럼 맺어주는 의미론적인 고찰에는 삶과 죽음과 관계가 담겨있었다. 그의 관점은 신선했고 이제껏 생각해보지 않은 방향에서 나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의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문장을 만났다. 처음 접한 순간 강하게 나를 흔들더니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상에서 여진이 되어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 속을 살아간다.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세계를 걷고 있다.(p32)’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어머님 생각이 났다. 당신과 나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관계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생각이 있을까. 서로 다른 세계라니! 손으로 밥을 먹는 나라에서 숟가락을 안 쓴다고 뭐라고 할 것이 아니며, 우리나라에서 왜 포크로 밥을 안 먹느냐며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습다. 각 나라의 식생활에 맞는 적절한 문화가 있으니까. 다른 세계에 계신 당신을 내게로 끌어와 왜 그리 하실까 여긴다는 건 억지스러운 생각이었다.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던 건 당연했다.

 

방앗간 이야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 이야기, 4층 사시는 할머니 이야기, 정년퇴직한 그 집의 할아버지 이야기, 말을 잘 옮기시는 경로당 할머니 이야기, 큰 길 건너 토마토 장수 이야기, 아파트 수요 장터의 견과류 파는 아주머니 이야기, 마트 계산대의 친절한 아주머니 이야기. 어머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요즘 들어 자주 말씀하신다. 덕분에 나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일상과 성격과 에피소드까지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p99)’ 한 때 나는 과거에 살았다. 무채색으로 기억되는 30대에는 예전에 좋았던 시절을 자주 회상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와 암담하게 재단하며 아득한 미래를 살기도 했다.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p85)’ 어머님은 늘 현재의 풍경을 말씀하신다. 들판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은근히 미소가 지어진다. 관계가 부드러워지니 나도 당신의 따라쟁이가 된다. 무거운 과거를 내려놓고, 미래도 굳이 가져오지 않고 현재만 생각하니까 너무도 가뿐한 것이. 지금 이 순간이 편하고 행복하다.

옷 살 돈으로 책 산다며 지금 입고 있는 옷을 구멍 날 때까지 입기로 생각하니까 언니가 가끔 예쁜 옷을 물려주는 선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늘 직진만 하며 걷던 삶의 방식이 점차 바뀌어갔다.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많이 둘러보게 되었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p84)’ 이 문장을 보니 힘이 났다.

 

예전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점점 연세 드신다는 사실이 진하게 다가온다. 짠 하는 마음과 함께. 나와는 딱 30년 차이, 올해 그냥 나이로 여든 되신다. 나이 들어 너무 오래 살면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그러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아직 못 들은 이야기도 많은데, 그 많은 음식에 깃든 노하우도 전수받지 못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멀미를 하듯 울렁거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서였을까.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한다.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p34)’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p241)’ 나와 다르다 하여 틀리다 여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당신과 공유한 시간 속에서 나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음식을 먹어왔던 거다. 어머님의 세계는 완벽한 핸드메이드 월드였다.

아담한 초가집. 방금 비질을 한 너른 마당이 있고 온돌방 이불 속에는 메주가 띄워져 있는, 볕 좋은 마당 한편에는 장닭 몇 마리가 바닥을 콕콕 찍고, 빨랫줄에 널린 광목천이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마당 중앙에는 빠알간 고추가 한 층으로 펼쳐져 있는. 당신 안에 펼쳐진 세계는 이런 이미지일까. 인공의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MSG적인 풍경 하나 없이 담백한 두부 맛이 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