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의 기술 -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유연한 일상
김하나 지음 / 시공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간절히 바랬다. 제발 어디라도 아프게 해주소서! 남들은 부러워했건만 물을 무서워하는 내게는 한마디로 재앙이던 체육 수업. 이노무 몸은 어찌나 튼튼하던지. 그렇다고 꾀병을 부릴만한 배짱은 없던 중1의 소심한 소원이었다. 재미로 발만 담그는 물장구가 아니라 여기서 저기까지 무려 헤엄쳐가는 실기시험이라니! 망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망했다. 점수고 나발이고 당최 숨도 쉴 수 없는 공간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느낀 심리적 거리감은 거의 1000m 왕복 수준이었다. 학창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험 거부를 해봤다. 앞에서 붙들어준다는 절친의 설득으로 1m 가량 허우적거리는 액션으로 끝이 났지만. “힘을 빼!” 그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다니던 중학교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건물이지만 럭셔리하지는 않았다. 푸세식 화장실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대는 복도. 수영장과 어울리지 않던 구색의 비밀은 운동부에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마다 있던 운동부 종목이 수영이었던 거다.

힘을 빼는 데에 기술씩이나? 책 제목 참 희한하다. 잠시 곱씹어본다. 아하!  ‘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빠지는 것이 아니라 힘빼는 거로구나. 그게 참 어렵다는 것은 진작 경험했던 일이다.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내맡긴 채 나아가는 것. 딛고 선 땅이 없어도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믿는 것.(p10)’ 프롤로그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을 발견한다. 내가 끝내 수영을 배우지 못했던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하고 힘을 빼지 못해서였다.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바삭거리면서도 부드러운. 책에서 아이스크림 튀김 맛이 났다. 한없이 가벼운가 싶다가도 해양심층수의 느낌이 났고, 웃음 뒤에 뭉클함이 스며들었다. 추운 곳을 여행하는 이야기에서 열정이 뿜어내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마음은 점점 따뜻해지고 말랑말랑해졌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p45)’ 인건가. 작가의 문체가 주는 매력에, 삶으로 뛰어드는 과감한 용기에, 주변을 돌아보는 열린 마음에 빠져들었다.

모두에게 좋은 책은 없다.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나쁜 책도 없다. 다만 나와 맞거나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내 정서 코드와 가까운 책을 만났다. ‘독서는 대화(p57)’ 라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는 동안 얼굴조차 모르는 작가와 대화라도 한 듯 친숙함을 느꼈다.

광고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카피를 좋아한다. 30초의 작은 프레임 안에 메시지를 담아야하는 스피디함과 촌철살인의 전달력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가 지닌 매력과도 통한다. ‘세월은 강물을 따라 흐르고 사람은 그리움을 따라 깊어간다.’ 였던가. 커피의 카피였는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이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였을 거다. 카피라이터인 작가의 글에 더욱 호감이 느껴진 것은.

 

Part 1 <가까이에서>는 가족, 친구, 고양이 등 작가 주변의 이야기가, Part 2 <먼 곳에서>는 반년 동안 남미를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리창 안에서 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듯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다가도 자연스럽게 비친 내 모습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나무를 보면서 나를 보고,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삶과 내가 바라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여행지를 소개한 글도 아니고 작가의 경험담일 뿐인데도 그 어떤 여행서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자연에 대해서도, 여행지에서 만날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작가와는 또 다를, 나에게 전해질 미지의 느낌이 궁금했다.

 

나란 인간의 진짜 크기(p28)’ 라는 말에 꽂혀 며칠 동안은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렸다. 간혹 아이들의 말이 마음의 평정심을 깨뜨리며 훅 들어올 때,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소심하게 허락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이 말을 내뱉으며 적절한 허용 선을 찾았다. 마음이 조금씩 커지는 듯했다.

돌아보면 순간순간 그랬다. ‘인생은 언제나 기회비용과 선택의 문제(p129)’ 였다.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중이 큰 것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런 선택의 결과들이 적분처럼 모여 내 삶의 방향을 정했다.

선택의 순간은 대부분 사소한 차이로 결정된다. 4951의 근소함이 부지기수이다. 선택되지 못한 49를 떨쳐내지 못해 헛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니 그 시간들이 마냥 쓸데없지만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깨달음이 나를 더 단단하고 선명하게 만들었으니. 어릴 때 큰 삼촌이 붙여주셨던 별명이 흐리멍텅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과감하게 결단도 내리고, 미련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짧아졌으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어른>에서 김미경 강사는 실패한 경험이 갖는 강력한 에너지를 말한다. 실패는 몇 % 모자란 성공이라고. 실패가 쌓이다보면 결국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도 역시 그런 경험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p32)’ 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1학년 수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회의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 축제날 오전에 이루어질 학급별 부스를 준비하기 위한 협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적정선이 보였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대로 지켜보았다. ‘자신이 선택한 경험, 실패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아이들은 결국 그들에게 맞는 결론을 내렸다. 한 시간 내내 수업을 하지 못했지만, 의견이 조율되는 시간들이 뭉클했다. 교과서 지식보다 더 값진 경험이 그들에게 쌓이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마음의 테두리를 넓히고 조용히 지켜보는 과정이 새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면 나 역시 실패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나의 조급함과 내 삶의 잣대로 실패할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잠시 멈췄다. ‘인간의 몸이란 어떤 감각을 그리워하는구나 싶었습니다.(p230)’ 란 문장 앞에서였다. 나는 어떤 감각을 그리워하는 걸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피부감각. 지금은 인간이 지닌 오감 중 온각이 가장 그립다. 나의 온도와 거의 같은 또 다른 36.5. 열은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이동한다. 이론상으로 열이 이동은 거의 없지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가 그립다. , 잠시 감성적인 인간 모드로! 추울 때 쓴 글이 확실히 절절하지만 나란히 잡은 손을 통해 이어지는 온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따뜻함의 순환이란 말은 생각할수록 좋았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야 따뜻함의 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p39)’ 물질의 순환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자연의 규칙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결이 생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미는 손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폭신해졌다.

 

관점과 태도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에 나오는 뇌의 합리화 과정을 연상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내 태도가 달라지니까 관점이 변해간다.(p186)’ 는 말에 공감했다. 관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지만 역과정도 성립할 수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점이 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장 인상 깊던 문장은 사진을 찍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것은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수전 손택, p195)’ 란 문장이다. ‘뭔가를 배제한다는 부분에 확 꽂혔다. 관점과 가치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삶에서의 많은 활동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림을 그리거나, 뉴스 기사를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에도. 불필요한 부분을 세심하게 깎아내야 하는 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문장이 담고 있는 깊은 사유에 전율이 일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인간은 무중력 상태로 떠다닐 수 있다. 이때의 무중력은 ‘zero gravity’ 가 아니라 ‘gravity free’ 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없는 게 아니라 균형이 맞는 상황인 것이다.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겉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무중력 상태를 떠올린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는 힘을 뺌으로써 얻어지는 자유와 그 안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무리하게 힘주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때론 과감하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며 나를 넓히고 싶다. ‘나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조직할 수 있다.(p207)’ 는 문장처럼,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내 삶의 주인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