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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온종일 낀 렌즈로 뻑뻑해진 눈과 같은 관계. 당신과의 만남은 늘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다. 1995년, 사랑하는 사람과의 새로운 시작은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또 다른 관계의 출발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끓인 김치찌개의 맛처럼 같은 공간에 섞여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만남. 어머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자주 그런 맛이 났다. 드러나지 않는 묵직한 갈등은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씁쓸함이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사색이란 말이 감옥이 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쳤다.
존재 자체가 미움이 되는 비좁은 감옥의 여름을 묘사한 문장 중 앞부분의 문구가 선명하게 남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씀이다.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연탄 들여놓을 걱정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아왔던 터라, ‘맞아, 맞아!’하며 공감했다. 여름은 그냥 벗고 물 끼얹어가며 견디면 되지만 없는 형편에 겨울은 난방을 위한 돈이 필요해 더욱 시린 계절이었다.
20년 20일의 수감 기간은 20세를 갓 넘은 나에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세월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마음조차 초라해지는 무게감으로 스러졌다. 20대에 걸 맞는 몇몇 문장만이 어설프게 흡수되었다.
18년이 흘러 책과 함께하는 삶이 시작될 즈음,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만났다.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으나 이과를 전공한 입장에서 인문학 책의 존재는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산이었다.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과 저자가 그리는 세상이 너무 컸다. 꾸역꾸역 읽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읽기는 읽었지만 마음에 남은 내용은 거의 없었다. 좋았다는 느낌만 희미하게 남았다.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은 그 다음 해에 나온 『처음처럼』이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글씨와 그림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투박하고 힘찬 글씨와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지나간 후에 돌아보게 되는 향기처럼 깊었다. 2016년, 개정판으로 나온 노란 겉표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카카오 톡 배경사진으로 올렸다. 네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좋아서 볼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고 있지만, 글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참 좋았다.
다시 11년을 지나 『담론』을 마주했다. 표지를 넘기는 데에만 몇 분이 걸렸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하얀 글씨가 먹먹해서였다. 한지 느낌의 소박한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힘차게 뻗어나간 검은 색의 한자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앞표지를 넘겨 저자의 소개를 읽다가 ‘~재직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뭉클했다. 손에서 놓쳐버린 물건이라도 본 양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벌써 1년도 넘었구나. 이제야 겨우 당신의 책을 집어들만 한 수준이 되었건만 더 이상 다른 책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한참을 머물었다.
이제껏 읽었던 저자의 책을 모아서 보는 듯했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을 읽으며 『강의』를 떠올렸다.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 나온 감옥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연상시켰다. 강의하신 내용을 모은 글이라 책 속의 당신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경청하는 마음으로 2주일동안 천천히 읽었다. 읽은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30년의 시간에는 30년만큼의 기쁨과 상처가 존재한다. 스무 살 이후로 내 삶의 중간 중간에 쉼표처럼 들어오던 당신의 글은 내 기쁨과 상처와 어우러지며 세상과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게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10여 년 동안 천 권 넘게 책을 샀다. 구입한 수의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아직도 멀었지만, 이 책은 깊이 우러난 곰국의 맛처럼 깊었다. 갈수록 넓어지는 사유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1부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가, 법가, 춘추전국시대의 담론 등이 이어졌다. 고전 사상의 핵심을 요약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논어』에서도 『맹자』에서도 어머님 생각이 책갈피처럼 행간에 끼워졌다. 당황스러웠다. 난해한 수학 문제처럼 항상 어려웠던 관계. 강의의 중심 개념이 ‘관계’이다보니 자연스레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생각날 수밖에 없던 걸까. 아픈 손가락으로 마음이 모아지듯이 가장 삐걱거리던 당신과의 관계를 읽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내 딸 둘을 헌신적으로 돌봐주셨다. 지켜보는 나는 아이들을 위하시는 마음이 과하게 느껴져 종종 버거워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한 당신은 너무나 고마운 분이셨다. 다만 당신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었다. 투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을. 불편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최소한의 도리만 하며 당신과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껄끄러운 관계의 어색함을 당신 탓으로만 돌리던 매정한 며느리였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가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발까지의 여행이라는 문장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간다는 내용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한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달아오른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껏 헛공부를 해왔구나. 감춰왔던 위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나를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텍스트를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책을 읽는 것은 필자를 읽는 것이고, 결국 자신을 읽는 것이라는 문장이 강하게 새겨졌다. 조그마한 갈치 가시를 삼켜 다른 음식을 넘길 때마다 따끔하게 느껴지는 목 안의 감각처럼 결혼이후 시시때때로 마음에 걸리던 당신이 서서히 떠올랐다.
2부도 가시방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 ‘한 발 걸음’이 정곡을 찔렀다.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한 발조차 움직이려하지 않던 나였다. 관계의 시작은 가정이다.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조차 편안하지 못하다면 그 어떤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을까.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라는 문장에서 주춤했다. 어머님께 나는 ‘머리’만 있는 며느리였을까.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셨던 당신. 중학생이 된 막내가 아파트 옆 라인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기를 귀찮아하자 빨간 법랑냄비에 국이나 반찬을 담아 매일 저녁 우리 집까지 날라 오셨다. 직장일로 종종 퇴근이 늦는 며느리를 대신해 끼니를 챙겨주시던 고마움이 그 때는 왜 그리 부담스러웠는지.
올해,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왔다. 시댁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한 곳이라 물리적인 거리감은 멀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거리감은 그보다 더 컸다. 처음에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지만 그 기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두어 달쯤 지나자 무언가를 두고 온 듯 마음이 다시 껄끄러웠다. 분명 당신 탓은 아닌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몰랐다.
처음 한두 달 정도는 퇴근길에 들러서 먹을 것을 가져가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하셨다. 살짝 귀찮은 마음을 안고 들렀더니 저녁 먹고 가라며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목이 살짝 메었다.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서 돌아오는 길이 혼란스러웠다.
인간만큼 간사한 존재가 또 있을까. 감동스럽고 감사하던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용수철의 탄성처럼 원래의 건조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팽팽하던 용수철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느슨해지고 있었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진하게 느껴지던 어색함은 점점 옅어졌다.
경계에 있는 사소함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때로 어떤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1℃의 차이라 해도 99℃의 물과 100℃의 물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존재한다. 상태의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물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수증기로 날아가 버린다.
이 책이 어머님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몰랐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강의 이후’를 시작하라는 문장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들썩이게 한 걸까. 물처럼 스며들던 427쪽의 문장들이 어머님의 사랑과 어우러져 모르는 사이 마음을 가득 메웠던 것일까.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나를 위해 해놓으신 찰밥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서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오늘 어머님 댁에 들렀다 나오면서 이제는 당신과의 관계에 ‘두 발 걸음’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혼 초, 한 아름 주신 조기를 손질하면서 난생 처음 생선을 다듬어본 며느리가 생선 눈깔이 무서워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조만간 웃는 당신과 나누게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수감 기간 동안 신영복 선생님이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감옥의 창을 통해 들어오던 ‘햇볕’때문이라고 했다. ‘햇볕’이라는 낱말을 보는 순간 아까 보았던 어머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잘 먹을게요, 어머님. 도착하면 전화 드릴게요. 얼른 들어가세요.” 자연스러워진 내말에 활짝 피어나던 당신의 얼굴. 아름답고 참 고왔다. 며느리의 무정함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넓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눈부신 웃음을 보는 순간 코끝 찡한 마음이 굴러다니며 실타래처럼 뭉쳐졌다. 물건을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뒷좌석이 햇볕을 받은 듯 내내 따뜻했다. 당신의 환한 얼굴이 몇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언저리를 맴돈다. 호박고구마 한 상자와 뜨끈한 찰밥과 엄청난 양의 곰국이 한 가득 담긴 커다란 통에 묻어있는 햇볕을 만졌다. 눈이 시큰해졌다.
신영복 선생님이 좋아하는 글귀라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를 소개하신다. 22년 동안 불안하게 이어지던 어머님과의 관계. 당신과의 만남이 이제야 꽃으로 피어나려는 걸까. 눈에 고인 맑은 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2017.10. H독후감 공모,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