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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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한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내 안에 숨어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말을 건다. 강조하려는 글씨에 밑줄을 긋거나 음영을 드리우는 것처럼, 이봐! 여기야! 라는 표식을 남긴다. 빨간 반점으로 나타나기도, 열을 내기도, 콕콕 찌르기도 한다. 며칠 물 안 준 화분의 흙처럼 쩍쩍 갈라지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반드시 찾으리라 결심하고 한참을 바라보면 아뿔싸!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잊을 만하면 불쑥 불쑥 나타나서 말을 건다. 여간 치밀한 녀석이 아니다. 존재감은 확실한데, 도무지 거주지가 분명치 않다. 지금부터 이 녀석을 공개수배 한다!

 

난감할 때도 있다. 보기 싫은 인간이 내 앞을 지날 때 특히 그렇다. 반가운 표정을 장착하고 어머! 반가워요!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라 가식적인 멘트를 날릴 때마다 이 녀석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내 얼굴 근육을 어찌나 미세하게 조절하는지.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한지. 내뱉는 언어와는 상반된 표정과 시선과 눈빛을 재빠르게 드러낸다. 사회생활이라곤 도무지 모르는 융통성 제로인 녀석이다. 이 녀석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걸은 적도 있다. 말이 포장하고 있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녀석이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참을성도 없다. 코가 간질간질하면 끝내 수많은 침방울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표시를 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행동 모사의 달인이다. 반쯤 눈이 감긴 옆 사람이 하는 행동은 잘 따라하며 그 옆 사람에게 전염시킨다. 덤으로 꺽 소리를 내뱉을 때에는 심히 민망하다.

기억력도 좋다. 고소한 빵이나 테두리 세 겹 정도 둘러준 피자, 특히 찬란하게 회오리치는 우유와 얼음의 콜라보레이션에 최적화되었다. 실물 그대로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입안을 옹달샘으로 만든다.

 

얼마 전에는 이 녀석이 이제껏 나타난 적이 없는 장소에 출몰하여 일주일 넘게 머문 적이 있다.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사막 같은 곳이었는데 온종일 꼼짝 않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중지된 채 비상이 걸린 사건이었다. 중요한 곳이었구나, 한가운데 있었는데 보지 않고 지나치던 곳이었구나, 그동안 정말로 소홀 했구나 반성했다. 누워서 안방 창문 아래 놓인 하늘을 바라보며 바쁘게 달려왔던 일상을 돌아보았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느닷없이 느려진 삶의 시계는 관성인 듯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잠시 붙들었다. 이 녀석이 내게 준 것은 느린 시간이었다. 압축되어서 보이지 않던 장면들을 펼쳐보게 하려고 그곳에 머물렀다 싶었다.

 

네이버캐스트의 다큐사이언스 코너에는 <숫자에 담긴 일생>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다. 사람이 일생동안 배설하는 배설물의 무게와 먹는 양과 손톱이나 머리카락, 수염의 길이 등을 수치화한 영상을 담았다. 수업 시간에 보여줄 때마다 매번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진흙으로 추정되는 배설물 모형이 하늘에서 질척하게 쏟아지는 장면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이만큼이나 싼대요, 뭐 이런 식이다. 50여 톤 입으로 들어가고 3톤이 조금 안 되는 양을 배설한다니 참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가장 오래 사는 세포들은 뇌 안에 있는데 이 세포들이 우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라니. 곱씹을수록 철학적이면서도 신비한 느낌이다. 기억은 세포에서 어떤 형태로 있을까. 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세포는 혈액에 의해 운반된 산소와 영양소를 결합시켜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활동한다. 대뇌의 해마에서 기억을 담당한다는 사실도 알지만 가끔 과학 이론을 떠나서 상상해보면 신기한 현상들이 많다.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이 세포의 어느 부분에 심어져 있는 걸까. 기억이 없어지는 건 그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인식의 영역으로 단지 전달만 안 되는 상태일까. 일반인은 일생동안 뇌의 10%도 사용 못한다던데, 기억의 영역에서 버려진 기억들은 혹시 사용되지 못한 90%의 곳곳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김중혁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엉덩이에 뿔이 난 송아지가 된다. 문장 곳곳에 볶은 소금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에 낄낄거리다가도, 후텁지근한 바람처럼 한순간 훅 끼얹어지는 가슴 뭉클한 느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책 제목Body Moving은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중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단어이다. ‘몸의 움직임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영화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니 ‘movie’라는 단어가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해석을 하자면 ‘moving’이 지닌 또 다른 의미,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이란 뜻도 얹고 싶다. 가만히 생각하면 찡해지는 존재이니. 몸과 마음이 합체가 되어야 완벽한 인간이 된다. 예전의 내게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는데, 몸도 마음 못지않게 중요한 대상임을 나이 들어갈수록 느낀다. 작가 말대로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은 바로 몸이므로.

 

어딘가 아프다는 것은 몸이 말을 거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 좀 봐달라고, 가끔은 쉬어가라고. 종종 말을 걸어주는 몸 덕분에 자만하지 않고 살아간다.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 때문에 겉과 속이 같은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 몸이 거는 말은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다보면 몸이 거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요즘에는 왼쪽 허벅지가 말을 건다. 더 뻣뻣해지기 전에 요가라도 하라고. 살짝 허물이 벗겨지는 왼쪽 발가락들이 말을 건다. 피곤하다고 그냥 자지 말고 제발 퇴근하면 발 좀 닦으라고요! 다른 사람은 매일 씻나 궁금하지만 결코 묻지 않는다. 이 말은 곧, ‘나는 매일 안 씻는다.’는 말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침침해지는 눈이 말을 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드러나지 않는 풍경을 보라 한다.

내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는 몸이 갈수록 수다스러워진다. 허리가 아팠던 이후로 자주 뭉클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몸을 대한다. 드디어 찾았다!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존재를 표현하던 녀석을. 이 녀석을 오랫동안 아끼며 내게 거는 말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 2017.10. S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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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11-04 13: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지간히 많이도 먹습니다. 그게 다 에너지로 소모되어야 하는데 살로 가니^^;;
맞습니다. 아프지 않게 사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주변을 보면서 많이 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