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고 꽃은 피네 -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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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맑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가끔 눈물이 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다 지나간다. 적당히 갈라진 햇빛의 가느다란 살은 강아지풀처럼 눈썹을 스친다. 언뜻 흘러드는 초록 내음은 한 입 머금은 솔잎차인 듯 향긋하다. 치열하게 붙들고 놓지 못하는 욕심과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라 한다. , , , 나를 둘러싼 세상이 부드러운 촉수로 마음을 건드린다.

그냥 눈물이 났다. 앞표지의 연꽃봉오리가 뒤표지에서는 서서히 벌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한다. 슬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마음을 묶고 있던 끈이 사르르 풀린다. 시간의 힘에 기대어 스스로를 잘 토닥이며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 조금은 힘이 들었나보다.

 

읽을수록 지식이 쌓이는 책이 있는가하면 비우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304페이지의 책장을 넘기면서 304번 마음을 비웠다. 진공청소기로 휘리릭 청소하는 것과는 다른, 오래된 빗자루로 마음 구석구석을 정갈하게 청소하는 느낌이다.

차례를 본 순간,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본래 마음, 내려놓음, 무문관, 좌선, 스승, 도량, 발심, 묵언, , 자비, 비움, 수행, 무심, 공양, 공동체, 선업, 무아, 도반, 대의단, 깨어있기, 공생, , 무상, 깨달음, 초심. 25개로 이루어진 소제목은 화두가 되어 마음에 점을 찍는다.

 

이승우 작가의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가 생각난다.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가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관련된 이야기로 삶을 풀었다면, 이 책은 한자 구절을 제시하고 불교적 관점에서 삶을 말한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도 결국은 하나로 모아진다. 어느 것이 더 낫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기 매력적인 책들이다.

 

책 제목처럼 내용이 물 흐르듯이 마음으로 흘러든다.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를(p3, 270)’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종이의 원료가 된 나무들에게 미안(p7)’해할 수 있는 걸까. 무심코 지나치다 다시 되짚으며 그 의미를 되새겼을 때, 철렁했던 문장이다. 이제껏 읽어온 어떤 작가의 글에도 이런 관점을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물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용되었을 수많은 재료와 정성을 떠올린다. 어떤 물건이든 더욱 소중하게 다루고 아껴야함을 깨닫는다. 밥을 먹을 때도 생각난다. 한 톨의 쌀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 깃든 바람, , 햇살, , 농부의 손길을 상상한다.

사람마다 발 아래 맑은 바람 불고 있네.(p16)’라는 문장을 읽으니 어쩐지 내 운동화 아래에서도 맑은 바람이 한 줄기 흘러드는 것 같다.

손 모양과 마음의 상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p24)’고 한다. 합장하듯 두 손을 모아보고, 따뜻해진 두 손으로 스스로를 감싸본다.

깨끗하고 단정한 공간에 맑은 기운이 깃든다.(p67)’는 말씀이 마음에 흘러드니 곧바로 몸이 움직여진다. 한동안 미뤄왔던 불필요한 서류더미를 파쇄 한다. 얹힌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하다.

향은 불에 타고 차는 끓는 물에서 우러나옵니다.(p253)’는 글 앞에서는 스스로를 태워야 빛과 열을 낼 수 있는 별을 생각한다. 향기로운, 서서히 우러나는 차와 같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은 아픈 곳에 있다.(p153)’. 이 짧은 문장에서 오래 머무른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내 마음이 거기로 가 있는 것이구나.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 지 알 것 같다.

자연은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교과서이다. ‘지난해 가을의 열매를 생각하지 않는(p280)’나무,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행복한 시간(p10)’이 되는 봄 앞에 내 삶을 비추어본다.

문장을 따라 흐르다보니 마음에 소박한 꽃이 핀다.

 

참사람의 향기는 금강 스님이 계신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2005년부터 진행되어온 일반인 대상 참선 수행 프로그램이다. 1회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올해로 100회를 맞이했다고 들었다. 78일 동안 묵언하면서 수행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말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가끔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온다.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 말 수를 줄여본다. 말을 덜 하니 사람들의 말이 더 잘 들린다. 다른 감각이 깨어나 이제껏 말들에 가려 무심코 지나치던 새로움이 보인다. ‘참사람의 향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후기가 자꾸 나를 유혹한다. 버킷리스트 하나가 추가된다.

마음도 쉬어야 한다. (중략) 우리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이 순간을 보는 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다.(p282)’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쉰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이 순간의 나를 본다. 한결 가벼워진 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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