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 창비아동문고 287
진형민 지음, 주성희 그림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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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주인공이 어린이이고, 아이들의 용어로 쓰였다는 점만 빼고는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성인 소설 못지않게 묵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투명한 문장 앞에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진형민의 동화는 언제나 개운하다. <기호 3번 안석뽕>을 시작으로 <꼴뚜기>,<소리 질러, 운동장>등 이제껏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일부러 이름을 검색해서 책을 찾는 몇 안 되는 저자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세 친구가 돈을 벌기위해 세상에 뛰어들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동화이다. 시종일관 유쾌함이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취향을 저격하는 문체이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우면서 직선적이다. 가벼운 촌철살인이랄까.

 

하루 종일 마늘을 깐 대가로 만 원을 받는 초원이의 할머니, 순진한 초등학생을 속인 대가로 이득을 챙기려는 전단지 사장, 먹이사슬을 연상케 하는 삥 뜯는 언니들, 돈 많은 부모님을 만나 영어 단어 한 개를 외우는데 200원을 받는 반장.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삶을 통해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어른의 모습이 부끄럽다. 초등학생인 줄 뻔히 알면서 일을 시키는 전단지 사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택배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떠오른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시급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청년들이, 백화점 입구에서 흰 장갑을 끼고 교통정리를 하는 청춘들이 생각난다. 그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알바천국이 되는 적나라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대학교 1학년 때, 과외를 하여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졸업 때까지 과외를 했다. 3학년의 어느 주말에는 세 탕을 뛴 적도 있다. 20세 이후 주말마다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주말이 싫었다. 내게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라 일을 하는 날이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식당 서빙을 하던 어머니 앞에서 힘들어하는 마음은 차라리 사치였지만, 힘든 건 힘든 거였다.

몸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마음이었다. 지겹도록 공부했던 영어나 수학을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 아이들에 속이 터졌던, 돈 많은 부모를 만난 그들이 부러워질 때마다 가라앉던 그 마음들이. 그 때 생각이 나면 가끔 울컥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일한 시간 대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월급날 즈음만 잠시 통장에 머물다 가는 숫자들을 볼 때마다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분명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가끔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들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일 때면 다른 일로 돈을 벌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6살 위의 직장 동료는 이 나이에 어디서 이만큼 돈을 버냐 하신다. 지금 그만 두면 어디 써주는 데도 없다며 힘닿는 데까지 다니라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신다.

2017년의 최저시급 6,470원을 생각하면 내가 하는 푸념은 너무나 배부른 소리임을 안다. 어쩌면 저쪽에서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채로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알바생은 그보다 훨씬 적게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낮 동안에는 수시로 열 받는 순간들이 난무하지만,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도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고 했으니. 퇴근 후에라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한편으로 다행인건 맞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 계속 재미있게, 거짓말하지 않고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오래오래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을 텐데.(p148~149)’라는 문장을 읽다 보니 꿈을 꾸고 싶은 거다. 생계형 맞벌이라 돈을 벌지 않으면 가정 경제가 무너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은, 글로 돈을 벌고 싶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글만 써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글짓기대회에서 1만원의 문화상품권을 받고 벅찼던 기쁨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는 꿈을.

욕심이 생겨서 문제인데, 이런 마음이 욕심이 아닌 것이 되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욕심이 또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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