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왕 아모세 -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285
유현산 지음, 조승연 그림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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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마지막으로 무언가 상상을 해본 것은. ‘만약에 내가 무엇이라면?’이라든지,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든지. 초등학교 때에는 종종 상상하기를 좋아했건만. 동화 소공녀는 어린 나의 가슴을 늘 뛰게 했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느껴지던 그 짜릿함이란!

도둑왕 아모세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언젠가부터 닫혀버린 상상력의 방문을 슬그머니 두드렸다.

 

책이나 영화를 접할 때 거부감을 느끼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역사, 추리, 피 질질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것들의 종합선물세트 같던 책. 솔직히 은빛 사과 스티커 하나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발동하였기에.

 

역사를 안 좋아했던 탓에 관련 지식도 얄팍하다. 외울 것도 많은데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연도별로 나열하다보면 머릿속에선 쓰나미가 지나간다. 낯선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생소한 용어와 생활 방식에 대한 묘사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던 앞부분은 1차 갈등을 일으킨다. 계속 읽어, 말어?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책장을 펼쳐야하는 대하소설보다는 낫겠다싶었다.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그나마 들어는 보았던 파피루스, 스핑크스등의 용어들이 등장한 것이 다행이랄까. 중국어가 간판 속 무늬처럼 보이던 중국 난징에서 친숙한 햄버거 로고를 발견했던 순간,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과 겹쳐졌다.

 

읽어 보았던 몇 안 되는 추리 소설들은 하나같이 음산했다. 이야기가 추리 쪽으로 흘러간다 싶을 때 2차 갈등이 일었다. 주춤거리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으흠? 은근히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거다. 도무지 결말이 상상되지 않았기에 조용히 숨을 죽이며 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추리 소설이 주는 반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피 질질까지는 아니었지만, 투탕카멘의 무덤과 미라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3차 갈등이 생겼다. 자고로미라라 하면, 군데군데 풀린 누리끼리한 붕대에 강시처럼 두 팔 내밀고 눈까지 덮인 헝겊 사이로 시뻘건 레이저 눈빛 쏘아대며 요리조리 사람들을 잘도 쫓아다니는 공포어린 존재 아닌가. 무덤이 연상케 하는 퀴퀴하고도 음산한 기운에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무덤 안에는 아직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까도 까도 계속 까야하는 양파왕, 투탕카멘. 여러 겹으로 된 관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장면에서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듯 은근히 긴장감이 생겼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서사와 수학의 결합이었다. 눈알 그림 하나에 담긴 수학적인 의미는 매우 치밀하여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오롯이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을 끌어가는 힘이 상당하다.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사실적인 문체로 이어져 깔끔한 느낌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 느낌을 주는 그림도 독특하고 마음에 든다.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는 종종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메시지가 보석처럼 발견되기 때문이다. 용기 있게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헤쳐 나가며 도전하는 주인공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

이색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집트라는 공간적 배경,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이라는 생경한 시간적 배경에 덧입혀진 신비로운 이야기. 갑자기 상상하고 싶어졌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가는 꿈을 꿀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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