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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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같기도 하고, 풍선 같기도 한 파스텔 톤의 색깔이 예뻤다. 책 표지를 보고 내용을 상상해 보았을 때, 동화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았다. 책 표지를 유심히 잘 살펴보는 편이다. 표지의 그림이 내용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을 읽고 다시 표지를 바라본다. 이번에도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표지의 색에 끌려 드러난 핵심 내용을 미처 보지 못했을 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풍선 사이에 끼어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질식할 것처럼 갑갑해 보인다. 동영상 촬영 중인데 배터리는 이제 한 칸 밖에 남지 않았다. 책 안에 담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삶은 계속 흘러가는데, 그 삶을 감당할 에너지는 거의 바닥이 난 사람처럼.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이다.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향하고 있는 주제는 일과 삶이다.

등장인물들이 하고 있는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 인터넷 방송 진행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통신 회사 상담원, 치킨 배달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 광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 등이다.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절반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차라리 이것이 주류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삶은 위태위태하고 암울하다. 구질구질하고 앞으로 연장한다고 해도 희망조차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막막한 기분을 자아낸다. 살아야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더 많은 전 재산 50만원을 가진 자살시도자, 교황이 방문한 광장에서 눈에 띄지 않게 소외되는 사람들, 공중에 매달린 채 삶을 외치며 투쟁하는 사람들,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한국으로 온 베트남인의 삶은 도시의 빛나는 조명 아래 드리워진 배경처럼 어둡기만 하다.

그 중 <아웃포커스>라는 단편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단순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제목이다. 20년간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무더위 속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엄마의 삶은 단편 소설의 제목처럼 <아웃포커스>되어 있다. 그림자처럼 드리워지고, 도려내지고, 외면당하고 있는 삶의 모습에 읽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다.

 

유쾌하지 않은 책을 읽으면 한동안 그 분위기에 빠져 우울해진다.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멘트처럼 로코 로코 멜로 멜로한 이야기, 밝고 유쾌한 내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소설이지만 다큐임이 분명한 삶들이 후텁지근한 더위처럼 마음에 훅 끼얹어져 짜증이 났다. 한숨 끝에 살짝 지겹다는 생각도 하다가 <광장 근처>에 나온 문장을 보고 가슴이 덜컹했다. ‘보고 계속 보고 또 보다 보면 결국엔 보나마나가 되고 나중엔 아예 안 보이게 된다는 건 그가 거기서 지겹도록 봐온 거였다.’(p149) 이런 삶의 장면에 대해 처음보다 무감각해진 나를 돌아보았다. 책을 통해 혹은 현실에서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고, 또 보고 하다 나중에는 외면하는 인간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다 그들이 안 보이게 될까봐 또 두려웠다. 그래도, 우울해져도 이렇게 무거워져도 봐야한다. 계속 보고, 또 보다 보면 아웃포커스 된 누군가의 삶에서 한 귀퉁이의 무게라도 덜어줄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테니까. 보고 또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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