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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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시험에 임박해서 교과서 대신 만화책을 정독했을 지라도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이 책을 보니 알겠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공부를 잘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시험을 조금 잘 보았던 것뿐이라고. 뇌에 잠시 머무르던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증발되는 물처럼 사라졌다. 교과서를 통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한 기억도, 삶의 의미를 찾아본 기억도 없다. 16년의 공부가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공부와 글쓰기를 주제로 저자가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뒤표지 안쪽에는 공부의 정의가 네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1.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2.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3.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4.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이다. 작가는 공부,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p17)’이라 말한다.

 

공부했던 경험이 그렇게도 없나. 한참을 생각한다. 그러다 스스로 찾아서 했던 세 가지의 공부가 떠오른다.

 

첫째, 우주에 대한 공부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백과사전에서 천체에 대한 부분을 정독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혜성의 꼬리가 생기는 방향, 3개의 고리(당시 백과사전에는 그렇게 나왔다.)로 둘러싸인 토성과 카시니 틈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용어를 알게 되다니! 된장 넣고 쓱쓱 비빈 보리밥을 든든하게 먹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별은 시리우스’였. 우연히 읽은 순정만화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던. 만화영화 캔디테리우스처럼,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발음만 해도 혀끝에서 설레는 남자주인공이었다. 실제로 있는 이름일까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봤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름이었던 거다. 그 후로 시리우스의 팬이 된다. 편지든 크리스마스카드든 직접 작성하는 모든 문구에는 ‘Sirius’라는 글자가 배경으로 포함된다. ‘시리우스는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과도 같았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나 밤하늘을 바라볼 때면 마치 내 별 인양 시리우스를 찾곤 했다.

삼십대 초반, 이번에는 별자리에 필이 꽂힌다. 한동안‘Starry Night’란 별자리 검색 프로그램으로 미친 듯이 성도를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니 실제로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지는 거다. 도시의 불빛은 별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한숨을 유발한다. 그것은 시야를 흐리게 하는 매연과도 같아서 광해로도 불린다. 인적이 드물고 음침한 곳에 갈 여건이 안 되었던 나는, 인적이 없고 음침한 한겨울 새벽, 아파트 옥상에 혼자 올라가는 무모함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무섭고 손 시려서 엄두도 못 낼 일을, 그 때는 뭐가 그리 궁금했던지. 처음으로 겨울철의 다이아몬드(시리우스, 프로키온, 폴룩스, 카펠라, 알데바란, 리겔)를 보고 우와! 생각보다 크구나!’하며 두근거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보던 기억도.

 

둘째, 운명에 대한 공부이다. 이건 사실 공부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얄팍한 깊이지만 스스로 찾아서 했다는 점에서 꼽아본다.

시작은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주역>이다. 집에 있는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펼쳤던 책이다. 뭔 뜻인지 심오한 깊이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64괘를 짚어나간다. 성냥개비를 이용해 이리저리 배치해가면서 문장들을 읽고, 오늘의 운세인양 나름대로 점을 치고 심각하게 해석까지 해보는 같잖은 일을 한다.

운명에 대한 관심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사용설명서>를 읽으면서 사주에 대한 공부로 이어진다.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따져보고, 인터넷의 각종 사이트를 뒤져가면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 수그러들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이다.

 

셋째, 야생화에 대한 공부이다. 디카를 장만하고, 접사 기능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몇 달 동안 퇴근 후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무작정 찍어대다 보니 이름이 궁금해지는 거다. 노란 꽃이라고는 민들레와 호박꽃 밖에 구분하지 못하던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꽃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검색어가 봄 노란 꽃이런 식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모자라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을 구입한다.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긴 드넓은 식물의 세상을 접하고 겸손해진다. 생각보다 많은 야생화가 도시에서도 피어난다는 사실과 작은 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니 공부에 대한 내 작은 기억에는 독서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고, 글쓰기가 공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마음속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독서는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p8)하며,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낄 능력이 없다면, 타인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다’(p43)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건축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p81)며 어휘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장이 인상 깊다. ‘구사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이 생각의 폭과 감정의 깊이를 결정’(p81)하며,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글로 표현할 수 있다’(p81)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From one Sapiens to another’이 의미하는 정체성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저자가 느꼈다는 공감이 궁금하다.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조금 또는 크게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p30)하고 싶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두 권을 담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읽은 시기에 따라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였다. ‘내가 달라지면 같은 텍스트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고,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 해석을 토대로 한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p64)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달라진 내가 책을 읽으면 또 달라진 내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렇게 계속 책을 읽다보면 도미노처럼 생각의 폭이 확장되겠지.

 

강연 내용 뒤에 나온 질의응답 내용에서는 세 개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책 읽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는데,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입니다.’(p103)라고 한 저자의 말이 힘이 된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삶과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삶과의 간극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p124)라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p131)는 말에 동의한다.

 

무중력 공간에 놓인 촛불은 동그란 모양으로 탄다고 한다. ‘공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동일하게 산소가 공급되는 촛불을 상상했다. 어떤 방향에서 무슨 공부를 하든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목적은 같을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니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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