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일까. 정리되지 않았다. 실려 있는 7편의 소설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던져버리고 싶은 느낌과는 또 달랐다. 유쾌한 양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주 극한 상황 속 인물들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각사각 연필 소묘로 묘사된 그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6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누군가의 죽음이 담겨있다. <쇼코의 미소>에서는 암으로 돌아가시는 소유의 할아버지가, <씬짜오, 씬짜오>에서는 엄마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순애 언니가,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는 미진 선배가, <미카엘라>에서는 미카엘라가, <비밀>에서는 손녀 지민이 죽는다. <한지와 영주>에서 죽는 사람들은 없지만, 영원히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면 관계에 있어서는 죽음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죽음이 이 책의 주요 테마는 아니다. 7편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주제는 이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관계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이별의 경계일 뿐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이별이라는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이루어지는 관계는 세밀화를 보듯 자세하게 묘사된다.

 

사랑하던 마음이 변하면 이별을 하지만, 어떤 경우의 이별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일어난다. 계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갑작스런 죽음일 수도, 사회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씬짜오, 씬짜오>의 베트남 전쟁이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인혁당 사건이나, <미카엘라>의 세월호 사건처럼. 혹은 <한지와 영주>의 이별처럼 무엇 때문인지 명확한 원인도 모른 채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p89)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p164)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이 어느 한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흔히 엄마라 불리는 희생자이다. <씬짜오, 씬짜오><미카엘라>의 엄마를 보고 속이 많이 상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가까운 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가 소설 속 상황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답답했다.

 

학창 시절, 1차적인 관계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배웠다. 가장 기본적인 핵가족은 엄마, 아빠, 나로 구성된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 가장 친밀한 관계가 반드시 가족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쇼코의 미소>에서 소유의 할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람은 친손녀 소유가 아니라 일본인 쇼코였다. <씬짜오, 씬짜오>에서도 누구보다 엄마를 인정해주었던 사람은 베트남인 응웬 아줌마였고, <비밀>에서 할머니 말자의 동무가 되어준 사람은 딸이 아니라 손녀인 지민이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해옥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은 먼 친척언니인 순애였고, <미카엘라>에서는 처음 본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친구를 찾아주려 하는 엄마가 있고, <한지와 영주>에서는 영주를 깊이 이해해준 케냐인 한지가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는 선후배 사이인 소은과 미진도 있지만, 러시아인 율랴는 두 사람과 각각 중요한 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매개물은 물건 이상의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남는다. <쇼코의 미소><비밀>에서는 편지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해옥이 순애 언니에게 주었던 가죽지갑이, <씬짜오, 씬짜오>에서 주인공의 엄마가 투이네 가족을 위해 짰던 목도리, 털모자, 털장갑이, <한지와 영주>에서 영주가 썼던 일기가 그렇다. 그러므로 <한지와 영주>에서 영주가 빙하 속에 일기를 묻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묻는 행위가 아니라 한지에 대한 마음을 묻는 이별의 의식이다. 마음이 담겨있는 물건은 곧 그 사람을 상징하니까.

 

마냥 어둡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7편의 먹먹함 뒤로 올라오는 이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작가의 시선 때문이었다.

신영복 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설 속에는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심하게 묘사된 아픔을 담담하게 그릴 수 있던 힘은 그들처럼 기꺼이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려는 작가의 마음에 있었다.

시선이 다시 책에 닿는 순간, 자그마한 구멍이 생긴 물 풍선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마음을 적시는 듯 했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뭉클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