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중학교 인정교과서) - 청소년들의 행복 수업을 위한 첫걸음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문용린.최인철 외) 지음, 문다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Happiness. 영어 필기체를 처음으로 배웠을 때,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살짝 꼬부라지는 지팡이 같은 시작이 좋았고, 두 번씩 들어가는 알파벳 ppss를 발음하며 쓰다보면 풀피리를 불 듯 초록 바람이 입 안에서 맴도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에 찍는 i 위의 동그란 점은 기분에 따라 커다랗게, 앙증맞게, 때로는 빨간 하트 모양의 악센트로 마무리되곤 했다.

 

사춘기 때 가장 좋아하던 시는 유치환의 <행복>이었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란 행이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에도 단골로 등장하던 아이템이었다. 지금도 시가 외워지는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시에 담긴 의미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을 10대에게.

 

13.9. 행복감을 극대화시켜 준다는 온도라고 한다.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나라,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들, 행복한 날씨, 행복감을 가져오게 하는 행동 등 행복의 조건이 쏟아지다 못해 이제는 온도까지 측정하는 세상이다. 심리학적, 사회학적, 과학적인 시각에서 수많은 연구가 쏟아진다. 인터넷 검색창에 행복을 치면 자동 완성되는 첫 문구가 행복주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주제일 것이다.

 

<행복 교과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행복 관련 수업의 교재로 적합해 보인다. 성인을 위한 강좌에 쓰여도 괜찮을 것 같고. 전체적인 짜임은 요소별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야기들, 실험적인 연구 결과, 삶에 적용할 활동, 생각의 확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전개-정리3단계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에 걸 맞는 체계이다.

학창 시절에는 졸다 그어진 연필의 행위예술과 침 세례를 받았지만, ‘교과서야말로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가 듬뿍 담긴 인간계의 바이블이다. 작은 아이의 역사책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도덕책도, 과학책도, 다른 교과서들도 내용에 대한 서술 방식이 매우 체계적이다. 여느 논설문 못지않다.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지나고 나서야 장점이 보이다니.

뼛속까지 교과서인 듯 단원 마무리 형식으로 요점 정리가 되어있다. 차례를 가만히 펼쳐놓고 삶에 적용할 부분을 생각한다. 새삼 특별할 것도 없이 크고 작은 경험으로 깨달은 내용들이지만,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달라지는 <어린 왕자>처럼 신선하다.

 

관점 바꾸기, 감사하기, 비교하지 않기, 목표 세우기, 음미하기, 몰입하기,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나누고 베풀기, 용서하기9가지는 어느 하나이거나 마음에 드는 몇 가지를 택하여도 행복으로 가는 길과 통하는 원리들이다. 이번에는 음미하기몰입하기가 눈에 들어온다.

현재를 충분히 만끽하고 음미하면 주변이 느리게 흘러간다. 하나하나의 맛이, 한 음 한 음이,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호흡 한 호흡이,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볼 때에도 천천히 관찰하게 되고, 뭔가를 느리게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한다. 요즘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몰입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봐야겠다.

행복의 또 다른 원리를 나에게 제시하라 한다면 버리기를 말하고 싶다. 집에 있는 물건 중에는 의외로 쓸데없는 것들이 많다. 이럴 때에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좋다.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 버리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듯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버리기는 물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은 비우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카톡을 시작한 후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도 반드시 답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떨 때에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만 주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안부 카톡 한 번 보냈다가, 반응이 늦어지거나 답변의 내용이 내가 세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카톡을 보낸 후에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훌훌 털어버린다. 곧바로 하던 일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한참 후 상대에게서 카톡이 오면, 작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1인의 임상 실험으로 검증된 원리이다.ㅎㅎ

 

행복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빨간색은 열정적이고, 파란색은 차갑다. 노란색은 밝고 보라색은 신비스럽고 초록색은, 황토색은. 어느 한 가지를 상상해보아도 행복이 주는 이미지로 나타내기에는 다소 강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에는 이 모든 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흰 색이 어울릴까. 모든 빛들이 합쳐져 있지만, 그 빛들을 모두 반사해야 낼 수 있는 빛. 관점에 따라서는 반사를 거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것을 기부로 생각하고 싶다.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빛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건네어준다. 진정한 무소유라는 생각에 흰 색의 물체를 보면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행복해요? 행복해. 어떻게 행복을 확신해요?’드라마 남주인공의 대사가 여운이 되어 남는다. ‘살아있고, 좋아하는 사람 있고, 이렇게 같이 밥 먹고, 이러면 행복이지 뭐, .’

평범하고 당연한 일만큼 평범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 쉬워 보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 편히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은 어쩌면 이미 행복으로 가득한 지도 모른다. 가시광선의 영역을 넘어 존재하기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처럼, 진동수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초음파처럼, 이미 곁에 와 있지만 다만 느끼지 못하는 지도.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 질문해본다. 이렇게 행복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지금, 글을 쓰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 책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지금,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손가락이 있는 지금. 살아있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지금, 나는 행복한가? 그래, 그래,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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