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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경험 - 김형경 독서 성장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5년 7월
평점 :
인간과 침팬지의 DNA 일치율이 97%나 되고, 나머지 3%의 유전자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언젠가 동물원에서 보았던 침팬지를 떠올리며 놀랐던 적이 있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뭐, 침팬지나 오랑우탄이나 인간과 비슷한 유인원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후성 유전학’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찾다 알게 된 또 다른 3%의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을 마주한 듯 묘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염색체는 기다란 실처럼 생긴 DNA 가닥이 알사탕처럼 생긴 단백질들을 칭칭 감고 있는 구조를 가진다. DNA의 특정 부분에는 유전정보물질이 들어있어 자손에게 전달되면 어버이를 닮은 형질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전달된 정보 중 형질이 발현되는 비율이 단지 3%라니! 나머지는 단백질을 꽁꽁 묶은 채로 봉인되어있다나. 그러다 담배를 피우거나 방사선을 쬔다든가 외부 환경의 자극을 받으면 잠자고 있던 유전자가 깨어나 특정 형질을 나타나게 하고, 이것은 다시 유전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이 된다. 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후성 유전학’이다. 타고난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서 설명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후성유전학을 떠올렸다. 만화영화 <포켓몬스터>에서 지우가 던지는 포켓볼처럼 공중으로 던지면 ‘펑’갈라지며 각종 몬스터가 튀어나오듯 97%의 일부가 봉인이 풀려 깨어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팠던 감정이나 슬픈 기억도 봉인된 DNA처럼 마음 깊이 묶여있다 어떤 자극에 의해 풀리는 것이 아닐까.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책 안에 담긴 누군가의 경험은 나의 경험과 공명되어 마음을 묵직하게 흔들었다. 웃음으로 포장하고 깊은 곳에 숨겨왔던 내 아픔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며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면에 웅크린 아이 같은 나를 느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로를 받은 듯 따뜻했다.
분노에 대한 심리학적 정의에 공감이 갔다. ‘분노는 본질적으로 받지 못한 사랑이다. (중략) 분노는 또한 울지 못한 울음이다.’(p254) 언젠가 느꼈던 분노를 생각했다. 분노란 둔탁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슬픔의 다른 얼굴인걸까.
에세이지만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관련 책을 읽은 듯 했다. 지나왔던 행동이나 감정을 많이 생각하였다. 저자의 글은 밑바닥에 숨어있던 나의 이야기를 좀 더 위로 끌어올렸고, 마지막 장을 덮은 나에게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선물해주었다. 「프롤로그」에서 스스로 언급한 재능처럼 저자에게는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리뷰나 시를 쓰고 나면 느껴지던 후련함도 이런 이유에서였나.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다.’(p6)는 말이 맞았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 꼭꼭 숨겨두려 했던 만큼 내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을 찾고도 있었던 거다.
10년 독서 모임 경험의 결과물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7년부터 참여한 독서 모임이 가져다준 의미를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독서 모임 이전에는 다른 이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신이 없었고, 누군가 말을 시킬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눈에 띌 정도로 변화된 모습의 내가 있다.
그것이 모임을 통해 읽었던 책의 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책이 준 영향이 가장 컸겠지만, 또 다른 힘은 바로 그 책과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른 시각을 이해하며 공감했고 때로는 반박도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p53)라는 말처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을 거울삼아 끊임없이 나를 바라봐왔던 거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는 성장한 내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외부를 향한 반응이 한 템포 느려졌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저 사람에게 화나는 내 마음은 무엇이지?’하고 한 번 더 내 안을 들여다보면 속상한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다.
감정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아파트 화단을 지나칠 때마다 노랑과 주황빛이 섞여있는 국화를 본다.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이뻐 드라마처럼 꽃다발을 받는 상상을 한다. 그냥 나에게 선물한다 치고 내가 살까. 만 원어치 정도만 사면 될 텐데. 하지만 꽃집을 가려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을 선물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흠~ 지금은 가을이고, 낙엽은 바닥에 뒹굴고, 집에 있는 사람을 비롯해서 내 친구들은 먹지도 못하는 꽃은 선물 취급도 하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들이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은 나를 가라앉게도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시간들은 ‘자기성찰’의 과정이었다.
오랜만에 송창식의 ‘나의 기타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가사를 음미해보기도 했다.
‘꿈 일기’(p80, 301)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며칠 동안 꿈 내용을 생각하면서 잠시 메모를 해보았다. 저질 기억력의 한계를 깨닫고 바로 접기는 했지만. 꿈을 통해 나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점은 대학교 때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에 대한 기억과 함께 <꿈의 해석>을 떠올렸다.
‘삶의 십진법과 정신 발달 단계’(p207)라는 소제목의 글에는 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무한 공감이 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의 존재가 많은 위안을 주었다.
책 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겨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림 속 사람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호수 속애 웅크려있는 자아를 마주하였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소중하고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용기(courage)라는 단어는 심장(coeur)을 뜻하는 프랑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p173)고 한다. 깊은 곳에 있던 내 이야기가 조금은 위로 올라온 듯하지만, 아직은 꺼내어놓을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심장을 울리는 책을 조금씩 접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가까운 언젠가는, 스스로 봉인을 풀고 담담하게 마음을 꺼내어놓는 날도 오지 않을까.
허남혁의 책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음식이 사람의 몸을 자라게 한다면, 마음은 무엇을 먹으며 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선설이나 성악설처럼 원래 잠재되어 있던 것이 어떤 계기로 드러나는 것 뿐 인걸까.’ 그때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막연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의 경험이 마음으로 들어가 97%의 DNA처럼 봉인되어 있다가, 다시 이야기로 꺼내어놓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음은 성장한다는 것을.
※ 잘 모르겠다^^;
신비적이고 혼돈스러운 정신 역역에 대한 규명 노력은~(p296)
→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관련 지식이 거의 백지 상태라서 ‘역역’이라는 말이 ‘영역’의 단순 오타인지, 아니면 전문 용어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낸 몇 가지 ‘역역’이 있지만 의미를 집어넣으면 해석이 이상해진다. ‘역역’의 정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