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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ㅣ 사계절 1318 문고 98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15년 4월
평점 :
지구 위의 모든 대상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 보이는 중력도 존재한다고 감히 말해보려 한다. 사람을 강력하게 당기는 힘. 그것은 자본이거나, 돈을 매개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극소수의 사람이 될 수도, 약자 위에 군림하는 비열한 영혼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힘. 그 아래에 있는 어떤 이들을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힘없이 쓰러진다.
이 소설집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땅을 딛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없겠냐마는 이들이 절감하는 무게는 상대적으로 너무 크기만 하다.
도망간 어머니와 사기꾼 아버지, 패거리들의 라면 상납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던 소년의 이야기 <가방에>,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은 소녀의 <최후 진술>, 왕따가 겪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 <구토>, 학교 내 무림 서열 1위였던 소년의 추락사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인생의 의미를 말해주는 <표류>, 가정폭력에 방치된 남매 이야기 <붉은 브래지어>, 버마에서 온 이주민 소년의 이야기 <을지로 순환선을 타고> 등 7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간다.
김해원의 글을 접할 때마다 문장이 가진 매력에 푸욱 빠져버린다. 심각한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주제임에도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웃음이 유발된다. 유머러스함은 주제의 무거움을 가볍게 희석시킨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개그맨 고수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그 자신 전혀 웃지 않으면서 담담하고 적나라하게 장면을 묘사하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매번 예상을 여지없이 깨어버리는 주인공들의 반응. 심리 묘사가 감탄스럽다. <열일곱 살의 털>을 읽고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다른 이야기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재의 범위는 사회를 향해 조금 더 확장되어 업그레이드되었다.
‘정말 위험한 건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세상에 부유하고 있는 거지요.’(p143)
스스로 묻는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또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가.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표류죠. 스스로 항로를 개척해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항구에 닿아 닻을 내리는 것!’(p144)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내가 원했던 곳인가, 아님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우연히 정박하게 된 장소인가.
나를 당기는 중력을 생각한다. 나는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강자도 아니다. 만일 중력이 나를 잡아당긴다면 적어도 힘없이 주저앉아 꺼져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럼 중간자쯤 되는 건가.
‘사실 지중해든 대서양이든 태평양이든 상관없어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p145)
우선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그래야 넘어진 이들을 보았을 때 손이라도 내밀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
누군가는‘우리 비록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얼굴만은 하늘을 향하자’라 말했다고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우리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생각한다. 영혼만은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기를, 그런 세상이 오기를,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내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