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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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째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으세요? 완전 방부제 미모세요!”

살짝 기분도 좋고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 과연 좋은 말일까? 무엇이든 썩으면 냄새도 고약해지고 모양 역시 흉하게 되니 썩는다는 건 당연히 안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부패해야 할 시기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길래 하는.

 

 

이 책은 부패하지 않는 경제부패하는 경제로 구성되어 있다. 시골 빵집 다루마리를 열고 운영하기까지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의 개인사와 경제 관련 내용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살짝 버무려져 있다.

솔직히 자본론, 마르크스, 노동이라는 말을 겉표지에서 보았을 때, 처음에는 살짝 거리감이 느껴졌다. 절친 말에 의하면 주머니 잔뜩 달린 조끼 입고 머리에 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듯한 분위기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시골 빵집과 자본론이란 말에서 무슨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 머그컵에 눈이 멀어 5만원 채우기 용으로 이 책을 선택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이 감정은 오래지 않아 감동으로 바뀌었지만.

 

부드럽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따뜻한 빵을 한 입 베어 문 기분을 느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짜 빵맛을 아직 맛보지 못한 게 안타깝지만 오랜만에 아주 괜찮은 책을 읽었다. 내 삶과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내 몸이 하는 말과 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아주 느리고 진중하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부패의 중심에 있는 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이고, 이러한 순환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임을 새삼 감탄하게 된다.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으로 자연스러움을 막는 것이다. 흐르는 물을 계속 막으면 둑이 터지듯이 언젠가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 순환 구조에 감당키 어려운 재앙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균이 하는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에 공감한다. 삶의 기운이 있으면 발효시키고, 사멸하는 기운이 있으면 가차 없이 부패시키는 균. 냉철한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부패한다는 건 생명이 다한 음식이니 먹지 말라는 경고이고, 발효한다는 건 생명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하는 작용이니 균은 지혜로운 현자와도 같다.

 

배가 슬슬 아프다. 몇 주된 두부를 부쳐 먹어서인가, 언제 샀는지 기억도 어렴풋한 브로콜리, 바나나를 키위와 갈아 마셔서인가, 아님 냉동실에 있던 유통기한 2014920일인 식빵을 토스트 해 먹은 탓일까?

누룩 균을 찾기 위해 직접 곰팡이 맛을 본 이타루 씨처럼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폭풍 흡입을 했으니……. 자연을 거스르는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세 번째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새삼 생각한다.

간혹 냉동실 문을 열고 식빵 봉지를 볼 때마다 여전히 멀쩡한 식빵 표면을 신선함의 척도로 삼았던 어리석음이라니. 식빵 사놓고 백일기도를 드리려는 심산은 아니었건만, 유통기한 백일을 넘겼어도 여전히 뽀송함을 자랑했던 식빵을 경계했어야 했다. 덕분에 방부제의 위력을 실감하기는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 쓴 글에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천연 효모처럼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이 전해진다. 글로만 번지르르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보여주는 이타루 씨의 글에는 진정성이 있다. 저 잘난 척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쉬우면서 소박하며 곳곳에 겸손함이 배어있다. 이 책이 빛나 보이는 이유이다.

삶과 함께 하는 직업을 가진 것이 부럽다. 삶에서 느끼는 점을 글로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내게는 더없이 좋을 텐데. 아직까지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배고픈 직업이기에 다른 직업에 의존하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내 자리가 아쉽기만 하다.

부패하는 경제를 위해 계속 도전하려는 이타루 씨를 응원한다. 욕심 부리지 않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어쩌면 책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유토피아도 존재하지 않을까?

돈의 의미도 생각해본다.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니 앞으로 신중하게 돈을 써야겠다는 결심도 한다. 경제에 대한 내 삶의 방식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연은 언제나 커다란 스승이다.

세월이 흐르면 내 얼굴에도 하나 둘 주름이 늘어가겠지. 하지만 이제는 방부제 미모가 부럽지는 않다. 나이에 맞게 자연스러운 얼굴이 된다는 것이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니.

오늘밤에도 소심한 나는 눈가에 아이크림을 투척할 것이지만, 마음만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균의 목소리를 듣듯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나는 인공적인 방부제 인간이 아닌 오래될수록 숙성하여 깊은 맛과 멋을 내는 발효 인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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