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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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여러 종류의 글을 접하면서 목판화를 연상하곤 한다.
제 살이 깎이는 듯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원판 같은 글,
잉크를 발라 살짝 찍어내어 원판과는 정반대로 나오는 종이 같은 글,
원판의 홈을 따뜻하게 메워주는 잉크와 같은 글로 나름대로 장르를 나누어보기도 한다.
김사과의 글은 이런 시각에서 보면 원판과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글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책을 팽개치지 못하게 하는 끌림이 있다.

<미나>에서 풍겨왔던 암울한 분위기가 <천국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 표지에 찍혀진 회색빛 빌딩 숲
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천국에서'라 주황색으로 굵게 쓰여진 글씨와 아이러니를 이루는 듯 하다.
저 좁고 음산한 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쫓기듯 빽빽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는 무관한 삶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공존한다.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지?(p330)"
처음부터 망가질 것이라도 주어진 삶이었을까?
"그럼 어떡하냐. 나에게 허락된 천국이 알바천국 하나뿐인데. . ."
드라마 '상속자들'에 나오는 가난상속자 은상이 말하는 천국이다.
"기승전결 돋네 진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미국까지 왔는데 결국 또 쓰레기통 옆이야. 먼 놈의 인생이 반전이 없냐 반전이. . "
절규하는 드라마 속의 삶이 책에도 현실에도 묵직한 강이 되어 흐른다.

마음이 무겁다.
소설의 분위기가 어두워서가 아니라 소설이 그려내는 현실감이 너무도 선명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 내내 먹먹하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던 "킬링필드"의 전장을 처음 본 충격처럼,
평화의 막을 걷어내면 앙상하게 드러나는 뼈다귀를 볼 듯한 암담함이랄까?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가 수족관을 부수면 어떻게 돼? 죽겠지. 뻔하지. 하지만 수족관 속에 있는 건 살아 있는 거야?(p339)"
소설 속 그녀는 결말에서 수족관 따위는 없다며 헤엄쳐 강을 건널 것을 말하지만,
나 자신도 어쩌면 수족관 속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 전체를 덮고 있는 어둠을 걷어 버리기에는 내리누르는 삶이 무거워서. .
희망의 빛이 쉽사리 스며들지 않는다.

어렵다. 소설 뒤의 여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내 삶을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두드림이 나를 어렵게 한다, 삶이라는 어렵다못해 무서운 문제처럼.
삶이 무서운 문제인 건 내가 살아가는 대로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답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오후의 삶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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