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30살. 딱 거기까지. 대학 다니고, 취직 하고, 물론 결혼도 해야겠지. 참! 애기도 낳아야 하는데…….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으면서 이 많은 것을 어떻게 10여년 안에 하려했는지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오래 전에 상상해보았던 미래의 모습은 30살까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어느 덧 서른을 넘어, 마흔의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직도 마음은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데,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과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흰 머리들을 보면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해질 무렵 다가오는 존재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하려 하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혼란의 시간. 젊다고 하기에도, 나이 들었다 하기에도 애매한 ‘마흔’과 묘하게 겹쳐졌다.

생각 없이 생활에 젖어들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시기. 나의 마흔은 전자에 가까웠다.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다가왔고, 집과 직장을 바쁘게 오고 갔다. 쉬어 본 기억이 아득했고 늘 시간에 쫓겼다.

 

느림으로 다가온 충격. 정신없이 엑셀을 밟던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게 되었다. 간간히 쉬면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았다.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읽기. 겉표지에 붉은 색으로 작게 쓰인 이 말은 책읽기 자체가 삶을 쉬어가게 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나에게는 이 책이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이 되었다.

어떤 책이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책 이었나 판단을 해 본다. 판단 기준은 나를 얼마나 움직이게 했느냐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내면이 서서히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비움 중에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어렵기로는 으뜸이다.(p17)’주변에 얽혀있는 인간관계에 버거움이 느껴지던 시기였기에 많은 공감이 갔다. 노래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나에게는 힐링이 필요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일생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이겠지만, 저자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속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옆에 있는 것처럼 위안을 주었다.

 

책꽂이와 방에 있는 몇몇 물건들을 정리했다.‘삶을 간소하게 할 때 소중한 것들이 문득 일상에서 솟아오른다.(p53)’책을 읽는 중간 중간 방을 둘러보니 쓸데없이 널려있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언젠가 써먹을 물건들은 영원히 써먹지 못할 물건들이다.(p59)’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보관해두었던 화장품 샘플들을 버렸다. 이미 유통기간은 지났겠지만 아까워서 붙잡고 있던 것들이다. 물건들을 과감하게 치우니 속이 후련했다.

 

‘쉼’에 대한 부분을 읽고서는 며칠 동안 퇴근 후에 일부러 쉬어보기도 했다. 많이 바빴던 시기였지만 ‘쉼은 빈둥거림이 아니다. 그것은 한가로운 바쁨이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기 위해 바쁜 게 쉼이다.(p42)'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마음껏 게을러져보았다. ‘게으름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자의 능력이다.(p203)’어떤 면에서 게으름은 보통 능력으로는 힘든 일이다. 조바심이 생기는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봤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집에서도 업무 처리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갔다 했을 텐데, 과감하게 사무실에 노트북을 버려두고 퇴근했다. 일단 일에서 멀어지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한 권의 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갖는 시간들은 잔잔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내면이 채워지고, 내면과 끊임없이 만나는 듯한 느낌은 신선한 돌파구였다.

덕분에 사무실에서의 나는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았다. 긴박한 시간들이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듯 했다.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생은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뻗어나간다.(p76)’쉼은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게으름 뒤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일들을 감당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나를 강하게 했다. ‘유유자적한 삶의 근본은 가볍게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로 깊어지는 것이다. 큰 배를 띄우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만 더 깊어져야 한다.(p278)’쉬면서 함께 한 책들은 나의 내면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가져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다가온 ‘개와 늑대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경계에 있는 요소가 어디로든 속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듯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이 마흔’은 아직 젊은 개가 될 수도, 이미 나이 들어버린 늑대가 될 수도 있다.

표지를 감싸고 있는 말처럼 마흔에 멈추어 읽은 이 책은 남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데 이정표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잠시 멈춤과 천천히 쉬어가는 법을 알려주었고, 깊어져야하는 내면을 바라보게 해 주었으며, 뛰는 가슴으로 뜨거운 현재를 맞이하게 해주었다.

‘마흔의 삶을 사랑하라! 간절하게 갈망할 것, 자유로울 것, 사람을 사랑하며 살 것!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첫 번째 날이다. 오늘을 뜨겁게 끌어안으라!(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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