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크로버 시리즈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젓가락으로 할까? 아냐. 그건 너무 긴데... 뭐 적당한 거 없을까?’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평소 모으던 성냥갑이 눈에 들어왔다. 심!봤!다! 성냥개비가 그렇게 반갑긴 처음이었다. 왔다갔다 움직이기에 길이도 편하고 부러뜨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바닥에 연습장을 펴고, 몇 개의 성냥갑을 털어냈다. 읽던 책을 펼쳐놓고 성냥개비들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엄마 몰래 쌀알도 갖다놓았다. 산가지 대용으로 성냥을 구해놓고선 이리 놓아보고, 저리 놓아보고... 잘 이해도 안 되는 내용이 뭐 그리 궁금했는지... 책 한 권을 옆에 놓고 며칠을 끙끙댔다. 대학교 때의 일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은데 억울하게도 책의 내용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64괘를 읽어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열정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운명이라는 것은 좋았다가도 안 좋아지고, 안 좋았다가도 좋아지곤 한다는 것. 언젠가는 이 가난이 나아지리라는‘희망’과 ‘알고 싶다’라는 강한 욕망이 복합된 감정이었다. 점이라든가 사주라든가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편은 아니었는데,‘운명’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곤 했다.

 

시원시원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던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잊었던 그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운명’이라는 말 자체도 끌림을 주는데, 나의 운명을 사용하는 설명서라니. 책을 읽으면 정말 내 운명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될까? 궁금했다.

1부까지는 읽기에 편안했다. 음양오행은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물질관을 가르치면서 간단하게 언급했던 내용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2부에 가상의 인간 ‘곰진’이가 등장해서부터였다. 다른 사람의 사주에 맞춰 내용을 이해하자니 지식 자체는 이해가 된다고 해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의 사주가 필요했다.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할 사주를 책에 맞추어 풀어보기로 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천간과‘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지지를 빈 종이에 적었다. 본격적인 전문 지식에 들어가니 이것저것 기록할 것이 늘어났다. 연월일시 두 글자씩 ‘8자’만 적으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종이가 꾸역꾸역 늘어나는 한자어로 점점 빽빽해졌다.

인터넷에서 만세력을 찾아보고 나의 ‘팔자’를 득템했다. 나를 나타낸다는 일간이 ‘정화(丁火)’임을 알았다. ‘정화’는 은은한 불, 촛불이나 전등, 난로불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성격에 의하면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이기도 하고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을 태워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얼굴이 갸름하고 미인이며 여성적이고 따뜻하다. 자상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하며 은근하다. 목(木)을 만나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순수하게 관심을 갖더라도 이유가 불분명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쉽게 자신을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것을 안고 사는 사람, 한 번 화가 나면 불같이 화를 내서 끝장을 봐 버린다고 했다. 평소 생각하는 나의 성향과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 특히, 한 번 화가 나면 끝장을 봐 버린다는 부분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

그 때부터 이 책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주말부터 이틀을 책에 코를 박은 채 노트북을 옆에 놓고 잘 모르는 용어는 인터넷으로 자세히 찾아가며 읽었다. 『10대와 통하는 미디어』(손석춘, 철수와 영희)에 나오는 어떤 이는 광고를 가리켜 변기통에 머리를 쳐 박는 것과 같다고 했다는 데, 혹시 내가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운명’이 변기통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의 핵심은 운명 자체보다 그것을 맞이하는 자세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지론은 나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그것을 맞이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유없는 행동은 없지만, 결국 중요한 단 하나의 이유가 사람을 움직인다.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서 나는 궁금했다. 내가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명을 운전한다’(p182)는 것이 ‘운명론’이라면 나의 그것을 잘 운전하고 싶었다.

8글자의 음과 양을 찾고 목화토금수의 5행을 적었다. 나를 제외한 7개의 글자가 양목 1개, 양화 2개, 음토와 양토 1개씩, 음금 1개, 음수 1개가 나왔다. 흠~ 나는 오행이 조화로운 인간이야~ 나름 흐믓해하며 책을 읽어내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십신(十神)’이라는 존재가 떠억 등장을 해버린 것이다. 5행 중 ‘나와 같은 것(비겁), 내가 생하는 것(식상), 내가 극하는 것(재성), 나를 극하는 것(관성), 나를 생하는 것(인성)’이 각각 두 개씩이라 ‘십신’이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떠듬떠듬 적어내리고 잘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나에게는 십신도 비교적 고르게 있었다. 비겁에서는 겁재 2개, 식상에서는 식신, 상관이 1개씩, 재성은 편재, 관성은 편관, 인성은 정인이다. 하지만, 다른 건 다 하나씩인데, 겁재가 2개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겁재란 ‘나의 재산을 겁탈한다.’는 뜻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살짝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보니 다른 각도에서 이해가 되었다. 무엇인가 가지고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겁재를 내 직업과 연관시켜 보았다. 흔히들 교사를 ‘배워서 남 주는 직업’이라고 하니 교사야말로 내 사주에 나와 있는 나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해석에 따라 전혀 반대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지에 숨어있는 천간이라는 ‘지장간’도 찾아보고 대운이 찾아온다는 나이도 알아보았다. 특히 강한 대운이라는 갑, 자, 진술축미가 내 사주에는 10세, 40세, 70세, 80세, 90세, 100세에 들어있었다. 40세는 이미 지났으니 70세 이후 쓰나미처럼 몰려올 대운을 확인하려면 나는 기필코 오래 살아야한다^^;

 

이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차례다. 우선 태어난 시각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의 두 딸과 남편, 생일을 알고 있는 주변인들을 훑었다. 아빠, 엄마, 언니, 여동생, 남동생, 시부모님, 형부, 올케, 친구들을 일간 별로 분류했다.

내 주변에는 음의 금속 ‘신금(申金)’이 7명, 양의 금속‘경금(庚金)’이 2명, 음의 불 ‘정화(丁火)’가 1명, 양의 불 ‘병화(丙火)’가 1명, 음의 물 ‘계수(癸水)’가 1명, 양의 물 ‘임수(壬水)’가 3명, 음의 목 ‘을목(乙木)’이 2명 있었다. 신금이 가장 많다. 금속이라면 불의 기운인 내가 녹이는 존재인데, 그럼 내가 그들에게 안 좋은 존재란 말인가? 흠~ 이 인간과는 별로 맞지 않았는데, 나를 극하는 물의 기운이라서 그랬구나. 어라? 나의 오랜 친구가 나와는 상극이네? 공감 가는 일간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되겠어.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해.

연예인으로 범위를 넓혀보았다. 내가 그 인간들과 만날 일은 평생 없겠지만 도대체 왜 그 인간들에게 끌리는가를 알고 싶었다. 우선 태경님, 장근석, 정준영, 이민호를 따져보았다. 헉~! 근래 필이 꽂혀서 한참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신의’의 주인공 이민호는 나와 N극과 S극이 끌리듯 강하게 합한다는 ‘임수’였다. 큰 물, 바다, 넓은 강을 뜻하는 양의 기운을 가진 물. 굉장히 유연하고 센스가 있으며 어디다 던져놓아도 알아서 잘 살아간다는, 지적인 이미지이며 부드럽고 섬세하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슈퍼스타 K4에 나오는 정준영도 ‘임수’였다. 어쩐지 그런 면이 살짝 끌렸어~^^; 어라? 그런데, 을목과 신금이 나온 다른 사람은? 생각해보니 그 연예인 자체보다는 드라마의 역할이나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임수’의 포스에 끌렸던 것도 같다.

아직도 데이터에 목이 말랐던 나는 다음 날 출근 후, 친한 선생님들 몇 명의 생일을 물었다. 태어난 시각까지 물어야 확실한 8자가 나오지만 그것까지 묻는 것은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일간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연의 결과일까? 그들의 일간은 대체적으로 나를 도와주거나 내가 도와주는 존재였다. 일간이 나타내는 성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알려주었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고 놀라워했고, 더 자세한 사주를 알려면 태어난 시각을 말하라고 하니 알아봐달라고 관심들을 보였다. 살짝 기분이 우쭐해졌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건 ‘합(合)’과 ‘충(衝)’을 따져보았을 때부터였다. 사실 ‘임수’와의 관계를 따져보았을 때부터 약간 갸우뚱하기는 했다. 물이라면 불을 극하는 존재인데 그것이 음과 양으로 결합하면 최고의 ‘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5행과의 관계는? 나무가 불을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양목이냐 음목이냐에 따라서도 다른 것이 아닌가? 또, 단순히 둘만의 관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 되는 전 단계의 5행도 봐야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아도 1층을 올라서지 못하면 2층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전 단계의 관계들이 해결되어야 다음 단계의 운명들이 활동할 수 있다고 했다.‘나와는 역시 맞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합’하는 존재라는 해석이 나오는 순간, 이제까지 차곡히 쌓아올린 얄팍한 지식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즐겨찾기로 등록해놓은 8개의 운세 관련 블로그에 나온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책에 나온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화토금수의 5행이 각각 천간에 있느냐, 지지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고, 일간을 어떻게 둘러싸느냐에 따라서도 운세의 해석은 변화무쌍했다. 그런데다 내 사주의 태과불급을 순환시킬 수 있다는 ‘용신(用神)’이 나오는 순간, 멘탈이 붕괴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어설피 알다가는 사주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는 것도 제대로 없으면서 관계들의 순환은 고려하지 않고 드러나는 것만으로 번드르하게 잘난 척을 하는 선무당이 될 뻔 했다. 아~! 내 운명을 아는 길은 멀고도 멀구나.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 내느냐, 혹은 겪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p182) 운명론의 핵심이다.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시선의 전환’(p6)이고, 운명에서는 관계와 배치와 순환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운명의 키는 자신 안에 있다. 해법 또한 자신에게 있다.’(p185)

 

오랜만에 나와 잘 맞는 ‘운명’적인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이 전할 수 있는 지식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나는 8개의 관련 사이트를 뒤졌고, 관련 용어들을 몇 번이나 찾아보았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이 책의 내용만으로 사주를 풀어낸다는 것은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운명이 궁금한 초보자들에게 더 깊은 공부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으로 아주 적당하며,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운명의 해법을 쥐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흘러야함을 끊임없이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은 날, 나는 선무당을 탈출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스스로 모르는 내가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를 알고 싶다. 그리고, 나의 운명과 당당히 마주하며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제부터는 책을 읽으면서 찾아놓은 인터넷 사이트에 나오는 내용을 틈날 때마다 공부하려 한다. 사주명리학의 길은 무한히 넓고 깊겠지만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나의 사주를 알아보려 한다. 성냥개비를 가지고 이리저리 맞춰보던, 어쩌면 무모했던 대학교 때의 열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출간!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1-29 16:29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분석해낸 우리 사회의 현상과 욕망!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의역학 사회비평 에세이!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다. 몸과 우주,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