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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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상태인 물은 99℃까지는 아무 일 없이 그렁그렁하다가 100℃가 되었을 때 갑자기 도약하여 자유로운 기체가 되어버린다. 상상력이 뛴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내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재미있다!’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드는 생각이었다.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라고 해도 제대로 독후감을 쓰지 않거나 서너 줄을 겨우 끄적이던 녀석들이 이번 책은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면 ‘멍...크르르르르 멍’하며 짖는 개가 제일 무섭다고 적은 도연이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전설이 있을까를 상상하며 기나긴 글을 쓴다. 맨날 독서감상문을 올리고 싶은데 정작 쓰려고 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승균이는 상여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고, 뜬소문을 너무 믿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느낀 점을 다섯줄이나 적어낸다. 처음으로 독후감을 선보인 영현이는 책의 겉표지를 보고 ‘무슨 신기한 구멍 같은 것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말한다.

그런 아이들의 글을 독서 토론 자료와 함께 정리하는 나는 왠지 뭉클 하는 느낌으로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이 아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하는구나’ 하고.

 

나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떠돌던 소문을 떠올렸다. 체육대회가 있던 오후였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공중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서둘러서 교실로 들어갔고, 그날 체육대회는 취소되었다.

당시 학교 건물 한 쪽 옆에서는 삐져나온 철골을 산소용접기로 절단하고 있었다는데, 산소통이 갑자기 튀어올랐다가 아이들 사이로 떨어져서 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명이 짧다는 말이 있어 절에 데려가서 길러졌었다고 한다. 그날 옆에 있던 짝꿍도 날아오는 통에 맞아 발등을 찍혔다는데, 피하라고 말해도 아이가 꿈쩍도 안하더란다. 아이는 통에 머리를 찍혔고 머릿속에서 뇌가 두부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면서 바닥에 쏟아졌다는 말도 들렸다.

그 후에 학교에는 무서운 소문이 떠돌았다. 학교 건물 밖에는 운동장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화장실 옆으로 낙엽 같은 것을 담곤 했던 커다란 시멘트 쓰레기통이 있었다. 바로 그 쓰레기통에 그날 쏟아진 뇌를 버렸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죽은 오후가 되면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너무 무서워서 오후반이 끝나고 운동장을 지나올 때면 눈을 질끈 감고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덧없는‘삶’이란 것을 나름 고민도 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지만 이 일은 우리 초등학교에서 공공연히 떠돌던 전설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떠돌고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다. 내용이 무섭든 재미있든 엉뚱하든지 간에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상상을 하고,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보탠다. 상상력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라난다.

‘읽히기 위해 쓰인 글은 독자에게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재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p147,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는 재미 안에 훈훈한 의미가 담겨있다. 방앗간 할아버지와 돼지 할아버지와의 관계, 준영이를 전설로 묶어 같이 뛰어놀게 한 장난꾸러기 세 아이들 사이의 관계, 밤나무 아래에서 준영이와 이어진 돼지할아버지와의 관계, 돼지할아버지와 세 아이들과의 관계, 새롭게 전학 온 아이와 펼쳐질 또 다른 관계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정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이 느낀 재미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변화되어갈까? 앞으로 또 어떤 책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을 기대하며 느꼈던 궁금함이 아이들을 향해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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