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뜨는 꽃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2
유타루 지음, 김효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기한 느낌이 들만큼 이상한 것은 무엇이든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눈에 띤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보는 그것이 갑자기 확 늘어났을 리는 없는데 이렇게나 많았나싶을 정도로 시선만 돌리면 눈에 들어온다.

녹슨 자전거에 묵직하게 매달려 위태롭게만 보이는 리어카. 거리를 지나다보면 간간히 눈에 띠는 모습. 구부러진 허리 높이 이상으로 종이박스가 가득하면 박스의 무게만큼이나 삶의 무거움이 느껴지고, 리어카가 비어있으면 가벼운 대로 안타깝다.

그랬다. 폐지로 삶을 이어가시는 분들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조심스럽게 들어와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한 5년 전쯤이었을까? 실험기구와 모형들을 꽤나 대량으로 구입한 적이 있다. 과학실에서 정리하고 나니 버려야 할 종이 박스가 만만치 않다. 학생들과 함께 재활용품을 놓는 학교 쓰레기장으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날라야 했다.‘왜 이렇게 많은 거야.’라며 속으로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며칠 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신호 대기 중에 우연히 거리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신호가 끊길 즈음 종이 박스가 실린 허름한 리어카를 끌고 건널목을 서둘러 건너시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출발선에 서서 신호의 색만 바뀌기를 기다리는 차들을 피해 주춤주춤 건너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거리를 지나가다 시선만 돌리면 쪼그려 앉아 리어카에, 끌차에 박스를 얹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 박스를 모아서 살아가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고, 더욱 놀랐던 것은 하루 종일 모으는 폐지의 가치가 불과 몇 천원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것은 가끔 미안할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진실이다. 내게 있어 버려야 할 물건이 어떤 이에게는 살아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이렇게도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접근하는 방식을 달리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얘기를 충분히 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되었던 지렁이처럼 작가는 손수레를 끌고 골목골목을 돌며 고물을 주우러 다니시는 할아버지를 특별히 웃게 해 주었다.

 

녹슬고 칠이 벗겨진 고물장수 할아버지의 대문. 늘 자물쇠로 겹겹이 채워져 있다. 닫힌 대문이 곱사등이인 몸을 비관하면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사는 할아버지와 어딘가 닮아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노오란 봄빛을 닮은 여자 아이 산들이 별처럼 날아든다.

산들에게는 꿈이 있다. 엄청난 부자가 되어 우주여행을 하는 꿈.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서 죽은 별들에게 꽃씨를 뿌려주어 별들을 살리는 꿈이다. 소녀는 용감하다. 그래서 무서움을 무릎 쓰고 할아버지 등속에 산다는 똥 도깨비에게 이제는 다른 데로 가달라고 부탁하며 가장 아끼는 머리핀을 준다.

공상적인 꿈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의 바람이 이루어졌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죽은 별처럼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삭막하게 하루를 살아가던 할아버지에게는 소녀가 주었던 순수한 마음이 꽃씨와 같은 의미가 되지 않았을까? 소녀는 떠났지만 이미 할아버지의 집은 소녀가 붙여놓은 야광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꽃담으로 둘러싸인 듯 환하게 밝아졌다.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꽃향기가 가득하여 마지막에 열어젖힌 대문 밖으로 펴져나가는 듯하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도서이기는 하지만 동심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해진 어른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뭉클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따끈하게 데운 생 두부를 먹는 느낌이다. 더불어 크레용으로 그린 듯 투박한 그림이 봄볕에 흐드러진 개나리 길을 천천히 걷는 것처럼 마음속에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작가의 말을 다시 한 번 읽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꿈이 뭐니?”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 마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꿈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